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분홍 감기’가 시산맥사의 ‘기획시선집’으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충청북도, 충북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예술활동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발간되었으며, 인터넷과 교보문고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총 4부 5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문학박사 이화영 시인의 해설이 마지막에 실려 있다.
나는 민은숙 시인의 1집 시집인 ‘앉은자리가 예쁜 나이테’를 읽고 쓴 글에서도 시인의 시가 편안함과 안락함, 그리고 다정함이 묻어 있는 글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 이전보다 조금 더 성숙한 여인의 독백이 묻어 있는 시가 많았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시인은 주변의 다양한 생물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독백인 양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시인이 유독 꽃을 좋아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꽃이 사랑을 이야기할 때 그 꽃은 시인이 되었다. “ 나도 매운 여자야 나도 꽃이야 나도 받고 싶다, 그 짙은 사랑”(대파꽃 中)에서처럼 꽃의 마음을 시인이 대변해 준다. 꽃이 시인이고, 시인이 꽃이다.
시인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는 1집에 비해, 더 많은 자연과의 대화에 관한 기록이다. 그런 모습과 상반되는 시어나 표현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이 이번 시집을 읽는데 새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당신과 내가 그에 그녀가 그들이 나와 뒤섞이는 머랭치기가 이어진다”(나들목에서), “도발이 부축인 궤적에서 날뛰는 야생마의 꼬리를 잡는 것이 그와 그녀의 롤이다”(롤하는 남자), “더 세게 더 강하게 더 빠르게 온 힘을 다해 쳐봐요 메트로놈이 정신 잃을 지경까지 완벽한 헤비메탈을 향하여”(탬버린), “내 그림자는 아직 로밍되지 않았습니다”(참아주세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시를 쓰면서 시인 듯 시가 아닌 듯 그냥 편하게 읊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머랭치기든 롤이든 로밍도 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시어’라는 생각인데, 민 시인의 시에서는 찰떡같이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민시인의 시가 예전보다 한 걸음 더 독자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 시인은 시에서 색감을 아주 적절하게 가지고 놀고 있다. “거울 속에서 그녀의 붉은 실이 사부작거리고 있지”(꽃, 수를 놓다), “당신은 혼잣말로 시드는 붉은 언어들”(오래된 고백), “놀란 꽃잎이 지상의 붉은 눈동자를 쓸어 담습니다”(꽃의 다크 서클), “안에 있어도 삭막해지는 붉은 질량”(사랑의 질량) 등, 붉은, 붉은, 붉은, 붉은, 그것은 사랑이었다. 물론 사랑이라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읽는 사람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묘하다. 붉은 사랑은 정열이라기보다 어느 면에서는 애절한 사랑이기도 하다. 아마 다른 시인이 붉다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격정을 그렸을 것이나, 민 시인은 차분함을 그리고 있다.
민 시인의 시집을 소개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 진심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이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그제야 독자는 시인의 얼굴을 본다. 시인의 마음처럼 느껴지는 시를 한 편 소개하고 싶다.
우아하고 고고하게 날고 싶었다
척박한 황무지라 아직은 낯설었다
부드럽고 연약한 날개라야 몸이 가볍다고
바람에 수없이 부딪히며 살았다
공기 방울을 셀 수 없이 들이켜야 날아가는 몸짓이 되는 너는
날카로운 돌멩이에 부리를 쪼았다
자꾸만 흔들리는 날개도 뽑았다
흔들리는 풍차를 닮기 위해 공중에서 하강하는 너는
가라앉은 앙금을 빗물에 내보내듯 말초신경도 버렸다
밟혀도 웃고 뭉개도 일어서는 너의 이력에는
그래도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로스의 용기를 보였다.
‘어떤 새의 이력서’ 전문
민 시인은 새가 된다. 환골탈태하는 솔개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일지라도 듣는 사람에게는 그럴듯한 이야기리라. 앞으로 30년 이상을 더 살기 위해서 부리를 쪼고 날개를 뽑아 깃털을 다듬는 중이다. 이카로스는 밀랍이 녹으면서 날개를 잃어 추락하지만, 민 시인은 아주 튼튼한 날개를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처럼 열심히 노력한다면 말이다.
깊어 가는 가을에 한 번쯤 펼쳐볼 만한 시집으로 소개하고 싶다. 민 시인의 건승을 기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