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리목월문학관을 찾아서

by 정이흔

오영수문학관을 나와 경주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사실 지금 가려 하는 동리목월문학관은 이전에 한 번 들릴 기회가 있었는데, 미처 생각지 않고 있다가 그만 기회를 날리고 이번에 다시 찾게 되었다. 주소가 불국로이길래 혹시 불국사 근처인가? 했는데, 도착해 보니 정말 불국사 바로 앞이었다. 불국사 주차장 입구를 지나 석굴암 방향으로 오십여 미터 오르면 오른쪽 숲 사이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고, 문학관은 그 길 아래 평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외관을 본 느낌은 역시 김동리와 박목월의 인지도에 어울리는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넓지 않은 주차장에서 계단 위를 올려보니 경주의 건물답게 단아한 기와의 단층 건물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물론 계단 왼쪽에는 휠체어용 경사로도 있었는데, 우리는 그 경사로를 이용해서 문학관 입구로 올랐다.


입구에 마련된 우산꽂이에 우산을 꽂고 안으로 들어가니 아까 전화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다가 우리가 입구 홀 왼쪽에 있는 기념사진 찍는 spot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둘을 함께 찍어주겠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휴대전화를 건네고 박목월과 김동리의 글(박목월의 ‘나그네’와 김동리의 ‘문학하는 것에 대한 사고’라는 글 가운데 박목월과 김동리의 캐리커처가 있고 그 앞에 앉을 자리가 있었다) 사이에 앉아서 기념 촬영을 했다. 가운데 홀을 두고 오른쪽은 박목월문학관이었고, 왼쪽은 김동리문학관이었다. 우리는 왼쪽으로 먼저 발을 돌렸다.


문학관 내부 전시실은 김동리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어떻게 보면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나는 나 혼자 그렇게 느낀 것인가 해서 지금까지 함께 여러 문학관을 돌아다닌 아내에게 물었더니, 아내 역시 그렇게 느꼈다고 했다.


전시실로 들어가면 정면에 김동리의 흉상이 관람객을 반긴다. 흉상의 뒤에는 “동리문학은 나귀이다. 모든 것이 죽고 난 뒤에 찾아 오는 나귀이다.”라는 이어령 선생의 글귀가 적혀 있다. 솔직히 어떤 의미를 지닌 말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김동리의 문학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낸 말일 것이라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나귀”는 죽은 뒤에 돌아다니는 영혼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김동리의 문학이 죽음으로 대변되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는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 보았다. 이어서 왼쪽으로 관람 동선을 따라가면 김동리의 생애와 문학, 그리고 김동리 작품의 배경이 된 경주, 등신불을 지나면 김동리의 창작실 모형을 볼 수 있다. 그 뒤로 무녀도의 이야기를 매직비전으로 볼 수 있고 황토기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서 제작한 애니메이션도 상영되고 있었다.


김동리는 소설가뿐 아니라 시인으로서도 족적을 남겼다고 한다. 사실 나와 아내는 김동리가 시를 썼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마치 황순원 문학관을 다녀와서야 비로소 황순원이 시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긴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다녔던 문학관의 문인들이 시나 소설, 혹은 평론처럼 딱 부러지는 경계를 견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저 시인이나 소설가, 혹은 수필가나 평론가라고 하는 구분은 어쩌면 후대의 사람들이 제시한 기준에 불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동리의 시를 한 편 소개하겠다.



귀뚜라미


하늘에 하나 가득

별 박힌 가을 밤


땅 위는 온통 귀뚜라미

소리로 차 있다.


