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문학관을 나와 다시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고속도로에 올랐다. 사실 오장환문학관은 객주문학관과 마찬가지로 오늘 나들이 예정지는 아니었다. 그랬던 것을 처음 시작을 객주문학관에서 하다 보니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원래는 김삿갓문학관을 들러서 집으로 가야 했는데, 영월 방향보다는 보은 방향이 더 집에 가기 수월할 것 같아, 다음 나들이 예정지였던 오장환문학관을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로 변경했다. 이렇게 나들이 중간에 계획을 변경하는 일은 없었는데, 덕분에 강원도 방향으로 한 차례 더 나들이를 갈 핑계가 생겼다.
오장환이라는 시인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그의 작품을 접한 적이 없었던지라, 문학관을 방문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은 다른 문학관에 비해서 훨씬 높았다. 문학관은 고속도로에서 나와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요금소를 나와서 조금 가다 보니 작은 면 정도의 마을이 보였다. 지금이 그래도 2025년인데, 왠지 마을의 모습은 조금 깨끗하다 뿐이지 골목길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60년도 정도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접어든 골목은 언뜻 보기에 차량이 한 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고, 골목 안 담벼락에는 마치 옛날의 그 낙서처럼, 그리고 풀꽃문학관을 오르는 비탈길 벽에 쓰인 것처럼 오장환의 동시가 적혀있었다. 그 골목을 지나니 넓은 마당 끝에 나지막한 문학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들어간 골목은 예전 길이고, 지금은 그 길 위쪽에 새로 생긴 넓은 길로 문학관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문학관을 찾는 분이 있다면 골목 위에 있는 회인중학고 방향으로 가다가 오장환문학관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넓은 길로 들어가는 것을 권한다.
주차장은 기대 이상으로 넓었고 마당도 넓었다. 잔디 사이로 깔린 정원석을 딛고 마당에 오르니 오른편에 시인의 생가터가 깨끗하게 복원되어 있었고, 정면에 문학관 입구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으로 전시실 앞에 생가터를 배경으로 오장환시인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진을 찍는 곳이리라. 나도 시인 옆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안내석을 지키던 직원이 전시실 입구의 시를 먼저 감상하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알려주었다. ⸢고향 앞에서⸥와 ⸢나 사는곳⸥이라는 시였다. 오장환 시인의 결이 어떤지는 모른 채 왔기에 천천히 시를 읽어보았다. 시라고 하기에는 뭔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쓴 넋두리처럼 읽힌다. 행과 연을 구분한 것만 아니었다면 시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마음의 속삭임이었으리라. 그제야 직원이 이 시를 읽고 들어가라고 권한 까닭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전시실 안에도 여러 편의 시가 있었지만, 적어도 나의 시각에 이 두 편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 물론 동시를 포함해서이다.
잠시 오장환 시인의 생애를 되짚어 보았다. 워낙 모르던 시인이었으므로. 오장환은 보은에서 태어나 회인공립보통학교와 안성공립보통학교를 거쳐 휘문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그곳에서 정지용 시인을 만나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정지용은 오장환이 지은 시를 듣고, 오장환에게 시에 천재적 감각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러고 보면 정지용은 청록파 시인을 비롯하여 동시대의 많은 시인을 발굴하여 시인의 길을 걷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오장환은 어린 시절부터 조용한 성격이었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찬사를 받았다. 오장환은 일찍이 길거리에 버려진 조개껍질을 귀에 대고도 바다와 파도 소리를 듣는 아름다운 환상과 직관의 시인이었다는 시인 김기림의 말이나 시집 두 권으로 문단에서 대환영을 받으며 한동안 시단의 새로운 왕이 나왔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는 서정주 시인의 찬사는 차치하고라도 그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전시실 가장 앞에 걸린 오장환의 문학 친구들을 보면 안성공립보통학교 동문인 박두진과 시집 ⸢나 사는곳⸥의 속표지 그림을 그려준 이중섭, 문학동인 <자오선>에서 함께 활동한 이육사, 서정두, 김광균 등 당대의 내로라한 인물들이 오장환의 옆에 있었고, 무엇보다 시인으로서의 길을 이끌어 준 정지용을 빼놓을 수 없다. 정지용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은 오장환의 동시들이었다고 한다.
