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원고료라면 원고료가 아니겠는가?
“집주인은 반씩 부담할 용의는 있다고 하네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래요? 그러면 그냥 저도 좋다고 전해주세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공인중개사와 나 사이의 대화이다. 그리고 뜬금없이 무슨 이야기냐고 하면, 중개수수료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난 5월에 우리 집에 전세로 살고 있는 세입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7월 말쯤 이사를 나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야 물론 계약기간이 다 되어서 나가겠다고 하는데, 내가 뭐라고 할 일은 아니었다. 그저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고 우리가 들어가서 살면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중개수수료는 또 무엇이란 말인지 궁금해하는 작가님들이 분명히 계실 것이다. 이야기의 내막은 이렇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서 이사를 나가겠다고 공인중개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했을 때, 공인중개사는 우리가 계약기간을 채우지 않고 나가는 것이므로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올 때 집주인이 부담해야 하는 중개수수료를 우리가 대신 물어내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말도 맞는 말이겠지만,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계약기간 종료일로부터 기껏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을 채우지 못한 것(우리 계약기간은 10월 27일까지인데, 새로 이사를 올 사람은 9월 30일에 이사를 오고 싶다는 것이므로 우리가 계약기간에서 27일을 미처 채우지 않고 나가는 셈이 된다)인데, 중개수수료를 물어내라는 것은 조금 야박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인중개사에게 집주인 측에 중개수수료를 우리에게 물어내라고 하지 말고 그냥 부담해 줄 수는 없겠냐고 의사 타진을 부탁했었는데, 거기에 대한 집주인의 회신이 요지부동이었다. 하루를 못 채워도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자기가 부담해야 하는 중개수수료를 우리가 내라는 것이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는 은근히 부아가 올랐다. 사람 사는 세상에 모든 일이 법과 원칙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감정싸움으로 중개수수료를 부담하기 싫다면서 계약기간을 채우고 나가겠다고 하면, 그나마 9월 30일에 들어오겠다는 세입자도 놓칠 텐데, 그리고 10월 27일 우리가 나갈 때에 맞추어 들어올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집주인은 집을 비워 두고 월세도 받지 못한 채 관리비만 물고 있어야 하는 처량한 처지가 될 텐데, 그걸 그렇게 어차피 27일 후에 지출할 중개수수료를 아껴가면서까지 지금 들어오겠다는 세입자와 계약하지 않겠다고 뻗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내가 직접 집주인에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말로 하려다 보면 말이 꼬일 수도 있고, 감정적으로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을 것 같기에 글로 내 뜻을 전하기로 하고 글을 썼다. 그런 내면에는 그렇지 않아도 글 쓰는 일이 취미인 사람인데, 이 정도 설득력 있는 글도 쓰지 못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래는 그렇게 내가 써서 보낸 글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버님 소유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입니다. 이렇게 글로 먼저 인사를 드립니다. 이유는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가 퇴거할 때 발생하게 될 중개수수료 문제입니다. 일단 법률적으로는 계약기간 종료 이전에 나가는 것이므로, 우리가 집주인이 지급해야 하는 중개수수료를 대신 지급해야 한다는 말씀에 이의는 없습니다. 다만, 현재 상황을 잠시 말씀드리고 난 후 집주인의 배려를 구하고자 글을 씁니다.
먼저 갑작스럽게 집을 구하던 2년 전의 우리에게 지낸 곳을 마련해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그동안 편하게 잘 살다가 나간다는 말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알고 계신 바와 같이 저희는 10월 27일까지 거주하도록 계약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저의 집(제 소유의 집이 있으며, 현재는 세입자가 살고 있습니다.)에 살고 있는 세입자가 일찍 나가겠다고 통보하는 바람에 저희도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OO부동산에 문의한 결과 아무리 늦어도 석 달 정도 전에는 집을 내놔야 후임 세입자를 구할 수 있다고 하길래 5월 중순쯤 세입자를 구해 달라고 의뢰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월세 시장도 그다지 좋지는 않은지라 세입자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계약이 가능한 세입자 후보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이사 가능 시기가 맞지 않아서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으려는 기미가 보였습니다. 저희는 8월 1일부터는 언제든지 이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들어오려는 사람은 아무리 빨라도 9월 말은 되어야 이사를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치 제가 이 집에 들어올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죠. 집은 8월 7일에 비워지는데 우리는 10월 27일이나 되어야 이사를 올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버님과 협의해서 제가 1개월분의 임차료와 관리비를 부담하겠다는 조건으로(아버지께서 2달이나 집을 비울 수 없다고 하셨지만, 사실 그 당시에 이 집을 보러 온 사람도 저 말고는 없었습니다.) 집을 계약할 수 있었고, 실제 제가 이사 오기도 전부터 살지도 않는 집에 대한 임차료와 관리비를 부담했습니다. 저도 유쾌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그런 조건이 아니면 저와 계약하지 않겠다고 강경하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사정이 급한 제가 물러선 것입니다. 결국 제가 올해 9월 말까지 임차료를 지급하면 실제로는 24개월분의 임차료를 지급하는 셈이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저희는 일찍 나가고 싶었고, 대신 들어오는 사람은 날짜가 정해져 있었죠. 그렇다면 집에 세입자가 없이 월세를 받지 못하고 놀리지 않으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들어오는 사람의 사정을 제가 고려하여 조건을 맞추어 주고 나가는 방법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제가 저의 집을 비워두고 이 집에서 10월 27일까지 살다가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그래서 새로 오실 분이 9월 30일에 오고 싶은데, 간단하게 집 청소와 정리를 좀 할 수 있도록 이 삼 일은 시간을 줄 수 있냐고 저에게 물었을 때도 저는 흔쾌하게 제가 9월 26일에 나가겠다고 양보했습니다. 물론 임차보증금도 26일이 아닌 그분들이 들어오는 30일에 받겠다고 했고요. 그렇게 함으로써 저희는 불필요하게 두 달 가까이 이 집에서 더 살게 되지만, 집주인 입장에서는 임대료를 받지 않고 집을 비워두는 일 없이 임차인을 교체할 수 있게 된 겁입니다. 그렇지만 구두로 약속하고 난 후에 잠깐 후회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배려해도 집주인의 중개수수료를 대신 물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임차보증금을 돌려받지 않고 미리 나가기까지 하는데, 중개수수료를 물어내려니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동산을 통해 집주인 측에 사정(계약기간에서 27일 일찍 나가게 된 )을 이야기하고, 중개수수료는 그냥 집주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하였습니다.