하늘과 땅은

어둠을 사이 한 가까운 이웃인데


귀뚜라미 소리로 별들은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김동리 전시실의 마지막은 동리목월기념사업회에 관한 내용으로 차 있었다. 기념관 건립의 주역들이라는 제목하에 언뜻 보아도 수백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물론 김동리와 박목월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 설립 작업에 참여한 뜻을 그렇게라도 내보이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차라리 그렇게 김동리와 박목월을 추앙하는 분들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의미 있는 전시 자료를 한 점이라도 더 확보해서 전시하는 데 신경을 썼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동리문학관을 나와 건너편 목월문학관으로 향했다. 문학관을 들어가기 전에 문학관 우측에 빨간 우체통을 보았다. 느린 우체통이다. 지금 엽서에 글을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올해 12월에 배달된다고 했다. 집에 있는 딸에게 엽서를 보내 볼까? 하다가 쑥스러운 마음에 그만두었다. 그 옆에는 작은 도서관이라고 쓰인 안내판 아래에 30~40권 정도의 책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바로 전에 보았던 오영수문학관의 독서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서로 마주 보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라도 구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성의가 있었다면 차라리 다른 문학관들처럼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서 더 많은 서적을 갖추고 앉아서 책을 읽기에 편하게 보통의 일반 도서관 열람실의 테이블과 의자처럼 그런 시설을 갖추는 것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월문학관의 내부는 마치 동리문학관의 내부와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하게 닮았다. 사실 박목월이나 김동리의 작품 세계라든지 생애와 관련한 이야기는 인터넷이나 다른 자료들을 조금만 찾아보아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문학관을 다니면서 일부 작가의 경우 그런 내용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내가 미처 사전 지식도 없이 방문했던 문학관인 경우가 많았고, 그렇게 방문 결과에 대한 기록을 남김으로써 나도 기억에 그 문인을 조금 더 깊이 심어두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동리목월문학관은 그런 방법으로 기억을 남길 필요는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가깝고 친숙한 시인과 소설가이지 않은가? 그냥 문학관을 방문한 소회 정도만 기록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목월문학관도 들어서면 박목월 시인의 흉상이 관람객을 반긴다. 뒤에는 김동리 흉상의 뒤에 적힌 나귀 이야기처럼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시인을 대표하는 시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동리문학관에는 없는, 시인의 시를 청취할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으며, 한쪽 벽에는 유리에 새겨진 동시가 걸려 있었다. 박목월은 1933년 잡지〈어린이〉에 ⸢통딱딱 통짝짝⸥을 발표하면서 동시 창작을 시작했는데, 그의 동시들은 유년 지향의 시, 생명 지향의 시, 향수의 시, 동시 언어의 확대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박목월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하는 시 ⸢얼룩 송아지⸥를 비롯하여 수많은 동시와 동화를 창작하는 과정에 해방 후 아동 문단 형성에 진력하였다.


박목월은 특히 불국사, 토함산, 왕릉 등과 같은 고향 경주의 자연을 소재로 시를 많이 지었다. 생전에 다섯 권의 창작 시집과 한 권의 합동 시집을 남겼는데, 그 합동 시집이 바로 「청록집」이다. 이 시기에는 소박한 향토성이 주를 이룬 자연 친화적 작품을 창작하였고, 후에 인간 삶의 일상을 제재로 한 인간 지향적 시를 창작하기도 했지만 결국 향토 회기와 더불어 존재에 대한 깊은 의식을 나타내는 시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청록파 3인 중에 박두진과 박목월의 기념관은 다녀온 셈이고, 내일 지훈문학관만 다녀오면 세 곳을 다 다녀오게 된다. 물론 박목월을 비롯하여 이 세 사람을〈문장〉에 추천한 정지용 문학관도 일찌감치 다녀왔으니, 청록파와 관련한 시인의 문학관은 모두 돌아본 셈이다.


목월문학관까지 돌아보고 나와 보니 들어올 때 갖고 왔던 우산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알고 그랬든지 모르고 그랬든지 아무튼 갖고 간 것이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적어도 문학관을 찾는 지성의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결국 그 누군가가 우리의 큰 우산 대신에 남기고 간 작은 우산을 아내와 함께 쓰고 차로 돌아왔다. 이래저래 문학관에 대한 실망을 안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언젠가는 전시실도 리모델링하고 자료도 좀 더 모아서, 지금보다는 훨씬 멋진 문학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오늘의 일정을 모두 마친 셈이니 예약한 숙소로 가서 쉬는 일만 남았다. 이로써 우리 부부의 스물일곱 번째 문학관 나들이가 끝났다. 내일의 첫 나들이는 청록파의 마지막 시인 조지훈의 기념관이다. 경주를 사랑한 박목월의 시를 소개하겠다.



청운교


층층다리를

층층이 밟고 오르면

靑雲橋 돌층층계가

뒤로 물러가고


구름과 塔과 山이

나란히 내려오는데

大雄殿 肉重한 처마가

내려오는데



토함산


밤골짜기의 물소리


구름이 밝혀든 초롱을


아아 동해너머로 둥둥 떠가는 진보라 빛

환한 봉우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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