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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확률

2023년 8월 21일 ~10월 4일

by distritopersonal

“이런 경우 보통 실제로 암일 확률은 1% 정도예요. 그래도 확인 차 CT 한 번 찍어보죠”


건강검진은 여름에 하는 것이 좋다는 유튜브 영상을 우연히 본 후 늘 쫓기듯 12월에 간당간당 실시하던 건강검진을 8월 말에 하기로 했다. 숙제처럼 건강검진을 실시한 후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베트남 여행...


몇 걸음만 나가면 바다가 있고 개인 수영장이 있는 독채 빌라에서 일어나서 밥 먹고 요가하고 산책하고 물놀이하고 다시 밥 먹고 스파에 가는 평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내가 많이 사랑하는,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조카와 동생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수업과 프로젝트, 북클럽, 교회모임 등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중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과체중 : 음 알고 있었고

지방간 : 아... 역시 살을 빼야 해


CA 19-9 1920 : 응? 이건 왜 갑자기 올랐지? 8개월 전 건강검진에서는 정상인 35 이하였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CA 19-9는 췌장암 지표이긴 하지만 장이나 자궁 등의 기관에 종양이 있어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많았다. 자궁근종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확인은 필요할 것 같다는 병원 의견에 따라 전문의를 만나기로 했다.


일주일 후에 만나게 된 선한 얼굴을 하신 소화기내과 선생님


“최근에 소화 잘 안 되거나 하신 일 있으세요?

- “아니요”

“등 쪽이 아프시거나 하세요?”

- “아니요”

(얼굴을 슬쩍 쳐다보며) “황달이 있으시거나 하진 않으시죠?”

- “아니요”

“최근에 몸무게가 급격히 빠지셨나요?”

- (보시다시피) “아니요”


다른 관리는 안 해도 토닝은 열심히 해서 유지한 하얀 얼굴

타고 난 입맛으로 아무리 아파도 늘 맛있는 건 생각나는 능력으로 유지한 내 체중

흔한 위염이나 역류성 식도염도 경험해보지 않은, 돌도 소화시킬 것 같은 튼튼한 나의 위


얼핏 보셔도 얼굴이 노랗지도 않고, 최근에 살이 빠졌을 것 같지도 않은 이 여자는 췌장암 환자 후보자는 아닌 것 같다 생각하셨는지 선생님은


“CA19-9는 아시겠지만 장이나 자궁 문제로도 수치가 오를 수 있거든요. 환자분 같은 이런 경우 보통 실제로 암일 확률은 1% 정도예요. 그래도 확인 차 CT 한 번 찍어보죠”


그다음 주는 추석이었기 때문에 2주 후 날짜를 잡고 복부 CT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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