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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Apr 27. 2023

아랫집 수난사

윗집 아이들이 뛰는 소리가 또 집안을 울린다. 사실 공동주택에 살려면 이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윗집 아이들은 유난히 더 뛰는 것 같다. 가끔 인터넷을 보면 층간 소음 문제로 이웃 간에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는데, 그의 아파트에서는 아직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그래도 이웃 간에 서로 이해와 양보로 잘 지내는 것 같았다.

     

그가 처음 이 아파트로 이사를 오기 위하여 방문했을 때, 윗집 여자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서로 몇 층에 사느냐고 물어보다가 여자가 그의 집 바로 위층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여자는 옆에 있는 서너 살 정도 되는 사내아이를 바라보면서 그에게 인사하라고 시켰다. 그러면서 자기 아이가 아직 어려서 좀 뛸 수도 있으니 주의는 주겠지만 그래도 좀 이해해 달라고 정중하게 말했고, 그도 아이들이 뭐 다들 뛰면서 크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너무 부담은 갖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부터 날이 갈수록 아이가 뛰는 횟수와 강도는 높아만 갔다. 급기야는 그도 이 정도면 윗집에 이야기해서 아이를 좀 진정시켜 달라고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또 엘리베이터에서 윗집 여자를 만났다. 그가 막 이야기를 꺼내려하는데 그녀가 먼저 말했다. 요즘 자기 아이들이 좀 심하게 뛰는 것 같은데, 정말 미안하다고 하면서 연신 고개를 굽신거리며 사과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그랬다. 조금 세게 항의하려고 했다가도 저편에서 먼저 굽히고 들어오니까 그만 마음이 또 누그러졌다. 그래서 그는 또 아이들이 다 그럴 수도 있는데 뭘 그러냐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그녀를 안심시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사실 그도 아이를 키워봤지만, 어디 아이들이 어른의 마음대로만 자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뛰지 말란다고 안 뛰면 이미 아이가 아니다. 그래서 그도 윗집 여자에게 한마디라도 하려다가 번번이 참곤 한 것이다. 

    

그렇게 그가 층간 소음을 참고 지낸 지가 햇수로 사 년이 되었다. 그동안 윗집 아이는 점점 더 커가면서 체중도 늘었을 것은 당연지사인데, 뛰는 버릇은 오히려 나이에 정비례해서 늘어가는 것만 같았다. 어릴 적에는 그나마 저녁에 좀 일찍 잠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밤늦게나 새벽에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하루 중 시도 때도 없이 발소리가 그의 집 천장을 울렸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걸음걸이에 당연히 조심하여야 하는데, 윗집 아이에게는 그런 조심성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인사 하나는 아주 깍듯하게 하므로, 그 얼굴에 대고 듣기 거북한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그도 그냥 웃는 얼굴로 인사만 하곤 했었다. 그의 생각에는 아마도 윗집 여자나 아이가 그를 보면 무조건 죄송하다고 하면서 굽신거리는 태도로 선수를 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윗집 여자와 아이는 그의 불만이 표출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는 매번 속는 기분으로 그들에게 웃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속으로 삭이고 있던 울화통이 터져버렸다. 뒤늦게 자격시험공부를 하던 그는 거의 이 주일을 내내 뛰는 윗집 아이에게 분노하고 말았다. 결국 그는 칼을 빼 들었다. 윗집에 직접 이야기하기가 그래도 좀 껄끄러웠던지라, 경비실에 전화해서 윗집에 말해달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잠시 기다리니 윗집의 소음이 멈추고 조용해졌다. 진즉에 시끄러울 때마다 이렇게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엘리베이터 안에서 윗집 여자를 만났다. 그는 아무래도 경비실에 전화한 일이 마음에 걸려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던 차에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시끄럽게 해서 미안했다면서 다음 주에 이사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그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러냐고 하고 말았다.  

    

드디어 윗집이 이사 가고 새로운 이웃이 이사 왔다. 그는 거실 창밖을 오르내리는 사다리차 이삿짐을 보면서 이번만큼은 조용한 이웃이 이사 왔기를 빌었다. 윗집 이사로 집안도 시끄럽고 하길래 산책이나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을 나와서 정원을 걷던 그는 벤치에 잠시 앉아서 깔깔거리며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역시 아이들은 자랄 때, 저렇게 뛰어놀면서 자라야 하는데 사실 그런 장소가 마땅찮을 뿐 아니라 놀 시간도 없이 자라는 것이 안쓰럽게 생각되었다. 아마 이사 간 윗집 아이들도 저렇게 뛰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사 년을 참았으면서도 이사 갈 때까지 그깟 며칠을 더 참아주지 못하고 뛰지 말라고 한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 아이들이 사는 집의 아랫집도 꽤나 층간소음에 시달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쉬었다가 일어선 그 앞으로 한 아이가 뛰어왔다. 술래잡기라도 하는지 그 아이는 뒤에 따라오는 아이들을 돌아보면서 앞도 안 보고 달려오던 바람에 거의 그에게 부딪힐 뻔한 것을 그가 잡으면서 조심해서 놀라고 말했다. “아저씨 죄송합니다.”라고 하면서 돌아서는 아이의 모습에서 그는 예기치 않은 불길함을 느끼며 아이에게 물었다. “너 이 아파트에 사니?” 그의 물음에 아이는 그를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보다가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말없이 이삿짐 사다리차를 손으로 가리켰다. 



대문 사진 출처는 한화 Solutions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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