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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May 23. 2023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와 그녀는 어떻게 될까?

어제도 그는 현관문 앞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약속이나 한 듯, 옆집 문도 열리면서 그녀가 나왔다. 그녀는 그를 보더니 아무 말 없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곧바로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고, 그도 그녀를 따라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잠시 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둘은 출근길 비좁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엘리베이터 안의 주민들은 두 사람이 들어서자 조금씩 밀착해서 공간을 만들어 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주민들과 사소한 신체적 접촉이 행해지는 것까지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러고 나서는 마치 옆 사람에게 숨소리조차 들키지 않으려는 듯 각자의 휴대전화 화면만 들여다보면서 엘리베이터가 주차장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차량이 있는 방향으로 흩어졌으며, 그녀도 그와는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그녀를 본 것은 한 달쯤 전의 일이다.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파트의 주민들 사이에는 도무지 인사라는 것이 없었다. 보통은 지나치다 낯익은 얼굴을 만나면 가벼운 인사를 한다거나 하는 것이 같은 아파트 주민 사이의 풍경인데, 그는 그런 사람들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자연히 바로 옆집에 사는 주민일지라도 우연히 마주치기 전에는 서로 알고 지낼 리가 만무했다. 요즘에 와서 그녀와 가벼운 눈인사라도 나누게 된 것은 순전히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 문을 나서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신경을 쓴 그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녀를 처음 본 날, 그는 종일 그녀 생각에만 몰두했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시간만 나면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과연 그녀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부터 시작해서 혹시 기혼녀는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생각지도 않게 가까운 곳에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이성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살짝 가슴이 떨렸던 것뿐이었다. 그 나이가 되도록 모태 솔로였던 그였으니, 그가 그런 마음을 갖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에 빠지다 보니 그의 상상은 자꾸만 끝없이 폭주하고 있었다. 혹시 그녀도 그를 본 날 이후로, 그에 대해서 그저 그런 이웃집 남자가 아닌 호감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해 보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와 집을 나서는 시간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맞출 수 있었겠는가 하는 자기 위안적인 망상에도 빠져 보았다. 

     

그가 처음 본 여성에게 그런 마음을 갖게 된 이유는 순전히 그녀의 미모 때문이었다. 갸름하고, 화장기라고는 거의 없는 깨끗한 얼굴에 포니테일 스타일로 바짝 추켜올려서 묶은 긴 머리가 그의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데다가 날씬한 체형에, 키도 거의 그의 눈높이와 비슷할 정도로 크다는 사실이 더욱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그만의 생각에 빠져서 그녀를 그의 취향에 맞게 재단해 보기도 하였다. 

     

그런 마음을 지닌 채 한 달 동안 그는 틈틈이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 기회를 엿보았다. 물론 주저할 것 없이 그냥 평범하게 “안녕하세요? 매일 이 시간에 출근하시네요.” 같은 말로 말문을 열 수도 있었지만, 다른 남자에게는 손쉬운, 그런 말 한마디 건네는 일조차 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미적거리다 보면 엘리베이터는 도착했고, 일단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나면 그것으로 두 사람만의 시간은 끝났다. 그러니 하루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만이 그가 그녀에게 말을 걸기는커녕, 그녀의 옆모습이라도 훔쳐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날이 갈수록 그녀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생전 알지도 못했던 그녀를 이성 친구처럼 간주해서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매일 마주치는 사이에 그냥 자연스러운 인사라도 몇 마디 나누는 사이가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싶었다. 누가 알겠는가? 혹시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지내다 보면 그녀에 관해서 좀 더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고, 그러다 보면 지금보다는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렇게 그의 상상은 끝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는 현관문 안쪽에서 옆집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옆집 문이 열리고 문을 나서는 그녀의 구두 소리를 들으며 그도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녀는 그의 집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흘깃 쳐다보고는 바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고, 그도 그녀의 옆에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이내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둘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날따라 엘리베이터 안에는 두 사람 이외의 주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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