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이 아니라 정말 제각각 색깔이 있는 여자 열 명이 모여서 책을 출간했다. 그것도 벌써 일곱 번째 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작가 중 한 명을 알고 있었기에,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주문했다.
책은 어떻게 보면 평범하다. 그냥 여러 작가가 모여서 출간한 공동 저자의 책일 뿐인데, 그 저자들이 예사롭지 않다. 수록된 글의 내용은 당연히 일상 산문에 속하는 글들이지만, 작가들은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여러 교육기관에서 강의하는 작가도 있고, 심지어 출판업체를 경영하는 작가 겸 경영자도 있다. 그녀들이 어떤 인연으로 모인 것인지는 내가 알 바 아니나, 글에 담긴 노련한 필력만큼은 감출 수가 없었다.
책은 작가 열 명이 각각 두 편의 글을 내어, 총 스무 편의 글이 이백이십여 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다. 공저답게 책머리 글도 ‘글쓴이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노란색, 벽람색, 검정색, 파랑색, 레드빛, 보랏빛, 튀니지안 블루, 연둣빛 등의 색이 그녀들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 글감을 끄집어내어, 책장에 얹었다. 게다가 각 작가의 글 앞에는 글이 간직한 색상에 어울리는 사진도 실려있어서, 책을 읽는 이에게 작가가 색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좀 더 정확하게 전해주고 있다. 글만 읽는 것보다는, 확실히 사진도 함께 보는 것이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에 훨씬 자극적이다.
기왕에 책을 소개하는 김에 작가별로 색에 대해 갖고 있는 다양한 사연이나 추억에 대해 간단하게 들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명숙 작가가 바로 열 명의 작가 중에서 내가 안다고 한 작가이다. 그녀는 노란색과 벽람색에 얽힌 추억을 소환했다. 노란색은 어린 시절의 봄앓이를 떠올리고, 벽람색은 사제 간이면서도 허물없이 친구이자 동기간처럼 지냈던 작고하신 스승님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한봉숙 작가에게 검정색이란 작가와 출판인으로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색이며, 남동생을 보기 위해 사내아이의 옷을 입고 자라야 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끝내 회피하고 싶었음에도 결국 내면에서는 매력을 놓을 수 없었던 파란색에 대한 기억을 글에 담았다.
흰색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시원이고, 죽음이자 부활이며, 순결이자 희생을 상징하는 색으로 알고 있지만, 휘민 작가에게는 어머니와 언니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한다. 바다를 좋아했던 소녀에게 자신이 좋아한 것은 바다가 아닌 쪽빛이었음을 알게 해 준 파랑색은 언제나 작가에게 먼 곳과 그리움의 색이었다.
박혜경 작가에게는 검은색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말속에 실렸던 칠흑 같은 어둠부터 유럽 여행 중에 들른, 로리앙에서의 밤하늘 아래 친구와의 추억을 불러온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에서 마주한 붉은빛 무대가 불러낸 2022년의 붉은빛 물결과 함성을 떠올리며, 붉은색을 작가의 삶을 응원하는 색깔로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종지나물꽃과 그 꽃에 얽힌 H라는 소녀와의 인연을 떠올리는 엄혜자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며, 가장 좋아하는 색은 보랏빛이다. 꽃이 색을 떠올리게 하고, 색이 불러온 인연인 H는 늘 추억의 갈피 속에서 보랏빛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 작가에게 또 하나의 추억을 안겨준 색은 블루이다. 남들은 우울함을 상징하는 색이라고는 하지만, 작가에게는 행복과 행운을 상징하는 색이다. 그래서 인터넷 공간에서 작가의 이름도 ‘인디언 블루’이다.
블루에 꽂힌 작가가 또 한 명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오영미 작가는 블루를 좋아한다. 작가는 특이하게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블루에 대한 추억을 간직해 왔다. 그리스 산토리니, 모로코 쉐프샤우엔, 남미의 빙하, 튀니지의 시디 부사이드 모두의 색이 블루이다. 작가는 특정한 색을 지칭하지 않았지만 천연 염색에 매료되어 한 번은 염색을 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이른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색 중에 블루가 포함되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신자 작가의 기억 속에서 색깔은 다채롭고 개성이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봄꽃처럼 선명하고 생동감 있고 모두에게 기쁨과 설렘을 지닌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대학 시절 남이섬 엠티는 밤하늘을 수놓던 수많은 별의 색이 고작 금색, 은색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와 글로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는 사실을 작가에게 알려주었다. 쪽빛 물줄기와 까만 밤하늘이 선사한 색채는 남이섬의 특별한 선물이었다.
정해성 작가에게 색은 영화나 미술과 같은 시각 예술뿐 아니라 음악 및 문학 속에서도 삶의 순간순간에 작가의 감성과 감각을 자극한다. 소설 속 인물을 생각하며 연둣빛을 떠올리고, 작가는 하루하루 현재의 삶을 계획하면서 삶의 의미를 다져보려 하고 있다. 정미경의 소설 <내 아들의 연인>과 벨라 버르토크의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에서 보여주는 색깔의 의미를 통해 색이 다양한 소통의 채널로 작용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다.
조규남 작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노랑은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들뜨다가 차분하다가 연약하다가 강하다가 화려하다가 찬란하다가. 더욱 강렬한 빨강을 제치고 멀리까지 뻗어나가는 튤립의 노랑에서 지는 듯 이기는 강인함을 본다. 작가가 좋아하는 또 다른 하나의 색인 보라색은 빨강과 파랑의 중간색이다. 뭔가 어중간한 색이라 채워야 할 것이 많아 보이는 보라색은 작가의 건강이나 삶과 조금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
쏟아지는 하얀 눈송이는 조연향 작가에게 수많은 지난 추억을 떠올려 주고 있다. 눈처럼 하얗고 순수했던 그 시절의 추억에서, 일본 여행 중,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마구 떠들면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던 기억까지 눈은 작가에게 항상 지난날을 떠올리게 한다. 하얀 눈과 함께 작가의 기억을 소환하는 색은 먹물의 검은색이다. 작가는 가끔 붓을 들고 천천히 검은 먹물 속으로 스며들고 싶어 한다. 어쩌면 그것은 이렇게 빠르고 편하게 살아가는 기계적인 일상에서 잠시라도 일탈하고픈 심사인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렇게 책 속에서 열 명의 여류 작가가 각자 색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나도 과연 내 인생의 색은 무슨 색인가 하는 생각에 잠시 빠져보았다. 산문집을 대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고, 덕분에 작가 지망생의 처지에서 멋진 글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준 열 명의 작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