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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Jun 19. 2024

유산遺産

유산遺産         


 

태풍 말라카스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우리 차를 곱게 목욕시키고 늦봄 내내 버티다 사라진 잔설에 반야봉 가문비나무 목은 타들어만 가는데 지구 한쪽에서 대형 산불 피하려 검게 타버린 나뭇가지 끌어안고 매달린 코알라의 슬픈 눈망울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고 한낮 뜨거운 햇볕에 달궈진 산책길 선로 위에서 포락의 형을 견디려 발끝으로만 동동거리는 내 모습은 마치 저 북극 빙하가 녹아 얇아지면서 깨진 얼음 사이로 빠지지 않으려 네 팔다리를 있는 대로 벌린 채 얼음 위에 배 깔고 납작 엎드려 기는 북극곰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발바닥 뚫고 올라온 열기가 내장 속을 휘돌다 눈앞에 생각지 못한 오로라를 펼쳤고 내 몸에서 해방된 그것이 하늘 저편 희미하게 보이는 탈출구 찾아 순식간에 휘돌아 치며 제 갈 길을 달리는데 무더운 날씨 속 집안 에어컨이 유혹해도 달래고 제지해야 할 일이라 자식들에게 유산은 못 줄망정 빚져 가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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