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시문학관을 출발해서 임실로 향했다. 여전히 빗줄기는 오락가락하더니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은 아예 퍼붓듯 내렸다. 강물 위에서 거꾸로 솟구치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드디어 큰길에서 좁은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사실 이곳은 문학관이 아니다. 특별한 전시물도 없다. 그저 방 한 칸 양쪽 벽을 가득 채운 서재의 서적들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강을 내려다보는 창가에 앉은뱅이책상 하나가 놓여있는 평범한 시골집이다. 그럼에도 문학관 나들이 중인 내가 방문할 장소에 이곳을 끼워 넣은 까닭은 순전히 고창에서 전주의 숙소로 올라가는 길이 허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특히 대부분 작고하신 문학관의 시인과 작가와 달리 잘하면 직접 김용택 시인을 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나게 된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조차 생각해 둔 것도 없는 당돌한 방문이었다.
하지만 문학관도 아닌 터라 제대로 된 홈페이지도 없고 그냥 블로그에 떠도는 몇몇 사람들의 방문기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길을 떠났다. 시인이 작은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마다 모두 반겨줄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그냥 아내와 둘이 나들이 삼아 문학관을 찾아다니는 일반인인 우리가 언제 방문하겠다고 미리 이야기를 해 둘 명분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 않은가?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워낙 집 앞이 좁은 도로에 접했는지라 차를 주차하기 위해서는 집을 지나서 다시 길가로 나가야 했다. 나가다가 정자가 있는 작은 공터를 발견하고는 그곳에 차를 세우고 다시 작은 학교로 발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우리 눈앞에 예상치 않은 광경이 펼쳐졌다. 삼삼오오 우산을 쓰고 큰길에서 올라오던 사람들이 작은 학교 마당으로 몰려들더니 마루는 물론 방 안에까지 들어가서 마당을 향해 앉아있었으며, 마당에서 집 쪽을 바라보면서 우산을 쓴 시인이 한창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 부부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 일행이 어떤 연유로 그곳에 와서 시인의 강연을 듣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무작정 한복판으로 끼어들 수도 없었다. 그래서 살그머니 도둑 강의를 듣는 사람처럼 시인의 뒤를 돌아 마당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우리의 등장을 알아챈 시인이 흘깃 쳐다보더니 한마디 건넸다. 일단 저기 뒤쪽에라도 서 있으라는 말을 들은 우리는 마루 한쪽 끝에 서서 시인의 강연을 들었다.
사실 각종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 말고 좌, 우측에 살림집과 서재가 현대식 외관을 띤 채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곳은 돌아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어차피 주인은 열심히 강연 중인데 우리가 허락도 받지 않고 돌아다닐 수도 없었기에 그냥 선 자리에서 강연에 몰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일행은 某 교육청 산하의 초등학교 교사들이었고, 교육청 주관의 어떤 연수에 참가 중이었다. 그쪽에서 시인의 강연을 섭외했던 모양인데, 우연히 우리 부부가 그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일은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무작정 자리를 뜬다거나 하는 실례가 될 만한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무릎 보호대까지 착용하고 서서 있어야 하는 아내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우리를 보다 못한 남자 선생님 한 분이 아내에게 마루에 걸터앉을 것을 권했고 우리는 염치를 불고하고 선생님 틈에 끼어버렸다.
