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간헐적으로 금주를 한다. 물론 금주의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역시 건강 문제겠지만, 작년처럼 술 마셔서 찐 살을 빼기 위해서 기간을 정하고 금주하기도 한다. 나중에 다시 찌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살이 찌고 몸이 무거워지는 증세는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먼저 느끼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밖에서 일할 때, 거실이나 방바닥에 앉았다 일어날 때, 양말을 신거나 발톱을 깎을 때 등 보통의 일상생활에서 살이 찐 것과 조금이라도 살이 빠져서 가벼워진 것과는 차이가 크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체중을 관리해 주어야 한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작년에 기껏 몇 킬로(한 자리 숫자) 감량하고는 일 년을 못 가서 다시 금주 이전의 몸무게로 회귀했다. 이유는 물론 술 때문이다. 특히 저녁에 마시는 술은 곧바로 살로 가므로, 술이 마시고 싶으면 낮술을 먹기도 하는 등 별 편법을 다 동원해서 술을 마셨지만, 아예 금주하느니만 못했다. 그렇게 쌓인 몸무게가 이제 나의 통제를 벗어났다.
그런 데다가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혹시 부부 체중의 합에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해 본다. 내 체중이 줄면 아내 체중이 늘고, 반대로 아내 체중이 줄면 내 체중이 느는 것 같은 증상 말이다. 이런 궤변을 왜 입에 올리는가 하면, 아내는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해서 살도 많이 빠졌는데, 나는 혹시 그 살이 죄다 나에게로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가 살이 많이 빠지는 것을 기대하면서도, 그 살 때문에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 자리 몸무게를 경험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걱정도 해 본다.
우리 집에는 술이 마를 날이 없다. 일단 소주는 박스로 사놓고 마신다. 다 마시고 나면 빈 병은 장 보러 가서 돈으로 바꾼다. 가족 중 누구든 비행기를 탈 기회가 있으면 기내 면세점에서 양주도 사서 차곡차곡 저장해 둔다. 간혹 선물용 와인도 들어오면 잘 보관해 둔다. 한동안 내가 고량주에 맛을 들였을 때는 연태고량주도 무지하게 마셨다. 냉장고 문을 열면 문 안쪽에 술병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냥 마시고 싶으면 꺼내서 마시면 된다. 이러니 금주가 쉽겠는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가 담배는 단칼에 금연했지만, 술은 금주가 안 된다. 그래서 가끔 간헐적으로 금주를 하는 척이라도 해 보는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일단 금주한다고 말을 내뱉으면 서너 달은 간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면, 이제 슬슬 금주할 때가 되어 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몸무게도 몸무게지만, 주독에 만성 피로가 따라오는 것 같다. 그래서 대문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1박스에서 모자라는 빈 병 2개를 채울 때까지만 마시고 당분간은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 빈 병 옆의 박스에 든 것은 아직 따지 않은 새 술인데, 그 술은 이번 간헐적 금주가 끝난 후에 마시기로 하겠다.
아, 이제 두 번 남았다. 아니지 한 번에 두 병 마시면 한 번 남은 셈이다. 오늘 아내가 며칠 전에 냉동실에서 냉장실로 옮겨 놓은 갈비를 구워 먹겠다고 했는데, 고기 한 점 먹다가 술을 마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