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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Oct 15. 2024

탈출

며칠 전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분명 내 사무실에 있음에도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일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타인의 주목, 아니 감시를 받을 만한 일을 저지른 적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지금 느끼는 이 억압감은 대체 무엇일까? 

    

간혹 사무실에 낯선 방문객이 찾아오기도 한다. 물론 나를 찾아온 것은 아니고, 함께 일하는 동료를 찾아온 것이지만, 나는 그들이 업무를 빙자해서 나를 감시하러 온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엇 때문에 그들의 방문 목적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나를 흘깃거리겠는가? 그런 것을 보면 분명 나는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 단지 누가 무엇 때문에 나를 감시하는지 나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생각에 빠져 생활하다 보니 이제는 함께 일하는 동료까지도 모두 나를 감시하기 위한 어떤 위장 요원처럼 보였다. 평소에는 나를 감시하면서 일하는 척 하다가, 그들이 계획한 때가 오면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위해를 가할 사람들이다. 허황한 공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의 예감은 결코 틀린 적이 없다. 그들은 아마 수사기관이나 어떤 범죄단체의 일원임이 분명하다. 이런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지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선뜻 떠오르는 생각은 없었다.  

    

경찰에 연락해서 신변 보호를 요청해야 할까? 아니지, 어쩌면 경찰도 한패일지 모르니까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가? 아무리 경찰이 썩었어도 범죄단체와 손을 잡았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상상은 지나친 우려일지도 모르니까 우선 연락은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신변 보호를 받아 사무실 탈출을 시도해 보자. 벌써 사무실에 감금된 지가 며칠째인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경찰이 사무실에 들어오자, 직원들이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린다. 나는 경찰에게 지금까지의 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들려주고 나를 무사히 사무실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사무실 직원들에게 돌아가며 뭔가를 물었다. 아니, 왜 그런 거지? 신고하고 요청한 사람은 난데, 왜 저들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네. 정말 내가 생각한 대로 경찰까지 저들과 한패인 거 아닐까? 갑자기 공연히 경찰을 불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과의 이야기를 끝낸 경찰은 나에게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하고는 돌아갔다. 아니 내가 감시의 위협을 느꼈다고 하면 내 말을 믿어야지, 왜 직원들 말을 믿고 그냥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혹시 내가 걱정했던 대로 그들 모두가 한패라서 그런가? 만일 그렇다면 이제 사무실에서 탈출하는 것은 아예 그른 일일지도 모른다. 집에서도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을 보면, 집에까지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큰일이다. 

     

며칠 기회를 엿보다가 나는 사무실 탈출을 감행했다. 아무리 나를 감시하기 위해서라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잠을 자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탈출이 절박한 나는 그까짓 졸음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때맞춰 내가 도움을 요청한 지인이 사무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나는 드디어 나를 둘러싼 감시망에서 벗어났다. 이제부터 나는 자유다. 



         

아, 정말 그런 환자는 처음 본다니까? 누구? 아, 있잖아. 오늘 퇴원한 402호 환자 말이야. 섬망도 적당해야지. 허구한 날 자기가 무슨 요원들에게 감시당하고 있느니 어쩌니 하더니, 아침 일찍 보호자가 와서 퇴원했는데, 아주 질렸다니까. 널스 스테이션에 간호사 몇 명이 모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 그런 환자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니면 그런 환자들만 따로 다른 곳에 입원시키든지 말이야.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러다가 더한 사람 온다. 하하하. 그렇게 모처럼 간호사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며칠 후 402호 빈 침상에 다른 환자가 입원했다. 그날부터 간호사들은 퇴원한 환자가 있을 때보다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를 마주친 격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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