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의 시인 신석정

by 정이흔

기어이 비가 내린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남부지방에는 비가 올 것이라고 하더니 한창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빗줄기가 운전석 창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빗길 운전을 운운할 정도로 심한 비는 아니었던 까닭에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그렇게 집에서 출발한 지 세 시간 정도 지나서 바닥이 축축이 젖은 석정문학관 주차장에 도착했다. 문학관은 2층 건물이었는데 전면에 신석정 시인의 사진 중에서 대표적인 사진이 2층 높이를 꽉 채울 정도로 크게 유리창에 아예 선팅처럼 부착되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신석정 시인의 시를 가사로 하는 창작음악제 알림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현관의 왼쪽 벽에는 (사)한국문학관협회가 선정한 올해(2022년)의 최우수 문학관이라는 패가 붙어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남직원과 여직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문학관 전시실 입구는 왼쪽이었는데, 먼저 시청각 자료를 시청하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안내해 주었다. 안내를 따라 오른쪽의 시청각실로 들어가니 마침 우리처럼 한 쌍의 중년 남녀가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영상에는 신석정 시인의 일생과 작품 세계에 대한 짧은 자료가 들어있었다. 우리는 시인에 관해서 자세하게 알고 방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의 영상 시청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


전시실 입구에 새겨진 시인의 좌우명이다. 뜻이 높은 산과 흐르는 물(자연)에 있다는 뜻이라 한다. 그렇다고 시인이 자연에 귀의하고자 하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현실에서 지조를 지키고자 하는 신념과 기개를 보여줄 뿐이다. 회갑 기념으로 출간된 제4 시집 <산의 서곡>의 題詞로 쓴 “침묵은 산의 얼굴이고 숭고는 산의 마음이리니 나 또한 산을 닮아보리라”라는 말로 시인이 자연을 대하는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시실은 왼쪽으로 돌아서 관람하게 되어있었다. 벽을 따라 진열된 다양한 서적과 여러 시인들의 시집도 시인의 전시물과 함께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박두진, 조지훈, 김남조 시인의 시집과 당시 함께 활동했던 김수영, 이병기, 고은과 같은 시인들과 찍은 사진도 보였다. 그리고 홀의 중앙을 빙 둘러 세워진 판에 새겨진 글귀들이 눈에 들어온다. 읽다 보니 시인의 삶과 겹친 시인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몇 구절 옮겨보겠다.


“한 편의 시는 불행한 겨레의 멍든 마음을 되찾아 주는 따뜻한 손길이 되어야...”

“책은 외출을 싫어한다.”

“시를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

“내 마지막 원이니 의자에 한 번만 앉게 해 달라.”

(시인은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래 만 7개월에 걸친 외롭고 눈물겨운 투병 생활을 계속하였다.)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쓴 시 〈가슴에 지는 낙화소리〉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가슴에 지는 낙화소리


백목련 햇볕에 묻혀

눈이 부셔 못 보겠다.

희다 지친 목련꽃에

비낀 4월 하늘이 더 푸르다.

이맘때면 친굴 불러

잔을 기울이던 꽃철인데

문병 왔다 돌아가는 친구

뒷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에 무더기로 떨어지는

백목련 낙화소리...



제1시집 <촛불>을 읽은 사람은 석정을 목가 시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제2시집 <슬픈 목가>에서는 <촛불>의 어머니와 목가 세계를 버리면서 일제 강점기 후반의 숨 막히는 사회상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석정을 전원적 목가 시인으로 칭하다가도 현실 문제를 파고드는 저항 시인으로 부르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석정은 그런 호칭을 거부한다. 시인에게 있어서 무슨 무슨 시인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자연을 그릴 때가 있으면 치열한 역사의식과 현실 참여를 읊을 때도 있는 것 아닌가? 부조리와 현실에 대한 인간의 성실한 저항이 누구에게 보다도 시인에게 요구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석정의 말에서 왜 갑자기 김수영 시인이 떠오르는 것일까? 언론자유를 억압받던 시대에 김수영이 외친 언론자유에 대한 확고한 소신이나 지금 신석정이 말하는 치열한 역사의식과 현실 참여가 왜 같은 의미로 들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혹시 김수영과 함께 찍은 신석정의 사진을 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신석정은 시집 다섯 권과 유고 시집 이외에 번역집, 산문집, 평설, 일기까지 많은 글을 남겼다. 사실 문학관 나들이 한 번에 시인의 전부를 느끼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남는 것은 그 시대의 문인들이 그랬듯이 강점기 시대와 해방 후 문학적 암흑기의 암울한 사회 현실 속에서는 그 어떤 자연주의, 전원주의 목가적 시인이라 할지라도 끝내는 저항 의식과 현실 참여가 주를 이루는 시 세계로 발을 들이기 마련이었겠다는 생각이다. 신석정 시인 또한 그런 면에서는 마찬가지였으리라.


제1시집에 실린 시를 두 편 소개하겠다.



임께서 부르시면

가을날 노랗게 물드린 은행 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 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어머니

산새는 저 숲에서 살지요?

해 저문 하늘에 날아가는 새는

저 숲을 어떻게 찾어 간답니까?

구름도 고요한 하늘의

푸른 길을 밟고 헤매이는데.........



어머니와 자연이 이후 시집에서는 조국과 현실로 바뀐 것은 아닌지?



전시실 중앙에 헤드셋을 이용하여 신석정창작음악제 수상곡을 들을 수 있는 스테이션이 세워져 있었다. 음악을 들어 보니 시를 가사로 곡을 붙인 노래들인데 아주 경쾌한 노랫소리가 귓속에 울려 퍼진다.


전시실을 나오면 정면 벽에 의례 클리세처럼 느린 우체통과 메모지 벽이 눈에 들어온다. 특이한 것은 그 옆에 세워진 사진기였다. 아내와 둘이 사진을 찍으니, 감열지 필름 위에 즉석에서 인쇄되어 나온다. 새로운 재미였다. 문학관 리플릿이 보이지 않기에 물었더니 지금 새로 디자인하는 중이라고 한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빗줄기가 가물가물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지금 조성 중인 詩碑 공원의 시비를 몇 개 읽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고창의 <미당시문학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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