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카 Jul 10. 2021

1. 그의 이름은 오영광

앙드레 씨와 신비한 언어를 하는 사람들

1. 그의 이름은 오영광



뒷마당에 주차된 차 문을 열며 오영광은 낮은 담벼락 너머로 옆집 인기척을 살폈다. 조용했다. 머리를 알록달록하게 염색한 중년 여자와 주인 모양새를 꼭 빼닮은 그녀의 고양이는 아마 낮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다. 가끔 그녀는 부스스한 머리를 창 밖으로 쭉 빼고 오영광을 바라보기도 한다. 마치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것을 관찰하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럴 때면 오목사는 정중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봉주르 마담’하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물론 가벼운 미소도 있지 않는다. 자신은 인품 좋은 사람이며 그녀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억양 속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그는 습관처럼 틈새 수납함을 열었다. 차에 늘 구비하고 다니는 작은 손거울과 머리빗을 집어 들고 익숙한 솜씨로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조금 피곤해 보이기는 했으나 여느 때처럼 근엄한 자태를 풍기고 있었다. 오영광은 그 우아함에 스스로 도취되어 입가에 절로 웃음이 번졌다. 그러자 가뜩이나 잘생긴 남자의 얼굴에 피할 수 없는 매력까지 더해져 은근 섹시한 분위기까지 자아내는 것이다. 오영광은 흐뭇했다. 만일 그가 목사가 아니었다면 수많은 미녀들이 그를 쫓아다니며 구애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잠깐 오영광의 외모를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에르메스를 걸치고 있는 그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키에 체구는 마른 편이었다. 까무잡잡한 지성 피부는 세수를 하고 조금만 지나도 기름으로 반들거렸으며 얼굴에 살이 별로 붙지 않아 상대적으로 광대뼈가 튀어나와 보였다. 아쉽게도 벌써 이마가 점점 넓어지고 있었으며 정수리 부분도 속살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의 얼굴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입 주변에 가지런해 정돈된 수염이었다. 오영광은 이 수염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었다. 수염은 그를 훨씬 나이 들어보이게 했지만 오영광은 그 효과에 매우 만족했다. 


오영광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보며 각 면의 완벽함을 확인한 다음 시선을 오른쪽 눈꺼풀에 고정시켰다. 석 달 전 한국에 갔을 때 쌍꺼풀 수술을 한 자리다. 원래는 왼쪽 쌍꺼풀만 있었기 때문에 은근히 짝눈 콤플렉스에 시달렸는데 비로소 그 갈등에서 해방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왼쪽과 오른쪽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전 보다 열 배는 더 잘생겨 보여 만족했다. 눈꺼풀 위에 그어진 가느다란 한 겹의 줄이 사람의 외모를 이렇게 바꾸어 놓다니! 그는 쌍꺼풀 수술 이후로 거울 보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한참 동안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넓은 이마 덕분에 통 크고 성격 시원한 사람으로 보였으며 기름진 구릿빛 피부는 표면이 반짝이며 건강한 남성미를 선사했다. 정수리 부분 머리 숱이 엉성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곱슬머리를 요령껏 빗어 넘겼기 때문에 풍성하지는 못해도 빈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키에 마른 체구는 날렵했고 야윈 얼굴에는 수도하는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영성과 근엄함이 흘렀다. 물론 미소 지을 때마다 툭툭 터져 나오는 섹시함도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거울 속 남자의 외모는 완벽 그 자체였다. 


짧은 외모 체크를 마친 오영광은 드디어 차에 시동을 걸고 코가 뾰족하고 반들반들한 구두로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덩치 크고 말썽 많은 그의 중고 BMW는 무거운 몸을 틀어 빠리 13구로 방향을 잡았다. 그동안 이 차의 주인이 몇 명이나 바뀌었으며 몇 번이나 폐차장 행을 면했는지 알 수가 없다. 마지막 주인이었던 나이 많은 유학생은 이제 수리비 감당하는 것도 지겹다며 범퍼를 발로 한 번 뻥 차고는 차 키를 오영광에게 주어 버렸다. 


BMW를 공짜로 얻은 행운도 잠시뿐, 몇 주 되지 않아 오영광은 그 유학생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이 오래된 자동차는 나이 값을 아주 톡톡히 했던 것이다. 늙은 차는 조금만 피곤해도 그 자리에 바로 서 버렸으며 어떨 땐 아예 주저 않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도 사람도 나이는 피해 갈 수 없는 법, 오영광은 아량이 넓은 사람인지라 이 구식 자동차의 체력 고갈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꼴에 BMW라고 수리비가 보통 자동차의 몇 배씩 드는 것은 정말이지 참아주기 힘들었다. 이럴 양이면 당장 팔아 치우고 다른 중고차를 한 대 사는 것이 낫겠다 싶은데 사실 이 차를 사 줄 사람도 없거니와 목사 체면에 거의 고물이나 다름없는 것을 돈 받고 팔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 주인이 했던 것처럼 누구에게 거저 주어버리던가 아니면 폐차장으로 끌고 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차가 서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고물 덩어리를 몰고 다닌다. 


이 놈을 미련 없이 처분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고물차는 나이는 많았으나 겉모습은 꽤 번듯했다. 비록 구형 모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BMW였고 그것이 오영광의 눈에는 빈티지 느낌의 고상함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래서 운전석에 앉으면 자신이 마치 클래식한 취향을 가진 자동차 수집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물론 저런 똥차는 줘도 안 받는다며 고개를 설래설래 흔드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자신의 취향이 그런 겪없는 다수와 분명히 구분된다는 것에 그는 오히려 만족했다. 


그의 BMW가 구형이라는 것에는 또 한 가지 큰 장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치를 삼가야 하는 성직자의 신분에 먹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워낙 구형이다 보니 아무도 그가 가난한 교회 목사 주제에 고급 차를 타고 다닌다고 수근거리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꿈에 그리던 BMW를 타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검소한 목사라는 이미지를 남길 수 있었으니 일석 이조였다. 오영광은 이 고령의 차와 어느덧 수개월을 함께하면서 그럭저럭 차의 기분과 컨디션을 파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장거리 주행을 피하고 놈의 체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살살 몰기만 하면 정비소 가는 횟수를 훨씬 줄일 수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