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워 살겠니?
어제도 밤새 폭주족 오토바이 굉음에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요즘도 저런 아이들이 있는가 싶어질 정도였다. 분명 창문을 닫았음에도 귀청이 떠나갈 듯하게 요란하다가, 잠시 조용해질 만하면 다시 뒤를 이은 오토바이가 그 소리를 이어받는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 혹시라도 주변을 지나는 전철 소음 때문에 시끄럽지는 않을까 염려했는데, 지내다 보니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는 내 주위를 떠도는 소음 중에서 아주 미미한 수준의 소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 불과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거기에 덧붙여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아파트 단지 옆 여성병원 구급차 경광등 소리도 한몫하고 있었다. 하긴 뭐 응급환자가 시간을 가려가며 발생하는 것은 아닐 테니 그런 문제를 갖고 시끄럽다느니 하면서 유난을 떨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시끄러운 것은 엄연히 시끄러운 것이다. 결국 집 주위에서 발생하는 이런저런 소리에 가련한 나의 청력만 계속하여 시달리는 중이다.
한동안은 새벽 까마귀 울음소리가 그렇게 귀에 거슬릴 수가 없었다. 특히 비라도 내릴 듯한 날이면 낮게 날며 울어대는 그 소리가 거의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지난번에 살던 동네에서는 그 까마귀 울음소리에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까지 겹쳐서 정말 무슨 동물농장 옆에 사는 것처럼 새벽이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래도 자연의 소리는 인간이 내는 소리에 비하면 들어줄 만하다. 특히 서두에 언급한 오토바이 굉음이나 경광등 소음, 전철 철로 소음, 그리고 지나가는 차량에서 울리는 경적과 같은 소리가 대표적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이 발생시킨 소리 중에 시끄러워도 듣기 좋은 소리라고는 아파트 담장 옆 초등학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다. 그 소리만큼은 아무리 데시벨이 높아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그것도 참 희한한 일이긴 하다. 희미하게 들리는 아파트 주변 생활 소음에 비하면 아이들 웃음소리도 상당히 귀에 거슬려야 하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없거나, 있어도 학교 담장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말 못 할 안타까움을 부른다.
내 주위에는 그런 소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가까이로는,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 주차장에 가끔 일일 장터가 열린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규모의 장터는 아니고, 곡물이나 과일을 파는 상인이 아파트 관리실 허가를 받아 일일 장터 형식으로 장사를 하곤 한다. 어떤 날에는 방충망부터 시작하여 욕실이나 주방 인테리어 자재를 팔 때도 있다. 심지어는 인근 금 거래소에서 금을 사겠다며 작은 부스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관리실에서는 거의 시간마다 방송으로 안내하는데, 그 소리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마치 시골 마을 이장님의 확성기 소리처럼 조용한 집안을 흔들어 놓는다. 그렇다고 해서 불평하거나 할 수 없이 그냥 시달려야 한다.
내가 청년기에는 귀를 온통 뒤덮는 헤드셋으로 음악을 듣는 친구들이 많았다. 마치 한 때의 유행처럼 번진 헤드셋 문화가 고만고만한 나이의 학생들에게는 첨단 유행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 후에 길게 선이 늘어진 이어폰으로 워크맨이나 마이마이 카세트테이프, CD 플레이어에 수록된 음악을 듣는 문화가 이어졌는데, 그 시절에 한창 유행하던 말이 있었다. 그렇게 고막 가까이에서 울리는 소리에 시달리다 보면 청력이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이나 인체공학적으로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말인지 나는 몰랐고, 그저 계속해서 음악이든 뭐든 소리가 귓속에 가득 찬 상태를 유지하다 보면 아무래도 청력에 부담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만 했을 뿐이다.
이렇듯 우리 일상의 주위에서는 다양한 소음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자의적으로 그런 소음으로부터 탈출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나마 인위적인 소리를 벗어나서 자연적인 소리로만 둘러싸여 지내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곳에 스스로 격리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 또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접하는 소리는 거의 나름의 의미를 갖는 소리다. 물론 주변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고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는 소리와 같은 보편적 기준에서의 정당한 이유나 의미를 상실한 소리는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불행하게도 그런 소리가 늘어가고 있다.
소리 중에는 내가 듣기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소리가 있다. 긴급 자동차의 경광등 소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소리이고, 선로 위를 달리는 전철 소리는 승객을 편하게 이송하기 위한 소리이다. 아파트 관리실의 방송 소리도 공동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소리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굳이 들을 필요도 없는 소음과 악다구니가 원치 않는 곳을 진원지로 하여 우리 주위를 둘러싸며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고, 아무도 동조하지 않는 그들만의 말장난이 새벽잠을 깨우는 오토바이 폭주족 굉음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그저 씁쓸하기만 할 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창밖에서는 요란한 긴급 자동차 경광등 소리와 집안에서는 관리실의 일일 장터 안내 소리가 스테레오로 나의 귓불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다.
대문 사진은 오티콘 보청기 대전점 블로그에서 갖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