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도로와 산길을 돌다 보니 공주에서 홍성까지도 시간이 예상보다 더 걸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문학체험관 관람 시간 안에만 도착하면 되는 거였고, 이곳이 이번 나들이의 마지막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은 지난번에 한 번 다녀간 곳이다. 아마 홍성 디카시 공모전에 응모할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든가? 그래서 문학관 개관 시간도 확인하지 않고 월요일에 불쑥 찾아왔었던 까닭에 관람도 못 하고 돌아선 기억이 있었다. 그 대신 만해 생가지 앞의 작약꽃을 보고 시를 한 편 지었었는데, 기록을 해 두지 않아서 지금은 되살릴 수 없음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혹시 모르지. 어쩌면 나중에라도 다시 핀 꽃을 보면 그때의 시상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그날도 마찬가지이지만 큰 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임에도 매우 한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곳을 찾고자 했던 이유는 남한산성에 있는 만해문학관을 다녀오고 나서 받은 약간의 아쉬움이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라 먼저 찾은 것인데, 오롯이 만해만의 자료를 전시한 곳이 아니라 만해의 시를 다른 사람의 필체로 기록한 서예 작품 전시실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이곳을 찾겠다고 마음먹고 있다가 지난번에 와서 헛걸음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온 것 같았다.
주차장은 한적했다. 보통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문학관 관람객이 좀 있을 것 같았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주차장에 대형버스 한 대만 있을 뿐 관람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만해문학체험관’이라고 쓰인 단아한 건물 오른편에 만해의 흉상이 있었다. 아! 그런데 잠시 내 눈을 의심했다. 고개를 약간 비스듬히 돌리고 먼 산을 응시하는 만해의 얼굴이 그동안 보아 온 영정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가? 사실 가장 널리 알려진 영정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날카로운 모습이었다고 한다면, 이곳 흉상의 얼굴은 그냥 평범한 노스님의 근심 어린 표정으로 보였다. 나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체험관 안으로 발을 돌렸다.
사실 만해는 천의 얼굴을 지닌 사람이다. 표정만으로 보면 분명 한 사람이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이 그 안에 있는 듯 보인다. 승려이자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며 민중운동가이며 언론인이자 교육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모습이 만해의 참모습인지 가릴 필요는 없다. 그 모든 모습이 만해의 얼굴이었으므로. 그래서 이곳을 다녀간 소회를 적으려 할 때 잠시 망설였다. 체험관을 돌아본 이야기를 적는데, 체험관을 찾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저 전시실을 돌아보면서 이곳에 와서야 새롭게 느낀 나만의 만해를 그리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굳이 만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행적을 보였으며, 그런 행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는 등의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다면 아마도 이 글의 끝이 어떻게 될지 나조차 알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아내와 나들이 중이므로 나들이를 즐기는 와중에 간혹 잊고 있었던 만해의 이야기가 떠오른다면 그것을 기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전시실 안은 만해의 일생과 행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 만해의 문학과 관련한 흔적을 따라가고 싶었다. 사람들은 흔히 접하는 ‘님의 침묵’이나 ‘나룻배와 행인’과 같은 만해의 시를 통하여 만해의 시가 여성적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시어 자체도 그렇거니와 표현상의 어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만해의 시만큼 남성적인 시도 드물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연약함이 오히려 강함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만해의 시를 보면 느낄 수 있다. 아래의 시는 옥중에서 즉석에 지은 시라고 한다.
농산의 앵무새
농산의 앵무새는 말을 곧잘 하는데
그 새만도 훨씬 못한 이 몸 부끄러워라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지만
이 금으로 자유의 꽃을 몽땅 사고 싶구나.