논지는 간단합니다. 만일 우리가 10월 27일에 계약기간을 채워 이사한다면 당연히 집주인이 중개수수료를 지급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 중개수수료를 27일 일찍 지급하신다고 생각해 주신다면 고맙겠다는 이야기였죠. 물론 말이 안 된다고 하실 수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일 제가 10월 27일에 나간 후, 11월이나 12월까지도 임차인이 들어오지 않을 경우, 집주인 측은 집을 비워둔 채 공연히 월세만 손해를 보지 않겠습니까? 가뜩이나 그렇지 않아도 요즘 월세 세입자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는데(이 말은 부동산 사장님의 견해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공연한 추측으로만 치부할 상황도 아닙니다. 정말 그런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죠. 그래서 이번에 임차인이 나타났을 때 놓치지 않고 계약한다면, 집주인이나 저나 서로 win-win 하는 상황이 되지 않겠는지요?
집주인은 중개수수료 손해를 이야기하실지 몰라도, 엄밀하게 그것은 손해는 아니잖아요? 제가 계약기간 전에 집을 나가지만 임대료가 공백 없이 이어지도록 후임 세입자를 구해 드렸다면, 전체적인 틀에서는 결코 손해는 아니잖습니까? 제가 나감과 동시에 10월 27일부터 다른 세입자가 들어온다면야 중개수수료 지급이 손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세상일이란 것이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불확실한 미래를 우려하기보다는 어차피 지급할 중개수수료를 27일 당겨서 지급하고 마음 편하게 계약을 이어가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저도 후임 세입자가 들어오시기 편하게 며칠 일찍 집을 비워드리면 마음이 편안할 것이고요. 그분은 제가 돈을 받기 전에는 나갈 수 없으니, 제가 나가는 날 들어오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걱정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날 흔쾌히 집을 먼저 비워드리겠다고 하니 정말 그렇게 해도 되겠냐고 다시 한번 되물으시더라고요. 물론 저에게도 정상적인 조건은 아니지만, 저도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기에 편의를 봐 드리기로 한 겁니다. 만일 끝까지 제가 중개수수료를 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 달 월세를 더 지급하는 한이 있더라도 10월 27일에 후임 세입자가 들어오건 말건 집주인에게 임차보증금을 받고 나가겠다고 했다면, 지금 계약하겠다고 한 분과는 계약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10월 27일에 맞추어 이사 올 사람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겠죠. 이사 올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집주인 돈으로 계약기간이 끝나서 나가는 저에게 임차보증금을 일단 돌려주셔야 할 것이고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법과 원칙을 따지면야 그럴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계약을 새로운 세입자에게로 바꿔 가는 것도 나름 괜찮은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생각에 집주인의 너그러운 양해와 배려를 요청해 봅니다. 서로 배려해 준다는 의미로 중개수수료는 그냥 집주인께서 부담해 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도 9월 26일에 홀가분하게 이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후, 내가 받은 회신이 바로 위의 절반은 집주인이 부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그냥 글 한 편 써서 중개수수료 절반을 벌었지 않은가? 물론 미미한 금액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글 써서 번 돈이므로, 그 금액도 어찌 보면 원고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이건 너무 억지인가? 그래도 변변한 원고료도 받아 본 적 없는 무명작가 처지에 그 돈이라도 원고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하하……
이제 다음 주에 이번에는 딸까지 데리고 2박 3일로 문학관 나들이 겸 드라이브를 다녀오려 하는데, 그 원고료 덕분에 기름값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므로 나들이하는 발길이 한결 가벼울 듯하다. 역시 글은 쓰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