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시인 나태주

by 정이흔

전주 한옥마을에서 아내와 데이트를 마치고 곧바로 차에 올라 공주로 향했다. 다음 방문지가 나태주의 풀꽃문학관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곳은 우리가 처음 가는 곳은 아니다. 한참 전에 갔었는데, 내가 사전에 확인하지 않고 가는 바람에 그만 점심시간에 걸려 문학관 내부를 관람할 수 없었기에 이번 나들이 일정에 끼워 넣은 것이다. 이번에는 전주를 떠나기 전에 지난번처럼 실수하지 않기 위하여 점심 식사 시간을 확인하였음은 물론이다.


전주에서 공주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고속도로에 오르면 중간에 거치는 것이 없기에 한 시간 십 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예상대로 한 시가 조금 지나서 문학관 주차장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무릎이 불편해서 언덕길을 오르기 힘들 것 같기에 차에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우리 기억 속의 언덕길보다 훨씬 완만한 언덕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상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한 언덕길은 어느 문학관 진입로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아내도 함께 차에서 내려 언덕길을 올랐다. 언덕길 한쪽의 담벼락에는 시인의 시 풀꽃과 선물, 그리고 행복과 안부가 마치 어린아이 낙서처럼 자유분방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보은의 오장환문학관 진입로에서 본 그런 낙서(?) 같았다.


사실 나태주라고 하면 풀꽃을 먼저 떠올리지만, 문단의 등단작이자 신춘문예 당선작인 ‘대숲 아래서’는 ‘풀꽃’ 시와 결이 다르다. 나도 처음에는 시인의 등단작을 읽고 이 시가 정말 나태주의 시인가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시인은 많다. 시인이 등단할 때 쓴 시의 결을 끝까지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전에 다녀온 신석정 시인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어머니와 자연에서 현실 참여와 저항 시인으로 시인은 얼마든지 시의 결을 넘나들 수 있고, 오히려 그런 시들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시가 될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문학관의 내부는 아주 좁아서 그냥 일반 가정집처럼 생겼다. 우리가 둘러보고 나온 후 한 무리의 플로깅 학생을 인솔하고 온 해설사의 설명을 언뜻 들으니 그 건물도 적산가옥이라고 했다. 설명을 훔쳐 듣고 나서야 비로소 내부의 구조가 우리 민족의 정서에 익숙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작은 마루에 올라서면, 앞에 방이 한 칸 있었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길고 좁은 복도가 있었으며, 복도 끝에 조금 넓은 공간이 하나 더 있었다. 그냥 명칭이 문학관이지 실상은 문학관의 역할이 힘들 것 같은 구조였다.


처음 방으로 들어가면 그림이 여러 점 걸려 있었으며 정면에 열두 폭 병풍에 시인의 시가 적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좁은 공간의 한쪽은 유리문으로 닫힌 책장과 시인의 풍금이 있었고 바닥에는 온통 기대어 놓은 액자에 그림과 서예로 쓰인 시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돌아보던 내 눈에 시인의 등단작인 ‘대숲 아래서’ 액자가 들어왔다. 상황을 짐작해 보니 아마도 다른 공간으로 전시물을 옮길 계획인 듯싶었다. 솔직히 문학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좁은 공간이었으므로 그런 추측은 당연하였으리라. 그리고 책장 앞에는 시인의 사진 옆에 웬 여인의 초상화 액자가 있었는데, 아마도 부인일 것 같았다.


액자들에 무슨 글이 있는지 보고 싶어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기에 그냥 나오려다가 낯익은 이름을 보았다. ‘박재삼’, 사천의 시인, 그의 글이 액자 안에 곱게 모셔져 있었다. 두 시인은 서로 아는 시인이었던가?


이 병신아 이 병신아

뭣하고 살았노

내 눈에 金빛 열매 열리는

매미 운다

辛酉歲末 朴 在 森



방을 나와 오른쪽 복도에는 다양한 시인의 얼굴이 걸려 있었고, 역시 아래에는 벽에 기댄 시화 액자가 늘어서 있었다. 마지막 공간에 가서야 전시물들이 그렇게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태주 문학창작 플랫폼 조성 사업’ 조감도를 보았는데, 지난번에 왔을 때 문학관 왼쪽 언덕 위에 공사 중이던 건물이 바로 그 창작 플랫폼 건물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곳의 공사가 완결되면 지금 공간의 전시물을 모두 옮겨서 새롭게 전시할 계획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서 왼쪽 정원에 오르니 공사 중인 건물이 거의 완공된 형태로 지금의 문학관을 내려보고 있었다. 현관 유리에는 ‘개관 준비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아마 외관은 다 완공되었는데, 내부의 전시 기획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창에 가까이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니 전면에 서가로 이용될 것 같은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지만, 전시물이 설치된 흔적은 없었다. 아마 정식 개관은 아직도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았다.


사실 나태주 시인만큼 많은 시를 남긴 시인도 드물 것이다. 개인 시집 35권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를 쓴 것일까? 혹시 시인이 거의 장시는 선호하지 않아서 그렇게 많은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 외에도 산문집과 동화집, 시화집, 사진 시집을 모두 합하면 나 같은 사람의 상상 범위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왕성한 창작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솔직히 그런 창작 의욕이 부럽다.


신축 건물까지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에 문학관(구옥)의 정면 사진을 다시 찍었다. 이제 신축 건물로 기념관이 옮겨지면 이 건물에서는 나태주 시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물론 건물이야 보존될 것이지만 그래도 문학관으로서의 흔적은 사라질 것이다. 나중에 신축 건물이 개관되고 그곳에서 각종 문학창작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한 번쯤은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차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홍성의 만해문학체험관이다. 그러고 보니 우스운 것은 그곳도 여기와 마찬가지로 한 번 찾아갔다가 휴관으로 인해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던 곳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휴관일이 아니므로 들어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곳만 돌아보고 집으로 가면 이번 나들이는 끝난다.


꽃, 꽃으로 얼룩진 시인의 시를 보다 보니 나도 예전에 쓴 시가 떠올랐다. 이런 나들이 글에 보잘것없는 내가 지은 시를 끼워 넣는 것이 나태주 시인에게 무례한 일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한 번 끼워 넣어 보고 싶었다.



꽃놀이 / 정이흔


봄바람의 충동질로

날아오르던 꽃잎은 자기가

그렇게 가벼운 존재였는지

미처 몰랐다


바닥에 내려앉은 꽃잎은

또 한 번의 비행을 꿈꾸며

봄바람을 조르고 있었다


꽃잎을 외면한 봄바람 대신

내가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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