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마을 촌장 사랑꾼 이외수

by 정이흔

어제저녁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문득 오늘 이외수문학관을 가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두 번 남은 문학관 나들이의 마지막 방문지인 강릉의 김동명문학관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들리려고 했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집으로 오는 경로에서 벗어나야 하는 점이 맘에 들지 않아 잠시 보류했었는데, 결국 그곳 한 곳만 가려면 그냥 토요일 하루를 드라이브하듯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내 말에 아내와 딸도 좋은 생각이라며 동조해 주었다. 하긴 뭐 언제는 우리가 계획대로만 움직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나는 이외수라는 작가에 대하여 딸이 어린 시절 샀던 책 “하악하악”을 통해 잠깐 접했을 뿐, 특별히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11월 은평구 한옥마을 안에 있던 셋이서문학관을 다녀온 후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후 화천에 이외수문학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번 문학관 나들이 계획에 넣어 두었다.


오랜 기억 속의 이외수는 사실 좀 지저분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선입견은 나쁜 것이라지만, 그래도 처음 보는 사진을 보니 마음이 동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인데, 무엇보다도 이외수의 외모가 나와 닮았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이외수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싫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건 여담이고, 셋이서문학관에서 본 이외수의 “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라는 글귀가 왜 그렇게 내 마음속에 자리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무엇이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 글이 그냥 나로 하여 자연스럽게 이외수 문학에 다가가 보려는 마음을 갖게 만든 것도 사실이었다.


집에서 쉬지 않고 달려서 세 시간이 넘는 거리라면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더군다나 시시각각 변하는 교통 사정은 우리 차를 더욱 오래 도로 위에 붙잡아 놓고 있었다. 포천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자 사십오 년 전 군인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았다. 구불거리고 경사가 심한 산길을 벗어나니 이번에는 왕복 1차로의 진입로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왜 그렇게 도로 폭이 좁을까? 나중에 문학관에서 설명을 들을 때 이외수 작가 생전에는 수많은 관람객이 드나들었다는데 그 많은 사람과 차량은 어떻게 드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좁은 길에 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가 있었고, 그 다리를 건너면 이외수문학관이었다. 우리는 차로 올라왔기 때문에 좀 더 위로 올라가서 모월교라는 다리를 건너 문학관 바로 앞뜰에 차를 세웠지만, 평소에는 출렁다리 훨씬 아래의 주차장에 주차하고 도보로 올라야 하는 듯싶었다.


이외수문학관 주변을 모두 통칭하는 지명은 바로 “감성마을”이다. 도로명 주소부터 감성마을길이고 이외수는 감성마을 촌장이었다. 감성마을은 그곳에서 생활하고, 집필하는 이외수가 방문하는 모든 문학인, 관람객과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출렁다리 위의 모월교를 건너 들어가면 가장 먼저 글귀가 새겨진 몇 개의 거석(巨石)이 사람들을 반긴다. 그리고 곧바로 “여기부터는 집필공간이므로 출입을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을 볼 수 있다. 그 아래가 바로 문학관이다. 문학관 아래는 방문객센터와 모월당(달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뒤로 돌아가면 1층 작은 도서관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아까의 출렁다리와 그 아래 넓은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각종 글귀가 새겨진 입석(立石)들을 볼 수 있다. 문학관 외부에 시비(詩碑) 몇 개쯤 세워진 곳은 가끔 볼 수 있었지만, 이곳처럼 많은(주차장에서 문학관까지의 시비는 총 113개라고 했다.) 문학관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문학관 입구부터 색달랐다. 온통 벽을 덮은 포스트잇의 광경이 우리를 맞이했다. 처음 방문했던 기형도문학관에서부터 황순원문학관 등 여러 문학관에서 관람객이 붙인 포스트잇을 보았지만, 이곳의 그 규모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그 자체가 전시물이라 할 수 있었으며 포스트잇의 동굴을 지나면 두 명의 이외수가 관람객을 반긴다. 나도 그곳에서 “언젠가 와 보리라 생각만 앞서다가 오늘 결국 오고야 말았습니다”라고 포스트잇 글도 남기고, 이외수와 함께하는 사진도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영혼의 연금술사’라는 이외수의 소중한 글귀들이 전시실 안 곳곳에 걸려있었다. 전시실은 “ㅁ”자 구조로 한 바퀴를 돌면 입구와 연결된다. 전시물 자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글과 그림과 서책과 그리고 다양한 행사에 활용되는 실내 공연장 비슷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단순히 전시물만 보아서는 그 작가에게 곧바로 다가가는 것을 상상할 수 없긴 하지만, 이외수의 경우는 무언가 달랐다. 말 한마디와 글귀 하나가 속속들이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작가로는 거의 처음이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외수는 같은 말을 정말 ‘예쁘게’ 한다. 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에게 ‘예쁘게’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게 느꼈다. 해설사 선생님의 안내를 받은 것은 아니라서 전시물 하나하나의 의미를 올바르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러면 어쩌랴? 그냥 내가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면 그만이지 않은가. 전시실을 돌면서 어느샌가 나는 그렇게 이외수 예술의 전반을 ‘예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하악하악’의 글귀 “포기하지 말라. 절망의 이빨에 심장을 물어뜯겨 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라는 글이 적힌 아크릴 관 속의 감방 철문에서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지만, 역설적으로 이외수가 자신을 감성마을 안에 가두고 창작 예술에 전념하고자 하는 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그 철문이 나의 짐작과 같은 의미로 그곳에 전시된 것이 아닐 수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어지는 벽면에는 차례대로 이외수의 글과 그림과 도서 전시 진열대가 이어진다. 전시실 창을 통해 내다본 “ㅁ”자의 중앙은 마치 마루가 깔린 중정처럼 보였고 한쪽 끝은 낮은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마 이외수 생전에 여러 행사를 통해 관람객들과 소통하던 공간은 아니었을까?


