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혹시 알아? 잘하면 우리 회사에서도 사내 커플이 생길 것 같아. 옆자리 선주 씨가 옆을 둘러보더니 조용한 말투로 말했다. 사내 커플요? 그래, 우리 부서에서 말이야. 그래요? 누구랑 누구인데요? 어머, 자기는 몰랐나 보네? 있잖아? 저기 김 과장이랑 수연 씨가 아무래도 사귀는 것 같거든. 에이, 설마요.
나는 선주 씨 말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두 사람이 가까워 보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몰래 사내 연애를 하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선주 씨는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이야기 누가 했는데요? 둘이 사귄다고 말이에요. 아니, 누가 한 것이 아니고, 내가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다는 거지. 왜? 그런 낌새가 보였나 보죠? 응, 자기도 한 번 들어 봐. 내 말이 맞는지 아닌지 말이야. 선주 씨는 신이 나는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있잖아? 평소 수연 씨가 김 과장만 보면 실실 웃으면서 친한 척을 하잖아. 그거야 뭐 다른 직원들에게도 그러잖아요? 아냐. 아냐. 들어 봐. 그리고 부서에서 회식한 날 있잖아. 그날도 보면 둘이 옆에 붙어 앉아 하하 호호하면서 고기 구워 주고 먹으라고 챙겨주고 아무튼 좀 눈치가 이상했거든. 그거야 뭐 수연 씨가 워낙 남자 직원들에게 다 그러는데요. 우리 같은 여자와는 달라서 남자들에게 말도 잘하고 친근하게 지내잖아요. 그런 걸 가지고 둘이 사귄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넘겨짚는 거 아녜요? 아냐, 그것뿐 아니라, 며칠 전에는 내가 조금 일찍 출근한 날이 있었거든. 그런데 그날따라 그 두 명이 나보다 일찍 출근해 있더라고. 수연 씨 자리를 지나서 내 자리로 가는데, 수연 씨가 거의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히쭉거리고 웃고 있는 거야. 아침부터 무슨 일이 있는가 해서 모니터를 흘깃 쳐다봤는데, 급하게 창을 내렸는지 아무것도 없었거든. 그러더니 모니터 아래 작업표시줄에 카톡 표시가 올라오는데, 상대는 김 과장이었고, 둘이 반말로 시시덕거리고 있는 거야. 나는 그냥 모른 척하고 내 자리로 갔지. 그 정도면 두 사람이 카톡으로 뭔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던 거 아냐? 하긴 뭐 직장 동료와 그런 식으로 카톡 할 일이 별로 없긴 하죠.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그건 좀 수상한데? 그렇지? 둘이 뭔가 있는 거 맞는 거 같지? 선주 씨는 자기 생각이 확실하다는 것을 강조하기라도 하려는 듯 힘주어 말했다. 물론 미혼 처녀와 총각이 서로 가깝게 지내는 것이 무슨 큰 문젯거리는 아니지만, 선주 씨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신이 나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둘이 대 놓고 공개적으로 사귄다면 별로 뉴스거리도 아니었겠지만, 다른 사람 눈을 피해서 사귀고 있는 것을 눈치챈 것이라면 선주 씨의 눈썰미는 대단하다는 찬사를 받을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간 오지랖 하고는 알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김 과장과 수연 씨의 행동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선주 씨야 뭐 그렇다고 하지만, 나까지도 그들의 비밀 연애를 감시하는 요원으로 전락한 것만 같았는데, 그렇다 보니 사람이 한 번 이상한 눈으로 보기 시작하니까 평소라면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일까지 하나하나 의심스러워 보였다. 심지어 퇴근 시간에 비슷한 간격으로 사무실을 나서기만 해도 둘이 회사 밖에서 데이트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되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옆에 붙어 앉기만 해도, 그러면 그렇지. 역시 내 생각이 맞다니까. 하는 망상에 빠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탐정 놀이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수연 씨가 사무실 직원들에게 돌아가며 작은 편지 봉투를 하나씩 돌렸는데, 받아 보니 청첩장이었다. 이제 둘이 결혼 날짜를 잡았나 보네. 나는 청첩장을 받아서 열어보기도 전에 김 과장 쪽을 바라보았는데, 즐거운 표정이었어야 하는 김 과장의 얼굴이 잔뜩 어두워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청첩장을 열어보고는 나도 깜짝 놀랐다. 김 과장의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할 신랑 자리에 김 과장 이름이 아닌 전혀 알지 못하는 엉뚱한 남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리둥절하기는 선주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관찰한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김 과장은 수연 씨가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라는 사실을 정말 모른 상태로 헛물만 켜고 있었던 것일까? 나이 먹고 순박한 김 과장을 수연 씨가 갖고 논 것일까? 아니면 수연 씨가 보여준 그저 직장 동료 차원의 친근함을 김 과장이 오해해서 벌어진 촌극에 불과한 일이었을까?
그렇게 한바탕의 우리만의 추리극은 끝났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수연 씨는 사무실 직원들에게 신혼여행지에서 산 작은 선물을 하나씩 돌렸는데, 김 과장에게도 선물을 건넸음은 물론이었다. 그렇지만 김 과장이 수연 씨의 그 선물을 고이 간직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