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제12회 젊은 작가상을 받은 일곱 작가의 작품을 수록한 책이다. 대상을 받은 전하영 작가는 2019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작가이다. 그리고 2018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김지연 작가, 그 외의 동아일보 신춘 작가 두 명, 자음과 모음 신인상, 실천문학 신인상, 문학과 지성사 신인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이 모였다.
전하영 작가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두 개의 시간대에 걸친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심리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두 여자는 한 남자를 떠났고, 한 여자 앞에 다시 또 그 남자를 연상시키는 다른 남자가 옛날의 자기들처럼 스무 살 남짓의 여자와 함께 등장한다. 옛날 강의실과 뒤풀이 장소에서 많이 보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어깨와 허벅지를 더듬는 상상에 빠져 본다.
옛날의 남자나 지금의 남자는 유난스럽게 스무 살 여자에게 집착한다. 솔직히 예술을 빙자한 파렴치한 접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 여자는 그런 그에게 끌리고, 또 한 여자는 마치 여학교 기숙사 사감처럼 그녀를 닦달하고 있다. 두 여자는 결국 어느 편이 독자의 마음속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을지는 나는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우연히 다시 만난 두 여자는 스무 살 시절에는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눈다. 연수가 건네준 영국 작가의 책에 연두색 형광펜으로 마킹한 부분, 두 여자의 이야기는 우연인지 몰라도 연수와 주인공의 이야기로만 읽힌다. 대학 시절 모든 학생이 사랑한 그 남자 교수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남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 옛날의 그처럼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를 탐(?)하는 또 다른 남자가 눈앞에 나타났지만, 옛날 연수에게 했던 것처럼 그 어린 여자아이를 나이 먹은 남자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 아니, 애초부터 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전반에 걸친 두 여인의 모습을 보다 확실하게 그려주는 몇 문장이 소설의 후반부를 장식하고 있다.
“(……)여자는 두 종류라고 말하곤 했다. 매사에 분명한 여자와 미스테리를 남겨두는 여자. 그리고 이는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이자, 가장 먼저 그를 매료시키거나 그렇지 않게 하는 요소였다.”
둘 중에서라면 나는 당연히 ‘매사에 분명한 여자’ 쪽이었다. 시작과 끝을 보고 싶어 하는 타입. 가이드북을 샅샅이 뒤져 원하는 곳을 찾아내고 실망하든 말든 거기에 도착해야만 한다. 연수는 말할 것도 없이 ‘미스테리를 남겨두는 여자’에 속했다. 호오가 명확하지 않은 중간 지대에서 모호한 태도로 신비로운이라는 타고난 능력을 발휘하는 여자. 계산대 부근에서 내가 그런 이야기를 무심코 해버렸을 때에도 연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음, 그런가……”“하고 생각에 잠겼다.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작품 후미에는 각각 ‘작가 노트’와 평론가의 ‘해설’이 곁들여 있었다. 물론 자신이 쓴 작품에 대한 작가 노트를 읽는 것이 낯선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해설을 곁들여서 읽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사실 나는 독자가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창작 의도나 저명한 평론가의 해설을 넘어서는 독자만의 작품 해석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데에 한 표를 던지는 사람이었기에, 이 책을 읽으며 작품에 기울이는 정성 이상으로 작가 노트와 해설을 꼼꼼하게 읽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어떤 작품이든지 읽는 사람의 시선은 거의 비슷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읽는 사람의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는 자신만의 상상력에 따른 해석이 있을 뿐이다.’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나도 평론이라는 탈을 쓴 글을 써 본 적도 있긴 하지만, 내가 아무리 작품을 호도하는 글을 썼다고 해서, 그 글이 불특정 다수의 다른 비평가들에 의하여 비난받아야 하는 무지한 글은 아니라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작품만 더 소개하겠다. 김멜라 작가의 <나뭇잎이 마르고>는 ‘체’와 ‘앙헬’이라는 두 여자의 이야기이다. 체는 육체적인 장애를 갖고 있다. 사실 작가는 그것을 장애라고 그리기는 했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장애가 아닌지도 모른다. 장애라고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장애로 보일 뿐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체를 안고 있다가 떨어트려 낙상을 입은 후부터 그랬다고 한다. 양발의 균형도 잡히지 않아 걷는 모습도 불안해 보이고, 말도 어눌한 체만의 화법이 있어서 다른 사람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자꾸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미가 해석된다. 아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지극히 또렷한 발음의 자연스러운 대화로 들린다. 체의 정신적 사고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이야기가 몇 개 등장한다. 언뜻언뜻 작가가 보여주는 체의 모습에서 사회 약자에 대한 의식과, 같은 여자인 앙헬에게 결혼하자고 하는 모습에서 보여주는 퀴어的 가치관, 삼 씨를 심으러 다니는 모습에서 보여주는 미래지향적 사고 등 다양한 얼굴을 볼 수 있다. 이런 시도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릴 문제는 아니지만, 작가는 독자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체가 보여주는 육체적 장애에 대한 동정과 정신적 사고에 대한 동조의 사이를 오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정상인으로 자처하는 무리가 정상인이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작가 노트에서 작가도 말했듯이 작가 세계와 독자 세계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간격을 좁히려는 시도로 읽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 유쾌한 한 쌍의 레즈비언 커플 이야기를 다룬 ‘김지연’ 작가의 <사랑하는 일>, 재개발 소문이 도는 집의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이야기를 그린 ‘김혜진’ 작가의 <목화맨션>, 아들의 자존감을 올려주기 위하여 게임 과외까지 받는 엄마의 양육 일기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교묘하게 독자를 소설 속 ‘엄마’의 자리에 올려놓는 ‘박서련’ 작가의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진정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립영화’라는 세계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는 서이제 작가의 <0%를 향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 안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한정현 작가의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5편이 함께 실려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학평론가 강지희, 소설가 박민정, 문학평론가 신수정, 소설가 이승우와 최윤의 2021년 젊은 작가상 심사 경위와 심사평까지 실려 있다.
소설을 읽고 심사평이나 작품 해설을 읽는 것은 확실히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읽다 보면 간혹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인하여 작품이 갖는 성격이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책에 실린 작품들에 있어서는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또한 일부 작품의 경우 소설의 내용으로 인식하기에는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그 정보의 출처와 관련된 주석까지 꼼꼼하게 달려 있다는 점에서 솔직히 몰입해서 읽기에 약간의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마치 논문을 읽듯이 처음 접하는 용어를 검색해 보아야 할 정도의 문장 기술이 나에게는 약간 버거웠다고나 할까? 아무튼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보다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접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