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말라카스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우리 차를 곱게 목욕시키고 늦봄 내내 버티다 사라진 잔설에 반야봉 가문비나무 목은 타들어만 가는데 지구 한쪽에서 대형 산불 피하려 검게 타버린 나뭇가지 끌어안고 매달린 코알라의 슬픈 눈망울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고 한낮 뜨거운 햇볕에 달궈진 산책길 선로 위에서 포락의 형을 견디려 발끝으로만 동동거리는 내 모습은 마치 저 북극 빙하가 녹아 얇아지면서 깨진 얼음 사이로 빠지지 않으려 네 팔다리를 있는 대로 벌린 채 얼음 위에 배 깔고 납작 엎드려 기는 북극곰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발바닥 뚫고 올라온 열기가 내장 속을 휘돌다 눈앞에 생각지 못한 오로라를 펼쳤고 내 몸에서 해방된 그것이 하늘 저편 희미하게 보이는 탈출구 찾아 순식간에 휘돌아 치며 제 갈 길을 달리는데 무더운 날씨 속 집안 에어컨이 유혹해도 달래고 제지해야 할 일이라 자식들에게 유산은 못 줄망정 빚져 가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