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을 돌아보다.
어제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피곤한 밤을 보냈지만, 그래도 아침에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리한 일정이라고 한 것은 하루에 세 곳의 문학관을 방문하겠다고 한 계획을 말한다. 그저 문학관을 거쳐 가듯이 들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원래부터 내가 문학관을 찾고자 하는 이유가 그저 단순한 나들이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할 만한 질문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기형도문학관을 시작으로 문학관을 찾기 시작한 지가 거의 3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여러 문학관을 다니면서 느낀 점도 많았고, 이제 막 시작한 나의 창작 생활에 도움도 많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그런 나들이를 통해서 아내와의 공감대를 다양하게 형성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부간에 서로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는 취미가 되었든 뭐든 일련의 사건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그래서 내가 지금도 문학관을 찾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예전처럼 금요일 오전 일찍 아내와 집을 나섰다. 문학관을 두 군데 돌아보고 무지막지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섬진강 강가를 달려 또 한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전주로 와서 예약한 한옥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렇게 첫날의 일정을 마치고 밖에서 사 온 다 슬기 전 안주에 막걸리를 아내와 한 잔씩 나누어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도 비가 그치고 그나마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호텔을 나서 약 십 분 거리의 한옥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일이 거기에서부터 꼬였다. 그래서 예정에도 없던 일정이 시작되었다. 원래는 한옥마을 내에 있는 두 곳의 목적지를 들렀다가 공주로 올라가는 일정이었는데, 그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원래 문학관은 월요일이 휴무일이다.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다음 날이 휴일이다. 처음 찾은 곳이 고하문학관이었다. 고하 최승범 시인은 재작년에 작고하셨지만, 그 이후에 문학관을 리모델링하여 전주시 도서관이 운영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집을 떠나기 전에 고하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장서에 관심이 있어서 이번 나들이 목적지에 넣은 것인데, 첫발부터 잘못되었다. 주말에 차량 진입이 금지된 한옥마을 안으로 진입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기껏 문학관 앞에 주차하고 나니 문학관이 닫혀 있었다. 분명 공휴일이나 월요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주차를 도와준 바로 옆의 숙박업소 사장님 말을 빌리면, 그곳의 근무자가 마치 자신을 공무원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물론 전주시 도서관이 운영 주체이므로 공무원임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관이라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방문객이 몰릴 수 있는 토요일에 휴관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문학관은 토요일과 일요일은 개관한다는 일반적인 기준을 무시하고 자기들 멋대로 문학관 휴관일을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이라고 정한 것은 아닌지. 아무튼 아침 첫 방문지에서부터 씁쓸한 기분을 맛보았다. 물론 문학관에 전화라도 해서 확인하고 왔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내 잘못은 있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아도 방문자의 블로그 글만 있을 뿐 홈페이지나 전화번호는 찾을 수 없기에 그냥 방문했던 것인데 아무튼 일이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들르기로 하고 발을 돌렸다. 혹시라도 고하문학관을 다녀오실 분이 있다면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은 피하시고 차라리 월요일에 가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씁쓸한 발걸음으로 두 번째 목적지인 최명희문학관으로 향했다. 며칠 전부터 불편한 다리를 끌고 동행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한옥마을 관광하는 셈 치고 느릿느릿 걸어서 문학관에 도착했는데, 그곳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그저 단순하게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영업 중이라는 정보만 확인하고 갔는데, 나의 실책이었다. 인터넷을 조금 더 검색해 보니 여러 이유로 부실 운영 끝에 이미 개점휴업 상대라는 사실을 몰랐다. 아무래도 나중에 남원의 혼불문학관을 알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하문학관이나 최명희문학관의 방문 실패는 오롯이 나의 잘못이므로 남 탓할 여지는 없었다. 지금까지 직접 문학관에 전화 확인을 하지 않고 찾았어도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하여간 일진은 좀 사나운 토요일 아침이었다. 돌아 나오며 바로 옆에 있는 교동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채화 전시장을 둘러본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덕분에 아내와 나는 문학관 두 곳 대신 한옥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한옥마을이 처음이었다. 아내는 자꾸만 예전에 왔던 기억이 나지 않냐고 나를 채근했지만, 나는 전혀 기억이 없었다. 나의 기억력은 거의 무서울 정도로 정확했는데, 내가 다녀온 기억이 없다면 없는 것이리라. 그래도 아내는 자꾸 우겼다. 그때 와서 여기서 뭘 먹고, 저기서 뭘 보았고 하면서 계속 왔던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랑 왔다는 말이냐고 다그치는 나에게 아내는 그러면 OO이(아들)랑 왔었나? 아니면 OO(딸)이랑 왔었나? 하면서 계속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옥마을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소금빵 아이스크림도 먹고, 경주 십원빵도 먹고(십원빵 가게 앞의 참새들은 손님이 의자에 앉을 때마다 혹시라도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을까? 해서 손님의 발아래에 턱 쳐들고 내려앉아 있었다.), 수박 주스도 마시고 그렇게 한옥마을을 즐겼다. 그 짧은 시간에 느낀 것은 한옥마을이니까 물론 한복을 대여해 주고 사진을 찍어 주는 곳은 많아도 이상할 것은 없었는데, 전통적이라는 컨셉과는 관련 없는 캐리커쳐와 사주, 타로집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옥마을에서 예상에도 없던 일정을 소화하고, 공영주차장으로 돌아와 차에 올랐다. 이제 공주까지는 기껏 한 시간 십 분 정도이다. 공주를 들렀다가 홍성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면 이번 나들이는 끝난다. 나들이 동안 문학관을 다섯 군데 들리게 되는 셈인데, 문학관별 나들이 소감은 나중에 개별적으로 써서 올리도록 하겠다. 한옥 호텔에서 술잔을 부르던 저녁 빗소리를 들어보시길...
대문 사진이 바로 십원빵 가게 앞 의자 주변을 배회하는 그 참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