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죽다가 살아나서 쓰는 글 #6

feat. 패혈증+황달 (2025.3.24-4.22)

by distritopersonal

2025년 4월 10일


패혈증으로 입원한 지 16일 만에 나는 병실에서 벗어나 외래 진료를 위해 S병원에 방문했다. 인생에서 가장 긴 기간 동안 입원한 이후라 몇 발자국만 걸어도 어질어질했다. 나름 병원에서 운동한다고 걸었지만 패혈증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타격이 컸다.


이날은 오전에 항암 선생님을 만나 패혈증 치료 결과에 대해 보고 먹는 항생제를 투약할 것인지 링거 항생제를 투약할 것인지 결정하는 날이었고, 4시간을 기다렸다가 '언제인지 알 수도 없이 희망고문 중인' 수술 가능성에 대해 외과 선생님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늘 그렇듯 항암 선생님을 만나기 2시간 전 피검사가 있기 때문에 실제 내가 병원에 체류하는 시간은 7시간 이상이 되는 상당히 힘든 일정이었다.


오전에 선생님을 만나 먹는 항생제로 바꾸기로 했다. 다시 입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에 많이 신이 났다. 신이 나긴 했지만 나답지 않게 워낙 기운이 없어 좋은 티는 많이 안 났고, 점심 시간이 되어 병원까지 같이 가준 동생과 맛있는 밥을 먹고 커피도 한 잔 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세상 사람 틈에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환기가 되고 생기가 도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서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있는 것이 면역력이 약해진 나에겐 좀 위험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우리는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후 3시 외과 선생님과의 만남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항생제에 절어서 지친 몸으로 차에서 잠을 좀 자다가 오후 3시에 맞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몸이 물 먹은 솜뭉치처럼 무겁고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설상가상 진료실 앞에 도착했을 때

"지연 1시간"

이라고 쓰여 있는 사인을 발견했고 간신히 4시간을 기다렸는데 다시 1시간을 기다리라니 알 수 없는 분노와 짜증, 그리고 피곤함이 몰려왔다.


더군다나 어차피 5시간 기다려 길어야 5분 만나는 선생님이 2주 전 패혈증까지 걸린 나에게 (그래서 항암도 지금 쉬고 있는 나에게) 수술해 준다고 말씀하지 않을 거라는 건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진료실 앞에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진료 날짜를 연기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상담 간호사님은 연기하면 한참 뒤에나 다시 날짜를 잡을 수 있으니 오늘 웬만하면 선생님을 만나라고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음... 어차피 한참 뒤에 만나도 또 수술은 못 해주신다 할 것 같은대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전화를 끊고 그냥 집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기다린 것이 아까우니 만나고 갈 것인가를 고민하던 그때 나는 그동안의 아픈 내공에서 오는 불길한 기운이 머리를 쓱 스쳐 지나감을 알 수 있었다.


'어, 나 좀 이상한대?'


몇 시간 전의 나는 병상에서 나온 지 채 24시간이 안 된, 항생제로 정신이 몽롱한 존재였다면 오후 3시의 나는 뭔가 내 안에 바이러스가 기지개를 켜고 활동을 개시하는 그런 느낌?


나는 뭐에 홀린 듯 접수처에 있는 간호선생님에게로 다가가

"선생님, 제가 열이 나는 것 같은데 체온 한 번만 재 주시겠어요?" 하고 요청했다.


아프기 전 나는 웬만한 일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고 궁금한 것도 잘 묻지 않는 무던한 성격이었는데

병에 걸리고 난 후의 나는 생존본능으로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고 도움을 청하는데 좀 더 익숙해진 사람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무심한 듯 체온계를 내 귀에 꽂았다 빼더니 결과를 보고 흠칫 놀라시며


"환자분 열 많이 나는대요?"


하더니 환자번호를 물어보셨다. 잠시 나의 차트를 확인하신 간호사 선생님은


"환자분, 응급실 가셔야겠어요."

라고 말씀하시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응. 급. 실??


'혹시 16일 전에 제가 실려 들어갔던 그 응급실, 거길 다시 가라고 하시는 건가요 지금? 전 병원 입원실에서 나온지 24시간도 안 됐는대요?'


갑자기 어질어질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마. 침. 다. 행. 히. 도.

그때까지 오후 진료를 보고 계시던 나의 주치의 선생님이신 항암 선생님께 나의 상황을 보고하였고 나는 다시 응급실로 가기 위해 대기하는 신세가 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번외> 죽다가 살아나서 쓰는 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