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흔 Aug 17. 2024

날개

      

투명한 잔에 담긴 차의 수면 위에 퍼지는 동심원으로 들어가 본다. 들어갈수록 깊어 가는 찻잔 바닥에 또 다른 내가 있다.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으면 잠시 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시간이 지나 평정을 찾은 찻잔 속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더욱 깊이 찻잔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침내 찻잔 바닥을 뚫는다. 시선은 그칠 줄 모른다. 바닥이 열리고 찻잔과 함께 찻상 밑으로 빠져든다. 시선은 나의 육신을 이끌고, 머리부터 거꾸로 끌려 들어간 나는 이름 모를 허공을 부유하고 있다. 시선의 끝을 놓친 머리는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곤두박질이다. 이대로 추락할 수 없다는 마음이 등 뒤의 날개를 편다. 나도 모르던 날개다. 날갯짓할 줄도 모른다. 바람을 타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다. 극히 이론적인 지식뿐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찻잔 속에서 날개는 무용지물이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팔을 돌려 날개를 꺾었다. 날개는 맥없이 부러져 버렸다. 그제야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의미 없는 날개가 의미 없는 기대를 데리고 나를 떠났다. 이제 추락도 두렵지 않다. 나의 육신을 떠난 날개는 그제야 날갯짓한다. 날개도 나도 서로에게 불필요한 존재였다. 고개를 위로 젖힌다. 추락하던 육체는 크게 포물선을 그리고 다시 위로 솟아올랐다. 내가 다시 날아오르는데 날개는 필요 없었다. 시선에 끌렸던 머리는 자유 의지를 찾았다. 내가 들어온 찻잔 바닥을 향해 올라가는 내 뒤로, 꺾여 나간 날개의 자유 비행을 본다. 내 안에 있다가 등 뒤로 솟아나서 내 손에 꺾인 날개도 나의 머리처럼 자유 의지로 비행하고 있다. 진즉에 그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동안 너무 오래 내 안에 있었다. 날개도 나도 이제는 자유다. 머리 위로 한줄기 차茶 빛이 어둠 속의 나를 이끈다. 동심원을 뚫고 찻잔 밖으로 나왔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39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