오장환은 불과 삼십사 년의 생애를 살아가면서 다른 어떤 문인도 겪지 못한 일을 많이 겪었다. 시인의 왕이라는 찬사를 들은 이후 해방과 분단의 시기에 자행되었던 문화예술인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과 테러를 피해 북으로 가게 되었고, 북한과 소련에서 지병을 치료하면서도 꾸준히 창작을 이어가다가 한국전쟁 중에 사망하였다. 그리고 광복 후 40여 년간 논의조차 불가능했던 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 조치가 이루어졌고, 그 이후에야 비로소 오장환 문학세계에 대한 연구논문을 비롯하여 전집, 평론, 시집 등이 발간되었다. 이후 오장환문학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2005년이 되어서야 생가 복원 및 문학관 건립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오장환의 초기 시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첫 시집 ⸢성벽⸥을 시작으로 오장환은 ⸢헌사⸥, ⸢나 사는곳⸥, ⸢병든 서울⸥ 등의 시집을 출간한다. 오장환은 시에서 시각적 이미지와 회화의 세계는 물론 청각적 이미지와 음악의 세계 등 다양한 시의 세계를 보여주는 시인이었다. 이외에 신병 치료차 소련을 방문했을 때 쓴 일종의 기행 시집 ⸢붉은 기⸥와 번역 시집인 ⸢에세닌 시집⸥도 남겼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것은 요즘도 많이 유행하는 장시(長詩)의 원조격인 최초의 장시가 오장환의 시,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이 시는 200자 원고지 72매 분량의 장시로 검열관에 의해 51행이 삭제 명령을 받았으나 오장환이 출판을 하지 않은 덕에 원문이 보존되어 있다. ⸢전쟁⸥은 628행으로 이루어진 시이며 이 시를 지을 당시 오장환은 겨우 열일곱 살에 불과했지만, 식민지 지배체제 아래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고 하니, 오장환이 그 얼마나 결기에 찬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장환의 작품 중에 또 다른 흥밋거리는 동시이다. 오장환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총 44편의 동시를 썼다. 오장환의 동시 중 입구 골목 담벼락에 아이들 낙서처럼 쓰인 작품을 이 글 끝에 소개하겠다.
전시실에 걸린 오장환 시인의 대표적인 시들을 감상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었다. 간결하고 평범한 시어들도 오장환의 시 한가운데 들어가게 되면 읽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마법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나만 그런 것 같아서 아내에게 물어보니 아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동시는 물론이겠거니와 오장환의 첫 시인 아침과 화염 그리고 조개껍데기에서 나는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불과 몇 행 되지도 않는 글로 시인의 마음속 시상을 간단하게 그려내는 재주가 부러웠다고나 할까? 마침 지금이 제12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공모 기간이었는데, 문득 나도 응모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물론 당선이야 언감생심인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나마 시인의 시 세계에 조금은 다가가 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정말 생각지도 않게 당선된다면, 그것은 오롯이 오늘 이처럼 용기를 내어 응모를 결심한 덕분이리라. 역시 문학관을 다니다 보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상상을 종종 하게 된다. 이런 것도 문학관을 다니며 얻을 수 있는 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처음에 당연히 오장환이라는 시인을 몰랐다. 그러다가 문학관을 여러 곳 다니다 보면 각각의 문인들이 나름의 인연으로 얽혀 있음을 알게 되면서 오장환이라는 이름에도 자연스럽게 되어, 결국 이렇게 문학관까지 찾게 되었다. 나와 함께 문학관을 찾은 아내도 이번 나들이는 최고로 만족스러운 나들이였다고 했다. 물론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두 군데나 변경되었지만, 그 덕분에 오장환 같은 훌륭한 시인을 조금 더 일찍 알게 되어 기쁜 마음이라고 했다. 전시실을 나와서 문학관 문을 나서려니 그 앞에 오장환 시인의 시집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와 아내는 그중에 ⸢병든 서울⸥을 골랐다. 문학관을 다니며 이렇게 시인이나 작가의 작품집을 현장에서 구입하는 재미도 문학관을 찾는 재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문학관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올랐다. 비는 계속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이제 다음 나들이에 가려고 계획했던 오장환문학관을 오늘 다녀왔으므로 다음에는 그 빠진 자리를 이전에 갔다가 관람하지 못하고 돌아섰던 홍성의 만해기념관이 메울 것이다. 그리고 오늘 원래의 마지막 방문지였던 김삿갓문학관은 그다음 강릉 방향으로 일정을 잡을 때 찾아보기로 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오장환의 동시와 다른 시 한 편을 소개하겠다.
나 사는곳
밤늦게 들려오는 기적소리가
산짐승의 울음소리로 들릴 제
고향에도 가지 않고
거리를 떠도는 몸은 얼마나 외로울 건가
여관방의 심지를 돋구고
생각 없이 쉬고 있으면
단칸방 구차한 살림의 벗은
찬술을 들고 와 미안한 얼굴로 잔을 권한다.
가벼운 술기운을 누르고
떠들고 싶은 마음조차 억제하며
조용조용 잔을 노늘 새
어느덧 눈물 방울은 옷깃에 구르지 아니하는가
“내일은 또 떠나겠는가”
벗은 말없이 손을 잡을 때
아 내 발길 대일 곳 아무 데도 없으나
아 내 장담할 아무런 힘은 없으나
언제나 서로 합하는 젊은 보람에
홀로서는 나의 길은 미더웁고 든든하여라.
기러기
기러기는 어디로 가나
달도 별도 꽁꽁
죄 숨었는데
촛불도 없이 어떻게 가나
해바라기
울타리에 가려서
아침 햇볕 보이지 않네
해바라기는
해를 보려고 키가 자란다
침침한 밤
부엉이는
창가를 한다
부-엉
부엉이는
부끄럼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