이처럼 만해의 시에는 부드러운 가운데 강함이 있고,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열망하는 만해의 집념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런 표현은 독립운동가 이전에 시인으로서의 심상이 가득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문학관 나들이를 계획하면서 만해의 흔적을 떠올렸던 까닭도 그런 의미였다.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었다. 전시실 안에 만해의 친필 서예 액자가 두 점 있었는데 나는 서체를 잘 알지는 못하기에 그 서체가 무슨 체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서체에서 풍기는 느낌으로 글을 쓴 사람의 성격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만히 액자를 바라보자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해서체나 행서체, 초서체, 전서체와 같은 서체의 구분으로는 의미를 찾지 못할 만큼 이유 모를 편안함을 느낀다. 무식한 표현일지는 몰라도 전반적으로 두루뭉술한 만해의 서체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만해 성격의 강직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세상을 널리 사랑하라는 불자로서의 만해의 기본적인 심성을 잘 나타내는 서체로 보였다. 이렇게 글자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전부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만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전시실 안에는 ‘만해 한용운의 얼굴’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만해의 다양한 얼굴이 걸려 있었으며, 그 얼굴들에서 만해라는 한 인간의 삶에 어린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만해는 특히 시를 쓰면서도 ‘얼굴’은 주요 소재였다. “님의 침묵‘이나 ’님의 얼굴, ‘떠날 때의 님의 얼굴’ 등 ‘니’과 ‘얼굴’이 끊이지 않는다. 만해가 그 얼굴을 통해 조국의 모습을 보았다면, 후세의 우리는 다양한 만해의 얼굴을 보고 만해의 참된 모습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학적인 면에서도 얼굴이 중요하기는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흔히 그런다. 자기의 얼굴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표현 말이다. 시인은 얼굴이 변해 보이면 시심도 달라지고, 시심이 달라지면 시풍이나 시의 결도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이런 얼굴의 변화에 관한 나의 어쭙잖은 관상학은 시인의 세계뿐 아닌 거의 모든 영역의 인물에게도 공통으로 적용된다고 말하고 싶다. 정치인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정치를 이상하게 하면서 얼굴이 이상하게 변해가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말이다. 시를 논하다가 정치까지 말꼬리가 늘었다.
만해의 시는 시 자체로도 시를 배우는 나에게 의미가 깊지만, 만해의 일생을 보면 모든 행적에서 시는 그의 마음을 표현하는 채널이었다. 일반적인 시인이 시만을 위한 시를 썼다면, 만해는 시를 통하여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세상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은 몇 세대를 뛰어넘어 앞으로도 영원히 전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해의 시 중에서 많은 시어(詩語)가 조국을 상징한다는 것은 독립운동가로서의 만해를 보여주는 것이고, 만년에 지은 아래의 ‘심우장’과 같은 시의 소(牛)라는 시어(詩語)가 마음을 비유한 것이라는 사실은 불자로서의 만해를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심우장
잃은 소 없건만은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심우장(尋牛莊)은 만해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그곳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에 매진하면서도 여전히 민족의 혼을 간직하고 조국을 지키려는 마음을 지켜가려고 노력했다.
전시실을 나오면 오른쪽에 ‘만해 북카페’라는 공간이 있다. 그곳을 들어가기 전에는 안을 지키는 직원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전면은 책장에 꽂힌 책으로 가득했고, 반대편에는 각종 음료를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주방 시설이 있었다. 자유롭게 차를 마시고 컵은 싱크대에서 직접 씻어 건조대 위에 놓으면 된다. 찬 음료를 위한 제빙기도 마련되어 있고 그 앞에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휴식 및 문화공간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북카페 이용 안내가 있었다. 그 안내를 보자마자 아내가 말한다. “역시 만해의 공간답네.” 그 말은 아마도 모든 사람을 널리 편하게 품고 베푸려는 만해의 넓은 마음답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내가 생각해도 그랬다.
건물 밖으로 나와 만해 생가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올라가지는 않았다. 지난번에 찾았을 때 이미 시비 공원까지 둘러본 터였는지라 오늘은 여기까지 보고 돌아가기로 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때 아내가 한마디 한다.
“여기 텀블러에 아까 카페에 있는 제빙기에서 얼음을 좀 담아 오는 것이 어때?”
듣고 보니 어차피 운전하면서 찬물을 자주 마시는 나로서는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얼음을 가득 채운 텀블러를 들고 차로 돌아와서 주차장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