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먹은 이유식인데, 맛만 좋더라.
우리 집에는 올해 첫날 태어난 손자가 있다. 해외에서 유학 중인 아들이 현지에서 결혼해 낳은 손자이다. 원래 학위를 취득하고 난 이후에 결혼하고 아이를 가질 계획이었는데, 대부분 일이 그렇듯 어디 세상일이 마음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작년 봄에 귀여운 손자가 며느리에게 찾아왔고, 나와 아내와 딸은 사돈어른과 상견례를 겸해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중국으로 건너갔다. 워낙 연애 시절부터 우리 집안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던 며느리인지라 실물로는 처음 보았어도 항상 옆에서 함께 지낸 것처럼 반가웠고, 사돈 내외 역시 처음 본 사람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작년을 보내고 올해 새해 첫날 며느리는 건강한 아들 손자를 낳았다.
손자는 자연스럽게 며느리와 안사돈 손에 길러지게 되었다. 우리로서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워낙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지라 그냥 말로만 육아에 힘을 보태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손자는 지금 중국 땅에서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아들은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고 2월 말에 잠깐 다녀갔고, 우리는 그제야 손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손자를 무리해서 데리고 온 까닭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부모수당과 자녀수당을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우리는 사실 그런 분야에는 무지했는데, 마침 재작년에 결혼한 조카가 아이를 낳으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준 덕에 그런 금전적 지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아들이 무리해서 일시 귀국한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출생신고가 되어 있는 아이임에도 아이가 해외에 거주 중일 때는 지원을 중단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냥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도 지원해 주면 안 되는가?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원 금액으로 국내 경기를 부양하고자 하는 정책 입안자분들의 높은 뜻을 생각하면 불평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솔직히 해외에 있어도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겠는가? 명색에 부모수당이라면 어느 부모에게든지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는 공평하게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아무튼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고, 이번 추석에 아들로부터 손자를 데리고 잠깐 다녀가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귀국한 김에 지원이 중단되었던 부모수당도 다시 신청할 계획이었고, 아들도 그 참에 병원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진료를 받아 볼 심산이었다. 아들의 귀국 소식을 들은 우리는 그날부터 아들 편에 보낼 물건들과 손자가 국내에서 지내는 동안 먹일 이유식을 잔뜩 주문했다. 물론 이유식은 냉장 보관 식품이기에 도착일부터 출국예정일까지의 기간을 고려해서 다양한 종류별로 주문했다. 일단 손자가 잘 먹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먹여 보고, 손자가 잘 먹는 종류는 출국 직전에 다시 추가로 주문해서 실려 보낼 생각이었다. 멀리 떨어진 할머니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정도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던 도중에 아들로부터 예기치 않은 소식을 들었다. 며느리가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서 아들과 손자만 다녀가야 하는 상황인데, 손자가 며느리 곁을 채 삼십 분도 떨어지지 못하고 울어댄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아예 손자 얼굴을 보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아들은 병원 진료 때문에 다녀가야 하지만 말이다. 고민 끝에 아들은 손자를 며느리 곁에 두고 혼자만 다녀가기로 했지만, 그때는 이미 손자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먹을 이유식(레토르트 식품이지만)이 냉장실 한쪽에 가득 들어앉은 후였다.
아들은 일정대로 귀국해서 병원을 돌며 진료와 처방을 받았고, 그중 한 군데에서 열흘 가까이 치료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다시 출국하는 항공편 예약도 못 한 채 치료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열흘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 치료도 어느 정도 끝이 났고, 출국 항공편 예약도 끝나서 이제 이틀 후면 다시 집을 떠나게 된다.
이유식 이야기를 하려다가 말이 길어졌는데, 그러면 그 냉장실 한쪽을 가득 메우던 이유식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당연히 우리 가족의 뱃속으로 다 들어갔다. 아이는 아니지만 그냥 레인지에 데워서 간편하게 먹으면 되는 식품인지라, 아침마다 각자 하나씩 해치웠고, 이제 출국을 이틀 남긴 오늘 냉장실을 확인하니 대여섯 개만 남았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은 이유식을 먹었다.
이제 아들이 돌아가면 아마 내년 설날쯤 학교 방학을 틈타서 다녀갈 수 있을 것 같다. 손자의 얼굴은 그때 보는 것으로 하고 아쉬움을 접기로 했다. 그러다가 아들의 공부가 끝나고 영구 귀국하게 되면 손자 얼굴은 실컷 보겠지만, 아마도 생각건대 이유식을 다시 먹을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이유식을 실컷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