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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Jun 01. 2023

지각

나의 학창생활은 지각의 연속이었다.

오늘도 눈을 뜨니 여지없이 지각이었다. 망했다. 오늘부터는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또 늦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한심한 것 같다.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었는데도 일찍 일어나지 못한 것을 보면, 구제 불능이다. 물론 아침에 엄마가 깨우시기는 하는데, 눈을 떴다가도 일어나지 못하고 다시 잠드는 내가 문제다.     

생각해 보면 개학 후 등교 시간에 맞춰서 학교에 간 적이 없다. 내가 등교하는 시간은 빠르면 점심시간 전이고, 조금 더 늦을 경우는 오후 한 시쯤 된다. 물론 그때까지 잠을 자느라고 늦는 것은 아니다. 하도 늦잠을 자다 보니 잠에서 깨더라도 점점 학교에 가기 싫어서 미적거리다 보면 늦어지는 것이다. 같은 반 친구들도 매일 늦는 나를 한심하게 보는 것 같았다. 아니, 같은 반 친구뿐 아니라 다른 반 아이들까지도 지나가는 나를 보면 뒤에 대고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았다. 사실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데다가 과학고나 외고에 지원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야 할 필요도 없다 보니, 학교생활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런 놀림감이 되고 보니 점점 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내가 이런 생활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엄마와 아빠도 거의 포기 상태인 데다가 선생님들까지도 나에게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으신다. 나는 이미 교무실에서도 유명 인사가 되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교과 선생님마다 내가 지각해서 수업 시간에 안 보이면, 교무실에 가서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기 때문이다. “걔는 오늘도 또 지각했더라고요.” 하면서 말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는 나대로 공부에 흥미를 들이지 못하고 있다 보니까, 학교에 가기가 정말 죽기보다도 싫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학교에 계속 다니는 이유는 순전히 담임 선생님을 생각해서이다. 아이들과 다른 선생님들 모두 나에게 무관심하고 쑥덕거리고 있을 때도 담임 선생님만큼은 나에게 잘해주셨다. 담임 선생님은 내가 지각하더라도 절대 화를 내시거나 하는 법이 없이, 항상 웃는 얼굴로 반겨주신다. 솔직히 담임 선생님까지 내가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엄하게 꾸짖으시거나 했으면, 나는 더욱 학교에 가기 싫어졌을 것이다.

     

내가 늦으면 담임 선생님은 항상 “내일부터는 일찍 오자. 알았지? 그러는 거야?” 하시며 다독여주신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도 다른 생각만 하는 나를 수업 내용에 집중시키시려는 듯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수업을 진행하실 때면,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나마 수업에 집중하게 된다. 선생님께서 그렇게까지 챙겨 주시는데도 다른 짓을 하는 것은 선생님의 호의를 배신하는 것만 같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신경을 써 주시는데도 매일 늦게 등교해서 교무실로 선생님을 뵈러 갈 때면 솔직히 죄송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또 지각이니 그럴 때마다 담임 선생님 얼굴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늘은 드디어 큰 맘을 먹고 선생님과 약속했다. 나도 언제까지 이렇게 문제 학생으로 남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일부터는 지각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내 말을 들으신 선생님께서는 활짝 웃으면서 “정말이지? 내일부터는 지각 안 할 거지? 선생님은 믿는다.”라고 하셨고, 나는 “네, 선생님. 믿어 주세요. 약속 꼭 지킬게요.”라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까지 나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셨는데, 이제 이번 학년도 다 끝나가는 마당에 지금부터라도 선생님이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기로 한 것은 내가 봐도 기특한 결정이었다. 내가 출결 문제로 유급을 당하거나,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고 무사히 졸업한다면, 그것은 모두 담임 선생님 덕분일 것이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좀 쉬다가 내일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평상시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에 여느 날보다는 상쾌한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즉에 이럴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니, 교실에는 아직 반 아이들도 얼마 없었다. 내가 들어가니 아이들이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씽긋 웃으면서 내 자리에 앉았다. 순간 공연히 으슥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찍 학교에 오면 이렇게 마음이 편한 것을 그동안 왜 그렇게 일찍 오지 못했는지 내가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다가 나를 발견하시고는 활짝 웃으면서 반겨주셨고, 나는 나대로 약속을 지킨 것이 자랑스러워서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선생님. 저 약속대로 일찍 왔어요. 앞으로는 계속 지각하지 않을게요.”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말했다.   

   

“그래. 일찍 왔네? 그런데 지금이 몇 시니?”  

   

갑작스러운 선생님 말씀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고, 교실 풍경이 갑자기 내 방안의 모습으로 바뀌면서 벽에 걸린 시계가 열 시를 가리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수하러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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