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십이지장 스탠트 (2025.04.23-5.20)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3월 24일 패혈증으로 응급실에 들어가 사경을 헤맨 후 정신이 좀 났을 때 내 머릿속에는 몇 가지 이슈가 떠올랐다.
첫 번째는 가르치던 수업을 학기말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나는 병에 걸린 이후에도 학교 측의 배려로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수업을 계속 업로드하고 온라인상에서 토론도 하고 마지막에 성적까지 잘 기입할 수 있을까? 만약 상황이 안 된다면 누구에게 무엇을 부탁해야 할까?
두 번째는 이 상태로 그냥 죽었으면 정리 안 된 내 짐을 남편이랑 가족들이 정리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할 뻔했나? 사실 이 문제는 암 선고를 받은 직후에도 들었던 생각인데 체력적, 의지적 한계로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가고 있었다. 불필요한 물건은 미리 좀 버리고, 내 물건 중 챙겨야 하는 좋은 물건을 구분하고, 얼마 되지 않는 내 재산과 비밀번호 등은 남편한테 미리 말해줘야 하는데 바로 죽었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달랑 글 2개 써 놓은 브런치는 이제 어떻게 하나? 암에 걸리고 몸은 쇠약해졌지만 그 사이에 나는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절대 깨닫지 못했을 다양한 생각을 하고 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았는데 그 이야기를 나누려고 시작하자마자 아파서 드러눕다니... 1달 넘게 살아있는 좀비처럼 지내느라 머리가 돌아가지도 않고 글을 쓸 에너지도 생기지 않아 브런치가 '개업휴점'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그래서 정신이 좀 난 후에 나는 일단 기억이 생생한 지금 이야기를 <번외>로 먼저 쓰고 다시 암 진단 초기 이야기로 돌아가자는 결론을 내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리고 에너지가 생길 때마다 한 개씩 글을 올리게 되었다.
<번외>를 마무리하기 위해 근황을 빨리 정리하자면... 먼저 성대하게 하고 싶었던 나의 생일파티는 부모님이 사 오신 케이크와 꽃으로 S병원 벤치에서 조촐하게 진행됐다. 속이 안 좋아서 심지어 케이크는 맛도 못 보고 돌려보내는 웃픈 상황도 펼쳐졌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4월 22일, 컨디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퇴원을 하게 되었다.
집에 온 이후 약으로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소화장애와 황달은 24일간 지속되었고 그 사이에 몸무게는 4kg이 더 줄어 나는 과체중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흰 죽을 끓여서 먹을 때만 토하지 않아서 매일 비루하게 먹은 결과였다.
하지만 사람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극심한 속 쓰림과 구토가 점점 심해져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나는 항생제를 맞기 위해 10일 동안 입원했던 집 근처 의료원에 진료 예약을 했다. 그때 담당 선생님은 소화기 내과 전문의여서 정확한 의견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았고 하다못해 내시경이라도 해서 도대체 왜 내가 계속 토하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마침 이틀 전에 S병원에서 찍은 CT가 있어 그것을 들고 의료원을 찾았다. 선생님께서는 금식을 한 상태에서 CT를 찍었는데도 음식물이 위와 십이지장에 있는 걸로 봤을 때 췌장암이 십이지장의 길을 좁게 만든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S병원에 가서 십이지장 스탠트를 해달라고 말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조언을 주셨다.
일주일 후 나는 S병원에 이 제안을 전달했고 선생님도 동의하셔서 퇴원한 지 25일 만인 5월 15일 나는 다시 입원하여 십이지장 스탠트를 시술받았다. 이후 먹는 것은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양이 늘었고 전보다 기운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은 황달은 다 사라졌지만 담낭염으로 인해 복통은 존재하고 염증 수치도 높은 상태로 하루하루 회복하고 있지만 조심스럽게 생활하고 있다.
P.S.
이때 이후 상황을 2025년 6월 10일 현재 상황에서 한 번 더 업데이트 하자면...
아슬아슬하게 열이 올랐다 내리는 상황이 지속되고 항생제를 먹음에도 불구하고 염증수치가 계속 올라가서 결국 나는 6월 3일 입원해서 담낭염 제거를 위한 담즙배액관을 다시 시술받게 되었다. 1차 담즙배액관을 제거한지 3주 만의 일이다.
담즙배액관을 다시 하게 된건 아쉬운 일이었지만 시술 후 열도 안 나고 염증 수치도 떨어진 것은 다행이다. 이후 일주일 입원하고 퇴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