그 외에 전시실 중간쯤 있는 영상을 상영하는 곳처럼 보이는 공간에는 우리가 찾았을 때 아무런 행사는 없었다. 전시실의 마지막에 있는 무대에서 딸과 이외수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외수의 사진 중에는 젊은 시절의 나와 비슷한 사진도 있었다. 내가 왜 이외수의 표정에서 내 모습을 찾았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아내와 딸도 비슷하게 보았나 보다. 아무튼 나는 지금까지 여러 문학관을 돌아다니며 처음으로 나와는 다소 엉뚱한 면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작가를 만났다. 물론 그런 허접한 이유를 내세워 이외수에게 조금이라도 다가가려는 불손한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이외수의 글을 많이 접한 것이 아니라 이외수의 글에 관해 깊은 감명을 받고 문학관을 찾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입구의 시비에 새긴 글부터 자꾸만 나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내가 마음에 담고 싶은 글귀는 이 글 끝에 남기겠지만, 그건 그렇고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이외수의 그림이 글귀 못지않게 내 눈길을 끌었다는 사실에는 나도 놀랐다. 간결하고도 강한 필치로 그려낸 그림들은 그림을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글을 쓰는 것 이외의 다른 취미를 지닌 문인들도 많았기는 하지만, 이외수의 그림은 한 차원 다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가끔 문학관을 다니며 순수하게 작품 이외의 전시물에 깊이 빠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외수문학관의 전시물에서는 육필 원고가 마음에 남았다. 빽빽하게 적힌 원고의 정갈한 글씨체에서 사진으로 본 이외수의 모습이 쉽게 연상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나의 선입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시물에는 당연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일생에 대한 이야기와 간결하게 정리한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 셋이서문학관에서 보았던 천상병 시인과의 이야기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 셋이서문학관에서 이외수와 천상병의 방을 보고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 천상병 시인의 글을 읽고 나니 어슴푸레 짐작할 수 있었다. 문학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우애를 지녔던 두 사람, 형과 아우로 서로를 불렀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아마도 먼 훗날까지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할 것으로 보였다.


야외의 많은 시비에 새긴 글귀 중 몇 개를 이곳에 적어보겠다. 가장 먼저 내가 접했고, 나의 가슴에 이미 깊게 새겨진 글은 바로 아래의 글이다.


“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


그리고 몇 개의 글귀를 더한다면,


“사랑, 차라리 내가 시들고 그대가 피어나기를 소망하는 것”


“사랑, 대수롭지 않은 안부 한마디에도 가슴 뭉클해지는 것”


“하나의 존재는 하나의 사랑입니다. 그 중에서도 그대가 가장 눈물겨운 사랑입니다.”


“사랑, 만물이 정지해 있어도 그대 심장이 뛰는 소리는 들을 수 있다.”


“주저앉지마라 느린 걸음이지만 그대를 향해 행운이 걸어오고 있다.”


“방황은 고통스러운 자만이 갖는 가장 아름다운 자유다.”


이외수의 글 중에 유독 ‘사랑’이 많은 것을 본 아내가 한마디 한다. “이외수는 아내를 무척 사랑한 사람이었나 봐.” 물론 나는 그의 일생을 모른다. 하지만 나도 아내의 말에 공감했다. 이렇게 문학관을 찾으면, 문인들이 들려주는 말을 듣는 것도 문학관을 찾은 보람중의 하나이다.


돌아오는 길에 이동갈비촌을 들렀다. 기껏 검색해서 갔더니 예전에 아들과 함께 가족 모두 왔던 곳이었길래 이번에는 그 옆의 다른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원래 문학관에 갈 때부터 아내가 넌지시 딸에게 말했다. 엄마랑 아빠가 이동갈비집에서 막걸리라도 한잔 마시면 집에 갈 때는 네가 운전하는 거냐고. 하지만 딸은 순순히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먼저 마실 거라고 했다. 결국 내가 운전할 테니 모녀가 한잔씩 마시라고 했고, 아내와 딸은 막걸리 한 병을 사이좋게 나눠 마셨다. 워낙 술을 못 마시는 모녀인지라 출발하자마자 벌써 차 안에서 노래도 부르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살짝 꼬여가는 딸의 목소리를 들으며, 드디어 반주의 세계에 입문한 딸을 축하해 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아내와 딸은 앞으로 셋이 어디를 갔다가 술을 마실 일이 있으면 자기들이 마실 테니 나보고 운전하란다. 나는 기꺼이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문학관 나들이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즐거움의 발견이었다.


이제 다음 나들이 첫 문학관은 석정문학관이다. 다음에도 밖에서 하룻밤을 자고 문학관 여러 곳을 들를 계획이다. 그렇게 두 번만 더 다녀오면 계획한 문학관 나들이는 끝난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문학관 나들이는 아닐지라도 아내와 딸과 함께하는 나들이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대문 사진에서 나는 브런치 활동 이래 처음으로 나의 생얼을 깠다. 이유는 글의 서두에 내가 이외수의 얼굴에서 나와 닮은 부분을 발견했다는 허황한 이야기를 입증하기 위해서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어째, 좀 닮은 부분을 찾았는지는 모르겠다.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상서면 감성마을길 157

전화번호 : 033) 441-1253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