시인의 시는 섬진강처럼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흐른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라든지, “당신이 어두우시면 저도 어두워요.”라든지 얼마나 조곤조곤한가? 바로 옆에서 귀에 대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그런 시인이 어떻게 시를 쓰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의도치 않은 방문이지만,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강연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내 귀를 부여잡는 시인의 말이 있었다. 시인은 교직 생활 도중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글쓰기와 접목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강연 속에서 시인이 들려주고 싶어 하는 말이 어떤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내가 이전에 시를 쓰는 법에 대하여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물론 전문적인 시 창작 공부를 하지 않은 사이비 시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 짓는 것에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뜻으로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시의 소재라고 해서 특별한 것도 없으며 멋들어진 시어를 구사하면서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그럴듯한 시처럼 보이게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내 글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이야기를 시인에게서 듣게 될 줄이야. 보고 듣고 말하면 시가 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상상하는 인문적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 그리고 자기가 쓴 시에 자기부터 감동해야 남들도 감동한다. 등등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내가 생각했던 내용들이 결코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이론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은 동시도 많이 썼는데, 그것은 아마 평생을 초등학생과 생활한 시인의 경력 덕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른이 아이를 위한 동화를 쓰고 동시를 짓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글을 바라보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시를 쓰고는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그때마다 아이들로부터 너무 재미있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러면 시인은 더욱 자신감이 들어서 동시를 쓰고 동화를 쓴다. 시인의 필력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나의 건방진 생각에 만일 시인이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퇴직하지 않고 또 임실의 섬진강만 지키고 있지 않고 대도시의 여러 문학단체에서 성인 문인들과의 교류를 일상으로 삼고 있었다면 동시는 지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동시를 짓고 동화를 쓴 것이 순전히 주위의 아이들 덕분이지 않겠는가? 이런 근거 없어 보이는 주장은 교사로 퇴직한 내 아내와 교사로 재직 중인 딸의 견해에 비겨 보아도 결코 낭설이 아닐 것이라는 자신도 있다. 어쩌면 부모는 아이의 시각에 맞춰서 생각한다는 사실, 초등학교 부모는 초등학생처럼 생각하고, 중학생 부모는 중학생처럼 생각한다는 우리 가족의 이론도 그와 유사한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시인의 강의는 교사를 대상으로 학생의 글쓰기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므로 나에게 직접적 깨우침을 주는 내용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글 쓰는 기본자세에 관한 이야기만큼은 크게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시인은 사람이 말로 표현하고, 그 표현을 듣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시를 경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앞에서 잠시 이야기했지만, 시인의 시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화장하듯 예쁘게 단장한 시라고 해서 뛰어난 시가 아니라는 부분은 정말 내 속을 들여다보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아서 너무 반갑게 느껴졌다. 그저 보고 대상이 새롭게 보이면 그것이 사랑이다. 그 사랑을 글로 쓰면 시가 된다. 무엇이든 보고 느끼고 쓰다 보면, 어느새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렇게 시를 쓰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문학관을 다니며 시인의 시를 읽어 보면 시인이 그리는 광경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데, 왜 이름난 공모전이나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으면 속이 답답해지는 걸까? 도무지 이게 무슨 시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걸까? 시가 만인을 위한 시가 아니고, 멋진 심사평을 쓰고 싶어 하는 심사위원의 권위 유지를 위한 도구인 것인가?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강연은 끝났고 선생님들은 시인과 기념사진도 찍고 그러느라 분주해 보였다. 사실 우리도 이곳을 찾은 목적은 어느 정도 이룬 셈이므로 그냥 떠나도 되지만, 그래도 시인께 인사는 드리고 싶어서 잠시 옆으로 비켜서 주춤거리고 서 있었다. 물론 선생님들이 다 떠난 후 작은 학교 사진도 한 장 찍을 생각도 있었기에 더욱 일찍 돌아설 수 없었다. 십여 분이 지나자, 선생님들은 모두 타고 온 버스 쪽으로 내려가고 우리 부부와 시인만 남았다. 나는 옆으로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뭐라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죄송하다. 본의 아니게 몰래 도강(盜講)했다는 식으로 말을 건넸다. 시인이 강연 내내 우리 부부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사는 하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의 마지막을 어이없게 끝냈다.
시인은 의아한 얼굴로 우리가 누구냐는 듯 그냥 형식적으로만 인사를 하더니 휘적휘적 살림집 방향으로 발을 돌렸다. 아마 우리가 미리 섭외하고 강연료를 지불하지 않은 불청객이라 그랬을까? 에이 설마 연세가 내일 모래면 팔순인 어르신이 그런 생각을 하실 리가 없을 것인데, 왜 이렇게 서먹한 분위기인지 모르겠다는 서운함이 울컥 솟았지만, 그냥 시인의 뒷모습이 사라진 작은 학교의 정면 사진을 한 장 찍고는 우리도 서둘러서 그곳을 떠났다. 그저 아픈 무릎을 끌고 시인의 강의를 한 시간도 넘게 듣게 한 내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섬진강을 떠나는 내 차의 차창 앞으로 무섭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니, 그 비는 차창을 두드린 것이 아니라 내 가슴을 두드린 것이다. 빗줄기가 강타한 가슴이 순간 저릿하게 느껴졌다. 흐트러진 시야를 부여잡느라 정면을 응시하며 예약한 전주의 호텔로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