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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Aug 09. 2023

브런치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지


아침에 브런치의 새로운 작가지원 프로그램에 대해서 한마디 했다가 삭제했다. 그리고 나서 생각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있기가 뭐해서 다시 한 번 글을 올린다. 




작년 6월의 일이다. 함께 시 창작을 시작한 문우로부터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작가들이 작품을 자유롭게 발표할 공간을 제공해 주고, 잘하면 출판의 기회도 마련해 준다는 말에 이끌려 작가 신청을 했고 단번에 작가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후부터 열심히 여러 작가님과 호응하면서 작품을 발행했고, 지금은 꽤 많은 수의 작가님과 교류의 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브런치에 대한 실망이 쌓여만 갔다. 원래 나는 순수문학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던지라 시를 쓰고 수필도 쓰고, 소설도 쓰면서 그 작품들을 발표할 공간을 찾던 중이었기에, 그런 발표 공간을 제공해 주는 브런치에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이라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는 허황한 메아리가 되어 울렸고, 플랫폼 메인은 온통 불륜, 이혼과 관련된 작가의 글로 도배가 되었다. 이때부터 브런치에 실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다양한 작가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는 브런치의 말을 믿고 꾸준히 나름대로 창작물을 발행하면서 구독자층을 형성해 나갔다. 하지만 브런치팀의 생각은 달랐다. 순진한 작가의 희망과는 다르게 상업적인 측면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었다. 책으로 출간되었을 경우, 제목부터가 서점을 방문한 잠재적 독자의 시선을 끌 만한 자극적이거나 기상천외한 글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결국 평범한 순수문학 지망생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창 정나미가 떨어져서 브런치 활동을 접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작가지원 프로그램을 새롭게 준비한다고 해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하지만 브런치가 획책하는 일이 다 그렇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사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은 아무나 안 된다고 하는 전략은 초기에 성공했다. 블로그는 계정만 생성하면 누구나 글을 쓸 수가 있었는데, 그 시기에 작가 모집도 일정한 시험(?)을 거쳐서 실시하겠다는 브런치팀의 전략에 대해 말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거기까지는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브런치 작가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말이다.  

   

하지만 브런치는 나름 자부심을 가진 작가들에게 또 한 번의 실망감을 안겨주다 못해, 작가를 우롱하는 작태를 서슴지 않았다. 어렵게 작가로 선정된 사람들에게 글을 쓰면 돈이 된다(그 돈도 브런치가 주는 것이 아니다.)는 인식을 심어주겠다면서 인심 쓰듯이 마련한 지원 프로그램도 허울뿐인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시작 첫날부터 명백하게 밝혀졌다. 브런치는 기준도 없이 이미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사람 중에서 아무나(?) 뽑아서 일정 분야별 전문 크리에이터라는 칭호를 주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제시한 크리에이터 선정의 4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작가들까지도 크리에이터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크리에이터의 글 중에서 브런치팀이 임의로 선정한 콘텐츠를 요일별로 메인에 공지하고 그 글마다 응원하기 기능을 이용해서 작가에게 후원금을 전달할 수 있는 창구를 제공한다고 했다. 이런 방법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브런치 작가는 아마도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우선 크리에이터 선정 기준부터 지나치게 브런치팀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했다. 그리고 크리에이터 별 콘텐츠 선정도 브런치팀 마음대로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가지밖에 없다. 브런치팀이 총애(?)하는 작가의 자극적인(시선을 많이 끌 만한) 기사 위주로 창작활동을 지원하겠다는 뜻 이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유튜브도 올라온 모든 동영상별로 일정 조회수와 구독자가 확보되면 클릭하는 횟수에 따라 광고 수입의 일정 부분을 크리에이터에게 지급한다. 브런치처럼 지원대상을 자기 마음대로 선정하지도 않을뿐더러 지원 대상 콘텐츠도 자기 멋대로 선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콘텐츠를 소비하는 독자에게 그 선택권을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브런치팀은 이상야릇한 시스템을 개발해 낸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브런치팀이 시대착오적 발상을 했다고 밖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물론 내가 이런 글을 올리면, 혹자는 내가 크리에이터 선정에서 탈락한 것이 기분 나빠서 그랬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도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 상한 것은 사실이다. 누구 못지않게 브런치 작가 활동도 열심히 했고, 나름 꾸준한 독자층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나보다 더 지명도가 있고, 더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님 중에서 크리에이터 선발에 탈락하신 분도 많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나는 것이다. 도대체 브런치는 작가님 글에 달린 댓글을 읽어 보기라도 하고 작가를 선발한 것인지 묻고 싶다. 작가별로 열성 구독자층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이라도 하고 작가를 선발한 것인지 진심으로 알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이런 글을 써 봐야 브런치 팀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꼬우면 네가 브런치를 떠나라는 식이다. 분명 그렇게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면에서 볼 때, 브런치가 이런 식으로 작가를 소홀히 생각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브런치 운영을 밀고 간다면 큰 오산이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시행 첫날부터 브런치에 올라온 다양한 글에 달린 댓글을 브런치팀이 한 번씩이라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국민이 없는 국가의 대통령을 존재할 수 없듯이, 작가가 없는 플랫폼은 존속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작가를 우습게 보는 플랫폼은 결국에 가서 막대한 운영 적자만 남기고 포털의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서 작가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반영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물론 일개 작가 중 한 명인 내가 이렇게 촉구한다고 해 봐야 콧방귀도 안 뀔 것은 명백하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브런치가 망해가는 꼴을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애정 어린 마음으로 한마디 해 본다.    

  

브런치의 건승을 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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