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 소설은 처음부터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아들의 프러포즈가 못마땅한 환갑 나이의 여인은 그래도 신랑 어머니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약속된 장소에 들어선다. 시간이 조금 이르긴 했지만, 약속 장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되자 프러포즈가 시작된다. 그런데 프러포즈는 아들이 장래의 며느리에게 하는 것이 아닌, 그동안 친구의 자리를 지키던 남자가 그녀에게 주는 프러포즈로 바뀐다. 원래의 주인공이었어야 하는 아들과 아들 여자친구, 딸과 사위 등 가족들이 그녀를 위해 마련한 깜짝 이벤트였던 것을 그녀만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소설은 남편의 실종과 사망했다는 소식, 그리고 10년에 걸친 고생길, 아이들의 성장과 가장의 자리를 물려받은 여인의 고생과 삶을 위한 발버둥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남편의 부재에서 왔던 생활의 변화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 뜬금없이 황당하게 남편이 살아 돌아온다. 10년 전에 죽은 남편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무슨 추리소설도 아니고, 스릴러물도 아니고 다양한 사건의 연속과 그 내막이 차례로 전개된다.
작가의 표현대로 <꼰대들의 신파>라는 눈으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업하다 부진한 사업체를 살리기 위해 장기까지 팔려다 그것마저 사기를 당해서 중국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린다. 간신히 중국에서 탈출하여 한국에 돌아오지만, 남자는 가족 앞에 나설 수 없었다. 자신은 이미 사망 처리가 되었고, 가족은 사망보험금을 받았는데 자기가 가족 앞에 나타나면 모든 일이 엉망이 될 것만 같았다. 남자는 중국에서 강제 노역할 당시 얻은 다른 남자의 신분으로 가족 주위를 맴돈다. 이런 줄거리는 신파가 분명했다. 가족의 주위에서 몰래 가족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면서도 가족이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의 도움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이야기는 열여덟 개의 목차대로 진행된다. 각 에피소드에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연들을 만들어서 집어넣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흥밋거리의 사건을 나열한다. 부부 사이의 신뢰와 부자간, 부녀간의 사랑, 남매와 친구 등 모든 인물 사이의 관계에 전혀 뜻밖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읽는 독자의 상상을 여지없이 잔인하게 부숴버리면서도 통쾌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불륜인 줄 알았던 오해가 풀리는가 했더니 그 사건이 주위의 다른 사람의 불륜으로 이어지고, 진정한 우정이라 생각했던 친구가 친구이자 시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기 잇속을 챙기고, 더없이 자상하고 살뜰했던 사위가 알고 보니 사돈과 공모해서 딸의 재산이나 탐하는 등 무슨 개그콘서트 같은 상황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하지만 상황은 절대 우습지는 않다. 도대체 작가는 언제쯤 이런 신파 코미디를 그칠 것인가?
마무리는 또 어떤가? 가족 간의 오해가 풀리고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면 타인의 명의로 살았던 삶을 정리하고 재결합하여 행복한 끝을 보아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남자는 중국에서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던 신념을 굳게 믿고 다시 가족 주위를 떠도는 생활로 떠난다. <나를 찾지 마시오>라는 쪽지를 여자에게 약속했던 서른다섯 송이 보랏빛 국화 꽃다발 사이에 끼워서 전하고는 말이다.
여자는 처음부터 남자를 ‘놈’이라 칭한다. 남편이나 그이든 무슨 다른 호칭도 있겠지만, 작품 전편을 통해 ‘놈’ 아니면 기껏 잘 불러줘서 ‘서준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놈’이 주는 뭐라 말하기 좀 애매한 뉘앙스가 남자에 대한 여자의 삼십오 년에 걸친 적대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여자에게 남자는 그저 ‘놈’이었다. 하지만 그 ‘놈’의 정신 나간 순정을 여자는 끝까지 모르고 있었어도 남자는 여자를 원망하지 않는다. 정말 희한한 소설이다. 하지만 재미있다.
위에서 언급한 각 에피소드가 궁금하신 분은 직접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오랜만에 무겁지 않으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작품을 읽었다. 아주 약간은 머리를 쓰게 만드는 추리소설적이든 뭐 스릴러물 같은 요소를 즐기는 재미도 일품이다.
이 소설의 작가 ‘김범’의 첫 번째 장편소설 <할매가 돌아왔다>는 “한국의 오타쿠 히데오”라는 평가를 받으며, 출간 즉시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판권이 모두 계약되었다고 한다. 이외에 장편소설 <공부해서 너 가져>, <천하일색 김태희> 등을 썼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하여 모든 에피소드는 전부 꾸며낸 이야기지만, 그 본질은 아버지에 대한 생생한 기억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불과 1년 전에 출간된 작품인데도 이런 신파조의 작품도 얼마든지 색다른 작품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