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기해 피부과 치료차 한국에 왔던 아들이 일요일에 중국으로 돌아갔고, 나와 아내는 몇 달 전 예약했던 제주도 여행을 위해 월요일 늦은 오후에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제주도는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어도 우도와 마라도에는 다녀온 적이 없었는데, 마침 홈쇼핑에서 그 두 곳을 포함한 여행 패키지를 광고하는 것을 본 아내가 우도와 마라도에 갈 생각으로 예약해 두었던 덕분에 다녀올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원래 여행 기간은 3박 4일이지만, 그런 여행이 으레 그렇듯 가는 날, 오는 날 빼면 달랑 이틀짜리 여행이었다.
여행 준비라고 해봐야 크게 할 것도 없었으므로 캐리어 하나 들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김포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눈 깜빡할 사이에 제주 공항에 도착했고, 워낙 늦은 시간이었던지라 호텔에 들어가니 3박 4일 기간 중 하루가 덧없이 지나가 버렸다. 우리는 일단 호텔 방에 캐리어를 놔두고 곧바로 나와서 오 분 거리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제주로 향했다. 몇 년 전 호텔 오픈 시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렀던 스카이라운지 포차에서 술을 한 잔 마시기로 아내와 이야기했었기 때문이다.
포차는 여전히 손님들로 붐볐다. 조금 기다리다가 창가 자리로 안내받은 우리는 창밖 야경을 바라보며 잠시 예전 생각에 잠겼다. 술은 소주와 맥주, 그리고 안주는 전에 먹었던 해물파전과 닭똥집을 주문했다. 그렇게 첫날 저녁을 해결하고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틀뿐인 여행인지라 일정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우도와 마라도 두 섬을 제외하면, 특별하게 방문하고 싶었던 곳은 없던지라 그냥 일행을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올랐다만 반복한 셈인데, 그 짧은 기간에 쇼핑센터도 서너 군데 데리고 간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TV에서 광고할 때는 이거 저거 다 포함된 관광이라고 하더니 정말 실속 없기로는 그만인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섬에 들어갈 생각으로 열심히 따라다녔다.
원래 마라도와 우도는 바다의 파도 때문에 좀처럼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다. 어쩌다가 제주도에 들렀어도 날씨에 따라서 섬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다행스럽게 우리 일행은 첫날(사실은 둘째 날이지만) 마라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 최남단이라고 말만 많이 들었고, 예능 프로를 통해 짜장면집이 많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가 본 적이 없다가 막상 배에서 내려 마라도에 발을 딛고 서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둘레가 걸어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이 작은 섬이 우리나라를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대단하고 의미 있는 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섬에 올라 일정대로 짜장면을 한 그릇씩 먹고 섬 둘레를 걸었다. 물론 적당히 걷다가 되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바닷가 길을 걸었다. 그 작은 섬에 학교(분교, 지금은 학생이 없어서 휴교 중이지만, 곧 학령기가 된 아이가 입학하면 다시 개교할 예정이라고 했다)도 있고, 교회와 사찰, 성당도 있는 것을 보면, 왠지 섬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은 생활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상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시설처럼 보였다.
짧은 시간을 섬에서 보내고 다시 본섬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바람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고, 아마 다음날부터는 다시 배가 결항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주민의 말로는 한번 결항하면 일주일은 섬에서 나가지 못한다니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본섬 송악산 아래 선착장에 도착해서 족욕 체험을 하고 나머지 일정으로 오후를 보냈다. 이로써 나도 국토의 최남단은 방문한 셈이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최동단 독도도 방문하고 싶어졌다. 물론 나는 독도는커녕 울릉도에도 다녀온 적이 없다. 그저 버킷으로 남겨두었을 뿐인데, 언젠가는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마사지 업소에 들렀다. 마사지 업소는 해외여행, 특히 동남아 여행에서는 거의 필수 코스로 들르는 곳이지만, 우리나라 여행에서는 가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마사지 업소가 많으며, 마사지 실력(?)도 동남아에 비해 상대도 안 되게 질이 높다는 사실도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한 시간 반의 마사지로 강행군을 한 하루의 피로가 싹 가셨고, 우리는 편히 잠잘 수 있었다.
이제 섬 두 곳 중에 마라도는 다녀왔으므로 우도만 남았는데, 다음날 일어나니 어제 마라도에서 나올 때 우려했던 대로 우도까지의 뱃길이 막히는 바람에 결국 우도는 방문할 수 없게 되었다. 우도 뿐 아니라 요트 체험도 취소되었고, 대체 일정으로 에코랜드를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우도에 방문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는데,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도만 방문하려고 제주도에 들어온 사람들도 뱃길 사정이 좋지 않아서 열 번이면 서너 번밖에 우도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니 그나마 이번 여행에서 마라도라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행은 갈수록 아침 기상 시간이 빨라져서 서울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일정을 하루 줄여서 하루치 숙박비라도 절감하면서 삼 일째 되는 날 저녁 마지막 비행기로 제주도를 출발했어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왜 여행사에서 사 일 일정으로 여행상품을 팔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삼 일을 집을 비운 사이에 마냥 어린아이 같던 딸은 혼자 씩씩하게 밥 차려 먹고 지냈다. 내가 워낙 딸바보이기도 하지만 딸도 자신을 파파걸이라고 하면서 우리 내외가 가는 곳은 언제나 따라다녔기에 이번 여행으로 우리가 집은 비운 사이에 딸이 혼자 밥이라도 거르지 않고 잘 지낼지 은근히 걱정했는데, 우리 걱정이 무색하게 딸이 혼자 잘 지낸 것을 보니 앞으로는 종종 며칠씩 집을 비워도 딸 혼자 잘 지낸 것 같았다. 다음날인 어제 아내가 급조해서 검색한 기흥의 어느 맛집으로 딸과 함께 외식하러 나갔다. 둘만 여행을 다녀온 것도 미안하고 해서 잡은 일정인데, 의외로 아내의 검색 실력이 빛을 발했다. 오뜨아르(OTTOAR)라는 음식점인데, 같은 이름의 카페도 따로 운영하고 있었고 음식점 영수증을 갖고 카페를 방문하면 할인도 해 주었다. 연중무휴로 운영하고 있었으며, 저녁에는 손님이 갖고 온 와인도 음식점 안에서 마실 수 있게 하는 곳이었다. 마침 딸이 요즘 블로그 포스팅을 시작했기에, 그곳에 방문한 후기는 딸의 블로그에 넘기기로 했다.
아무튼 그래서 벼락치기로 마라도에 다녀왔으며, 아내 덕분에 좋은 음식점도 찾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래에 딸 블로그 링크를 남긴다. 딸의 블로그 포스팅 실력은 수준급이니, 내가 구태어 브런치에 따로 후기를 남기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https://blog.naver.com/eeonnuna/223607184309
https://blog.naver.com/eeonnuna/22360721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