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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남자, 어떤 여자

by 정이흔

어쩌면 지금까지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그렇게 친근하게 대할 리가 없다. 아니. 그런데, 생각해 보니 또 그런 것만은 아닌 것도 같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친근했으므로. 그렇다면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일방적으로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혹시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런 혼동되는 마음을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글쎄? 그런 문제라면 차라리 얼굴을 보며 명확한 표현으로 물어보는 것이 좋을까?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맞냐고 물어봐야 할까? 그랬다가 만일 그녀가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하면 그건 또 무슨 창피일까? 나에게 친절하게 대한 그녀의 호의를 오해한 눈치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아냐.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내가 일부러 그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으면 되는 거지. 그냥 차라리 혼자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그녀를 대하는 것이 좋을지도 몰라. 내가 그런다고 뭐 그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저 곁에서 말없이 지켜보며 그녀가 힘들거나 곤란한 일이 있을 때마다 도와주고, 뭐 그러는 것도 좋겠지. 그래, 내가 먼저 사랑한다느니 할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가 나를 의지하게 만들면 되는 거야. 이런 건 스토킹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잖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요즘 정말 짜증이 나네. 그가 왜 그런지 모르겠어. 내가 조금 잘 대해주었다고 뭐 내가 자기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줄 아는 모양이지?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도 눈치가 없담. 내가 뭐 자기에게만 잘 대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말고도 다른 모든 사람에게 잘 대하려고 하는 것도 내 잘못인가? 아니지. 둔해 빠진 그가 잘못인 거야. 나는 잘못 없어. 내가 그에게도 잘 대해주는 이유는 순전히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하는 태도라는 걸 모르나 봐. 물론 그가 불쌍해 보일 때마다 내가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단지 대인관계에서 오는 보너스인 거고. 그런데 이런 불쾌한 기분을 어떻게 해결하지? 그는 자신이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건가? 차라리 내가 먼저 말해야 하나? 추근거리지 말라고. 자꾸 그런 끈적한 눈빛을 보내면 나도 참을 수 없다고 할까? 아니지, 그랬다가는 요즘 짝사랑 남자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그런 게 스토킹인데 말이야. 암튼 그나저나 이를 어쩐담? 그가 제발 나이만큼이나 철이 좀 들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가 앞으로도 계속 마주쳐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끼쳐. 내가 이게 무슨 팔자람. 여자가 이쁘고 친절하고 성격 좋은 것도 문제야. 하여간 남자들은 보는 눈이 있어서 이쁜 것은 안다니까.



며칠 후 포털의 메인에 50대 직장 상사 A 씨(남)의 직장 내 스토킹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상대는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20대 B 씨(여)로 입사 초기부터 2년간 이어진 스토킹을 견디다 못해 수사기관에 고발하면서 A 씨의 그간 행적이 드러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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