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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Oct 22. 2023

빗방울

땅에 떨어져서 흙으로 돌아간 많은 빗방울을 추모하며.

빗방울 

 

나뭇잎 끝에 매달린 빗방울 

기어이 손을 놓았다 

자기만큼 약한 나뭇잎에 

매달린 것이 미안했나 보다

 

그래도 

 

나뭇잎은 빗방울이 

안타깝다는 생각조차 없다 

오히려 떨어져서 다행이라 생각할 뿐

나뭇잎 눈에 빗방울은 

존재의 의미조차 없었다 


떨어진 빗방울은

나뭇잎의 발아래를

촉촉이 적시며 

미련한 짝사랑을 태운다 


빗방울의 눈물 마신

나뭇잎은 무럭무럭 자랐어도

화려한 옷으로 뽐내던 가을이 지나기 무섭게

빗방울이 잠들었던 

그 위에 떨어져 생을 다한다 


빗방울이 나뭇잎을 반긴다     





 

이 시는 단행본으로 출간된 시집 <흩뿌린 먹물의 농담 닮은 무채의 강물이 흐른다>에 수록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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