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긴 거의 매일 오는 전화인지라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오늘이 자기 생일인 것을 알았냐는 거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깜박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저 미안한 마음에 이제 장가도 갔으니, 너도 출가외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구차한 변명과 함께 이제부터는 며느리가 챙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은 아내에게 자기 낳느라고 고생이 많았다고, 그리고 고맙다는 말과 지금은 바빠서 짧게 전화한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물론 해마다 생일이면 아들과 딸이 생일을 축하해 달라고 하기 전에 아내에게 자기들을 낳느라고 고생했다, 낳아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해 왔기 때문에 새삼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올해 생일은 며느리와 손자까지 있는 생일인지라 뭔가 기분이 묘했다.
아들과 딸은 생일이 하루 차이다. 오늘은 아들 생일이고 내일은 딸 생일이다. 일부러 그렇게 낳은 것은 아니고, 아들을 제왕절개로 낳다 보니 딸도 따라서 그렇게 낳게 되었는데, 당시 딸 출산예정일이 아들 생일과 비슷하게 나오는 바람에 오빠보다는 생일이 하루라도 늦게 낳고 싶어서 정한 날이 하루 뒷날이었다. 그렇게 하루 차이인 생일 덕분에 아이들이 어릴 때는 생일케이크 하나로 둘의 생일을 기념했다. 먼저 오빠 나이대로 초를 꽂고 오빠가 불을 끈 다음, 다시 거기에서 초를 둘 빼고 불을 켜서 이번에는 딸이 불을 껐다. 그렇게 딸에게는 오빠 생일에 한 번 사용한 케이크를 재활용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이들도 좋아하고 했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생일 축하를 했다. 그래서 딸은 자기 생일 당일에 축하받은 적은 실제로 맞은 생일 일수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하루 앞당긴 오빠 생일에 축하 케이크의 촛불을 껐기 때문이다.
사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내 생일에 어머니께 나를 낳아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하는 법은 나는 몰랐다. 그러니 나도 정말 고마움을 모르는 아들이었던 셈이다. 그랬던 것을 결혼 후에 아내에게 배웠다. 그 후로는 아내 생일에 꼬박꼬박 장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내를 낳아주고 나와 결혼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로 아내 생일 아침을 시작했다. 역시 아내는 천성적으로 선생님이었다. 그렇다 보니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자기들 생일에 아내에게 고마움과 감사의 인사를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아내가 아니었으면, 나처럼 뭘 모르는 아빠에게 교육받은 채 자랐다면, 그런 감사 인사는 애초에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아침에 시간 없다고 전화를 빨리 끊었던 아들이 조금 전에 다시 전화했다. 그러더니 엄마와는 잠깐 이야기하고 나서 지금은 딸과 통화 중이다. 아이들은 길면 한 시간도 훌쩍 넘길 정도로 통화한다. 다 큰 남매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지만, 통화 중에 계속 깔깔대며 웃는 것을 보면 그래도 남매간 우애가 두터운 것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딸과 한창 떠들던 아들이 이제 다시 아내와 이야기 중이다. 그렇게 길게 통화하는 것을 보면, 옛날처럼 국제전화 요금이 무서워서 전화하지 못했던 시기에 아들이 유학 생활을 했으면 너무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지금 학교 친구들과 저녁 먹으러 나가는 길에 전화한 것이라면서 이번에는 조금 빨리 전화를 끊었고, 우리도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내일은 딸 생일이다. 이제 오빠와 케이크를 공유하던 시대는 지났으므로, 딸만을 위한 케이크가 냉장실에 대기 중이다. 내일은 딸과 셋이 케이크를 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