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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Jul 30. 2024

한국 근현대 자수전을 다녀와서

과연 그 새들은 태양을 잡았을까?

요즘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근현대 자수 :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전시회에 다녀오는 것이 유행이라도 된 듯하다. 이전에 유미래 작가님의 글을 읽은 지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최명숙 작가님의 글이 올라왔다. 글을 읽던 아내가 말한다. 이런 전시회라면 우리도 가 줘야 하는 거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두말하지 않고 외출 준비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부터 차를 갖고 나가지 않고 전철로 아내와 둘이 어디라도 좀 다녀오려고 했는데, 적당한 목적지가 생긴 셈이다. 

     

전철 외출을 생각한 이유는 “어르신 교통카드”를 사용해 보기 위함이었다. 생각해 보니 세월도 빠르다. 언제 이렇게 지났는지 생각도 안 나는데, 문득 돌아보니 여기까지 와있었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므로,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전철역에 도착해서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다시 한번 기분이 야릇했다. 전철에서 내려 덕수궁에 들어갈 때도 신분증만 보이고 들어갔다. 미술관 입구에서도 “만 65세 이상 (1) 매 0원”이라고 찍힌 티켓을 받았다. 어제까지의 삶과 오늘부터의 삶이 전혀 다른 삶인 것만 같았다. 이렇게 무료로 입장해도 되는가 싶었다.  

   

사실 나는 자수에 대해 모른다. 바늘로 천에 색색으로 무늬를 만들면서 수를 놓는 것이라는 그저 피상적인 정의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랬던 나에게 자수라는 예술이 새롭게 다가왔다. 옛날에 양갓집 처녀들이 결혼하기 전에 수를 놓고 지내는 모습은 연속극이나 뭐 그런 데에서 가끔 보기는 했지만, 그런 자수 작품이 오늘 본 작품들처럼 거창한 규모의 작품으로도 태어날 수 있는 것인지 정말 몰랐다. 아주 작은 작품들부터 시작해서 몇 백호짜리 그림처럼 큰, 그리고 아예 열 폭 병풍으로 제작된 작품들은 처음부터 나의 상상을 깡그리 뭉개버렸다. 이건 단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수가 예술로 대접을 받은 것은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물론 지금은 옛날의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 같은 규모의 전시회에서도 공예 분야로 대접받는 예술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 이전에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에게 자수는 어쩌면 수양이나 참선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큰 규모의 작품을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은 분명했다. 자수 작품의 소재만 보아도 그렇다. 병풍 작품의 소재는 새와 나무, 십장생과 같은 대상이 많았다. 관복을 포함한 의복이나 보료와 베개 같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소재도 있었고, 심지어 한자로 쓴 것과 같은 병풍의 글자를 하나하나 자수로 새긴 작품도 있었다.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 작품들을 제작한 작가들이 작업을 끝내고 나서 정신 분열이나 정신착란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다행일 정도라는 생각도 했다. 그만큼 집중하지 않고는 완성할 수 없는 대단한 작품들이라고 생각하니 관람하는 내내 경건한 마음을 자발적으로 장착할 수밖에 없었다. 경외심이라고나 해야 할까?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작품이었다.

       

근현대 자수로 넘어오면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에는 자수 전공도 생긴 것처럼 자수를 하나의 예술 분야로 대접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작품의 소재도 기존의 산수화나 조화도, 십장생도와 같은 사물에서 추상화에서나 접할 수 있는 대상이나 소재로 넘어오기도 했다. 마치 회화 작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자수의 특성상 매끄러운 표면에 오돌토돌한 질감을 줄 수도 있기는 하지만, 어떤 작품의 경우에는 아예 입체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마티에르 질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도무지 자수로 표현 불가능한 것은 없을 것만 같았다. 

     

오늘 관람한 작품 중에서 개인적인 취향은 서로 다르겠지만 나의 마음속에 가장 깊이 남는 작품들은 불교와 관련된 작품들이었다. 아마 불자의 修行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심이 없이는 제작할 수 없어 보이는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결코 단순한 공예 작품으로만 간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시각적인 회화성의 느낌보다는 보이지 않는 작품 내면에 녹아 있는 작가의 고뇌를 들여 보고 싶었다. 대문 사진은 내가 그림을 그렸던 사람인 까닭에 가장 친숙하게 느꼈던 작품을 골라서 올렸다. 자수로 제작한 작품임에도 마치 유화로 그린 듯한 느낌을 주길래 사진을 찍어 왔다. 자수 작품 사진은 유미래 작가님 글에 많이 올라와 있으므로 나는 아래의 세 작품 이외에는 따로 올리지는 않겠다. 8월 4일까지라니까 이제 꼭 닷새 남았다. 혹시라도 관심이 있는 작가님들은 그전에 다녀오시면 좋겠다.


      


덕수궁은 고등학교 시절 미술반 친구들과 갔던 이후에 결혼하고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온 것이 거의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랬던 것을 오늘 다녀오는 바람에 옛 생각을 떠올릴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앨범을 뒤져보면 흑백의 고등학생 모자를 눌러쓴 친구들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한 번 찾아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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