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패혈증+황달 (2025.03.24-04.22)
굉장히 응급 상황인 것처럼 전화를 걸었지만 이후 열이 39도까지 오르는 상황에서 계속 대기를 했다. 주치의 선생님도 다른 환자를 보는 중이니 내 문제를 먼저 해결하시긴 어려웠겠지만 열이 오르면서 정신이 어질어질했고 동생은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지연되었던 외과 선생님 진료 시간이 다가와 어쨌든 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예상대로 선생님은 더 기다려보자고 말씀하셨다 (이 이야기는 1년 6개월째 듣고 있다.).
"선생님 전 아얘 수술은 불가능한 상황인가요?"
라고 물었는데 (희망고문이 길어지는 게 너무 힘들어서)
"항암제로 상황이 나아지면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라고 말씀하셨다.
처음 병을 발견했을 때 나는 아주 아슬아슬한 경계성 환자였다. 췌장암이 전이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십이지장에 가까이 붙어 있어 어쩌면 침범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행히 혈관에는 가깝지만 침범하진 않은 상태였다.
어떤 병원에서는 수술 후 항암을 권했고 S병원은 항암 후 수술을 권했다. 나는 안전하기를 원해서 S병원을 선택했고 항암을 열심히 했지만 암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6개월 정도 항암을 했을 때 암수치인 19-9가 65까지 떨어졌는데 선생님은 정상범위인 45까지 떨어지면 수술해 주시겠다고 했다. (시작은 1990이었다.)
6개월 동안 그렇게 잘 떨어지던 수치는 야속하게도 그 이후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는 1년 6개월 동안 항암을 하며 하염없이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가 된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론이고 지금은 그것보다 열이 더 무서워서 진료실에서 나와 고개를 숙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 때 직원분이 휠체어로 나를 데리러 왔고 나는 응급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응급실 앞에서 들어가려던 순간 내 앞에서
"지금 여기 있는 환자까지만 받겠습니다."라고 하여
순간 심장이 덜컥했지만 직원분이 외래에서 교수님이 바로 보낸 환자라고 설명하자 나까지 들어오게 해 주었다.
그렇게 들어가 또다시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문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2월에 시술했던 담관 스탠트에 문제가 생겨 다시 시술해야 할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 자정부터 금식이 시작되기 때문에 저녁을 먹으라고 해서 동생이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 토마토를 사다 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열나는 것 이외에 큰 문제는 없어서 나 혼자 충분히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만한 착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