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4일 - 10월 10일
추석 연휴가 끝난 2023년 10월 4일 복부 CT를 찍었고 일주일이 빠르게 지나갔다. 수업과 프로젝트 미팅을 하고 교회 모임과 북클럽을 하고 친구와 저녁을 먹고… 여느 때처럼 정신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CT 결과에 대한 불안감은 전혀 없었다. 나는 술도 안 마시고 고기를 아주 즐겨 먹는 편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췌장암이기엔 얼굴도 너무 하얬으니까…
혹시 문제가 있다면 전에 용종이 하나 발견되었던 대장이나 종종 문제가 되었던 자궁근종이겠지…
선생님도 내가 암일 확률은 1%라 하셨으니까…
2023년 10월 10일이 되었다. 진료는 오후 2시 50분에 예약되어 있었고 나는 병원에 다녀온 후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북클럽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북클럽에서 나누기로 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열심히 읽었는데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여서 병원에서 내 순서가 오길 기다리며 책을 읽고 느낀 점을 핸드폰 노트에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마침내 내 이름이 불리우고 나는 점잖고 따뜻해 보이는 소화기 담당 선생님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를 한 번 쳐다보고 CT결과를 화면에서 보던 선생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어렵게 입을 떼며 말씀하셨다.
“췌장 두부 (머리) 쪽에 2.8cm 짜리 종양이 보여요. 상태가 안 좋아보이는데 오늘 입원이 가능하신가요?”
불과 8달 전에 검사했을 때도 아무 이상 없었던 나의 췌장에 무슨 일이 생긴걸까? 전형적인 T인 나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짧은 순간 나에게 남은 스케줄을 생각했다.
‘음 오늘 모임 2개는 취소하고 내일 있는 수업은 휴강공고를 내고… 그러면 오늘 입원이 가능하겠는데…’
“며칠이나 입원해야 하나요 선생님?”
“일단은 3박 4일 정도 예상합니다.”
‘아 그러면 다음 날 수업도 휴강공고를 내야겠네. 하지만 선생님이 오늘 입원하라는 것 보면 급한 일인 것 같으니 입원을 해야겠지.’
“네 선생님 오늘 입원하겠습니다.”
“네, 그러면 나가서 간호사 안내를 받아주세요.”
선생님은 안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그 상황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선생님은 지나치게 담담한 이 환자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나가서 가족들과 오늘 약속을 했던 사람들에게 입원 소식을 알리고 근처에 있는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 검사를 하러 가는 길에 그날 만나기로 했던 주일학교 선생님이 전화를 해서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선생님 어떡해요. 하지만 괜찮을 거예요. 우리 함께 힘내서 잘 이겨내요. 제가 끝까지 함께 할게요.”라고 할 때서야 비로소 나에게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실감이 났다.
아니 어쩌면 의사 선생님의 당황스러움과 근심이 뒤섞인 반응에서 나는 암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울거나 감정에 기복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일단 이 일을 잘 처리해야겠다는 투지 같은 것이 내 마음에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전쟁에 나가기 전 무기를 점검하는 병사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검사지를 병원에 제출하고 입원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는 담담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병원에서 집은 멀지 않아서 입원 가방을 싸고 퇴근한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고 저녁 8시에 입원을 했다. 이때만해도 그 이후로 얼마나 병원을 내 집 드나들듯이 계속 다니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