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나란 사람에게 술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는 진리를 다시 깨달았다.
5월 13일부터 8월 9일까지 87일간의 사투에서 벗어났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타의에 의한 강압적 금주에 돌입한 날이 5월 13일이었고, 그 금주의 고리를 끊은 오늘이 바로 8월 9일이라는 소리다. 물론 90일 가까이 술을 마시지 않은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반문할 사람이 당연히 있겠지만, 65년을 살아오면서, 그리고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래 이렇게 오랜 시간을 금주 상태로 지내본 일이 없었기에 지금의 일시 금주의 의미가 큰 것이다.
원래 술과 담배는 성인의 건강에 해악을 끼치는 대표적 기호식품이다. 나도 그 두 가지를 모두 즐겼다. 그러다가 이십이 년 전에 담배는 끊었고, 술은 지금까지 즐기고 있다. 학자에 따라서 술과 담배의 해악을 비슷한 경지에 올리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담배에 의한 해악을 더 높이 쳐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사실 그래서 담배는 진즉에 끊었어도 술은 계속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담배는 끊고 나서 몸 안의 니코틴 성분이 완벽하게 체외로 배출되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알코올 성분은 흡수하지 않는 날부터 기껏 숙취가 풀리는 며칠 동안만 체내에 잔류할 뿐이다. 물론 학문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나의 경험에 의한 결론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이론이다.
담배를 끊은 지가 이십 년이 지났으므로 아마 나의 체내에 있던 니코틴 성분은 모두 배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술은 마시면 알코올이 잠시 체내에 머물다가 배출될 것이므로, 체내에 알코올이 축적되느니 뭐니 하는 생각을 할 필요 없이 아마 평생 술잔 들 힘만 있다면 마실 생각이다. 중간에 의사의 훼방만 없다면 말이다.
물론 지금은 잠시 간헐적 금주의 고리를 잠시 끊은 것에 불과하므로 앞으로 당분간은 더 술을 마시지 않을 생각이다. 이유는 뒤늦게 시작한 공부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자격시험이다. 이 나이에 무슨 자격증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돈도 안 되는 글을 쓰면서 작가라는 캐릭터 말고 본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직업을 하나 내세우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였는데, 이제 이달 안에 시험은 끝날 것이므로 그때까지는 술을 더 금주해야 할 것 같다. 아마 글을 써서 단 몇 만부 정도의 베스트셀러라도 출간할 수 있다면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나를 돌아보건대, 글을 써서 떼돈을 버는 수준의 작가는 못 되기 때문에 작가 이외의 캐릭터가 필요한 것이다. 그 시험이 무슨 시험이냐면, 떨어질 경우를 대비하여 지금은 밝히지 않는 대신에, 혹시라도 합격하면 어차피 여기 브런치에서 잘난 척을 할 것이므로 지금은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내가 술을 더 마시려고 했던 이유는, 술을 마시지 않다 보니 공연히 글도 써지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폭음은 하지 않아도, 평소처럼 혈중알코올농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만 글이 써지곤 했는데, 지금은 아예 혈관에 알코올 성분의 씨가 말라서 글을 못 쓴 것만 같아서 오늘 더 술을 마시고 싶었다. 자칭 酒仙이라 했으면서도 주선의 지위를 그동안 망각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잔 마시고 거실 소파에 흐뭇한 얼굴로 앉아있으려니 옆에서 딸이 한마디 던진다.
“酒仙! 술이 들어가니 그렇게 좋아?”
대문 사진은, 술상을 치우기 전까지는 글을 올릴 생각이 없기에 사진을 찍지 않았다가, 글을 쓰려고 냉장고 안의 술병만 꺼내서 찍었다. 왼쪽 병은 1리터 병이고, 오른쪽 병은 700ml 병이다. 스트레이트 잔으로 5잔을 마시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술 마신 기념으로 오늘 공부는 그만하고, 시라도 한 편 지어야 하겠다. 만일 다행스럽게 시가 지어진다면 오랜만에 한 편 올려 보겠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