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흔 Jan 09. 2024

손자 이름 作名 秘話

첫 손자 이름 짓기가 이렇게 복잡하고 힘들 줄 몰랐다.

지난 1월 1일, 새해 첫날에 우리 집안의 첫 손자가 태어났다. 물론 출생지는 중국 광저우시이다. 우리는 한참 전부터 준비했던 이름 짓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물론 한국 내에서 한국인끼리 결혼한 사이라면, 아마 아이의 이름을 짓는 과정이 별로 복잡하지 않을 수 있다. 대부분 아이의 조부모나 부모가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어 온다든지, 아니면 그냥 사주팔자나 돌림자 무시하고 부르기 편한 이름으로 짓든지 할 것이다. 또한 한국인이 영어권 배우자와 사이에 아이를 출생했다면 한국 이름과 영어 이름을 각각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이고, 사주나 작명 원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진심인 나라들이기 때문에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일단 정확히 아이가 태어난 時를 확인하자마자 작명 프로그램을 돌려 보았다. 요즘은 좋은 세상이라서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렇게 아이의 사주에 적합한 한자 이름을 무작위로 추출한 후에 아들 내외에게 보냈다. 물론 우리가 결정한 후에 통보해도 되겠지만, 요즘 세상이 어디 그런가? 우리보다도 더 오랫동안 아이의 이름을 부를 아들 내외의 의견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세상이지 않은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정작 배 아파 가면서 아이를 출산한 며느리의 의견을 듣지 않고 아이의 이름을 지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순조롭게 아이의 이름이 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문화의 차이에 의한 암초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순수 한글 이름을 제외하고는 출생신고를 할 때, 한자 이름을 함께 기재하도록 하고 있으며, 그때 사용할 수 있는 한자를 정해두었다. 그러므로 인명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한자로 이름을 지었다가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실제로 우리 딸의 출생신고 시에 작명소에서 지은 이름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신고하러 갔더니 해당 한자가 인명용이 아니라고 해서 다른 이름으로 신고한 경험이 있었다. 이렇듯 한글 이름에 맞는 한자 이름을 결정하는 것부터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는 중국에서 이름에 쓰는 한자와 그렇지 않은 한자까지 검토해야 했다. 우리가 좋은 이름이라고 들이대면 며느리와 사돈 측에서 그런 이름은 곤란하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고, 또 그쪽에서 지은 이름은 한국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이름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작명이 늦어지게 되었고 시간만 흘러갔다. 그렇게 한중 양쪽에서 이름을 놓고 마치 핑퐁 하듯 오가다 보니 어느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하루 이틀 안에 이름이 결정되고, 출생신고까지 해치울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중국에서는 병원에서 출생증명서를 발급하는 절차가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었다. 워낙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보니 혼인신고를 할 때도 신고 순서를 은행의 대기표 뽑듯이, 무슨 포레스텔라 콘서트 티켓 예약하듯이 인터넷으로 거의 피켓팅에 해당하는 경쟁을 거쳐서 정했는데, 병원 출생증명서 발급도 그런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다 보니 점차 양측의 의견이 일치를 보았다. 여러 이름 중에 2개가 남았고, 마지막으로 그중 하나로 이름을 결정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일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의 오산이었다. 우리가 결정했던 이름에서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결격사유처럼 보이는 결점(?)이 확인되었다. 결국 양측 집안은 또다시 개미지옥 같은 작명 프로세스에 돌입했다. 


그렇게 이틀이라는 시간을 더 보냈는데, 여전히 적당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 생각지도 않았던 사돈 집안에서 사주와 작명을 공부했던 친지 한 분께서 그렇게 결격사유처럼 보이는 결점이 있다고 생각했던 이름이 사실은 아이의 사주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좋은 이름이라는 말씀을 하셨고, 사돈 측에서는 그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물론 우리는 처음부터 그 이름을 선호했으니 아주 잘된 일이었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그 이름은 우리 딸, 즉 아이의 고모가 추천한 이름이었기에 더욱 애착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이름을 결정하고 나니까, 처음에는 어색하게 들렸던 이름이 입에 착착 붙는 정감이 있는 이름으로 들리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손자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는 생각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넘도록 태명으로만 부르던 손자가 드디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제 내일 중국 관공서에 출생신고를 하고, 그 후에 한국 영사관에서 출생신고를 하면 모든 일은 마무리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손자가 한국에 들어와서 거주지가 결정되면 그때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만 신고해서 발급받으면 모든 절차가 마무리될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작명 소동이 있었고, 우리 집안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지금은 좋은 세상이라서 앱으로 산후조리원에 있는 손자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어제는 보니까 몇 시간을 같은 자세로 조용히 잠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이름을 지어준 고모(우리 딸) 어릴 적 모습이었다. 우리는 그런 손자의 모습을 보면서, 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깨서 울어댔는데, 손자가 아빠를 닮지 않고 고모를 닮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제는 우리 손자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기만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아버지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