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보기는 덤
어제 저녁에 쓰다가 만 글을 오늘 마저 완결해서 올린다.
이제 집에 도착해서 짐 풀고, 씻고, 빨래 돌리고 술안주 만드는 사이에 잠시 시간을 내서 2박 3일의 여정을 정리하고 있다. 지난번에 말했듯이 아내와 딸과 함께 문학관 순방 겸 지방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이번 나들이의 우리 셋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이 글은 나들이 경로를 따른 개괄적인 이야기를 기술할 뿐이고, 개별 문학관 방문기는 ‘나의 문학관 나들이’ 매거진에 별도로 기록을 남길 것이다.
이번에는 혹시 모를 갑작스러운 휴관에 대비하여 문학관 여섯 군데를 모두 전화로 확인한 후 집을 나섰다. 특히 첫 번째 목적지인 고하문학관은 지난번에도 정보 미숙으로 관람하지 못한 채 돌아왔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을 피해 방문하느라고 일부러 집에서 계획보다 일찍 출발했다. 문학관을 둘러보았지만, 일반 관람객이 볼 수 있는 공간은 1층뿐이었다. 솔직히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최승범 시인의 장서였는데, 2층은 일반 관람객이 관람할 수 없도록 관람이 제한되어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마침 내가 전화로 통화했던 직원이 혼자 계셨다. 서울에서 일부러 내려온 사정을 이야기하고 2층의 서가를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잠시 망설이던 직원은 우리를 2층으로 안내하였다.
2층 서가(서가를 보았을 때의 경외감은 따로 기록을 남길 것임)까지 돌아본 우리는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문학관을 나서서 다음 목적지인 혼불 문학관으로 향했다. 고하문학관을 나온 우리는 지난번에 묵었던 한식 호텔인 ‘왕의 지밀’ 카페에서 간단하게 음료를 한 잔씩 하면서 혼불문학관에 확인 전화를 했다. 점심시간에 걸릴 것도 같기에 미리 확인차 전화한 것인데, 의도치 않게 해설사 해설을 예약한 셈이 되어 버렸다. 약속 시간에 맞추어 문학관에 도착해서 해설사 선생님의 해설을 들었다. 원래 최명희 작가의 문학관은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문학관을 찾았다가 헛걸음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 혼불문학관에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 정말 기대 이상으로 설명도 잘 듣고 좋은 명당의 地氣도 흠뻑 받았다. 나오는 길에는 들어갈 때 보았던, 미스터 선샤인을 촬영했다는 구 서도역 영상촬영지를 돌아보았다.
그 길로 남원으로 향했다. 중간에 광한루에도 올라 보고, 딸은 춘향이 그네도 타 보고 하면서 시간을 보낸 후,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첫날 문학관을 두 곳 다녀왔으므로 이번 여행은 지금까지의 1박 여행에 비해 한결 여유로운 여행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첫날을 보낸 우리는 간소하게 호텔 방에서 캔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잠이 들었다.
이틀째 아침이 밝았다. 호텔을 나온 우리는 곧장 박경리문학관으로 출발했다. 이번 나들이는 중간의 각 목적지 사이 소요 시간이 1시간 내외가 되도록 경로를 잡았던 까닭에 운전하는 데에도 피곤함은 느낄 수 없었다. 남원을 떠나 하동에 들어서는 길은 섬진강 강가를 따라 내려오는 길이었는데, 고요하다는 말이 어울릴 만한 강물의 흐름이 마음을 한결 편안하고 여유롭게 만들어 주었다. 도중에 ‘경관 좋은 곳’이라는 안내문이 나오면 차에서 내려 강을 바라보는 여유도 즐기면서 1시간여 만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목적지 초입부터 예상치 못한 난관이 닥쳤다. 지도상으로 봐서는 지형의 높낮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정작 도착하고 보니 차가 올라갈 수 있을까 싶은 고갯길이었고, 그 고갯길 끝에 문학관이 있었다. 가뜩이나 무릎이 성치 못한 아내는 무릎에 통증 완화용으로 파스까지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는데 문학관까지 가는 일은 요원한 일처럼 보였다. 그런 데다가 언덕 골목길은 좁아서 차를 돌릴만한 곳은 없었고, 정말 진퇴양난이란 말이 어울리는 골목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하든 문학관 가까이 가겠다고 골목을 돌아 돌아 올랐는데, 결국 문학관을 100미터 정도 남기고 길을 막아선 공사 차량 때문에 엉겁결에 길옆에 있는 작은 식당 앞 공간에 차를 주차했다. 아내와 딸을 차에 남겨 두고 나는 언덕을 끝까지 올랐다. 문학관 내부를 돌아보고 사진도 찍고 내려오니 아내와 딸은 식당 안에 들어가 있었다. 차를 주차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뭘 하나 팔아주고 가려는 마음이었으리라. 그렇게 식당에서 부추파전에 막걸리를 주문해서 아내와 딸이 한잔씩 했고(나는 운전 중이라 금주) 검은 콩국수도 먹었다. 딸은 너무 맛있다면서 앞으로는 콩국수 하면 그 식당의 콩국수만 떠오를 것 같다고 하면서 즐거워했다.
아내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계획대로 강진의 태백산맥문학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태백산맥문학관은 지금까지 본 문학관 중에 외관의 위용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규모였고, 전시실 안의 전시물 또한 완벽하게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내용에 특화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리랑문학관에서도 느꼈지만, 전시실을 돌아보다 보니 조정래라는 작가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다가왔다. 물론 그런 느낌은 분량이 긴 대하소설을 집필한 김홍신이나 김주영, 박경리나 최명희 작가에게도 느꼈는데 도대체 어떤 집념이 있어야 그렇게 긴 소설의 기획과 자료 취재 및 집필 기간을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경외심마저 일었다. 내려오는 길에 조정래 작가가 가끔 들린다는, 조정래 작가의 친필 사인이 걸린 베이커리 카페에서 시원한 차를 한잔씩 마시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박경리문학관과 태백산맥문학관을 돌아보았으니 둘째 날의 일정도 끝났지만, 문학관과는 관련이 없는 목적지가 한 군데 더 남았다. 딸이 아주 어릴 때 다녀왔던 보성의 차밭이었는데, 그곳을 목적지에 넣은 까닭은 그곳에 있는 리조트에 숙박을 예약했기 때문이고, 숙소를 그곳에 정한 이유는 숙소 바로 아래에 있는 보성천문과학관 때문이었다. 천문망원경으로 별과 달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딸에게 이번 여행에 동참해 준 고마움을 보상해 주기 위한 코스였던 셈이다. 지난번 강화의 천문과학관에 갔을 때 날이 흐려 제대로 관측하지 못했던 아쉬움도 있었던지라 딸도 이번 나들이 경로에 대만족이었다. 천문과학관에서 달을 보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어제 사둔 캔맥주를 마저 해치우고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았다. 2박 3일이 생각보다 짧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나름 알찬 일정에 우리는 모두 만족하면서 마지막 일정을 위해 광주로 차를 몰았다. 광주에서는 2년 전 새로 단장한 광주문학관에 들러, 삼한시대 이래 광주는 물론 호남의 문학을 시대별로 정리한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입구에는 한강 작가의 사진 좌우로 작가의 책을 꺼내볼 수 있는 서가가 우리를 반겼다. 전시실을 나와 1층의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면서 주인에게 점심을 해결할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추천한다는 식당이 마침 우리가 가려던 한국가사문학관으로 가는 길가에 있기에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한국가사문학관까지 돌아본 우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곧바로 집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시간이 남았다고 공연히 중간에 어중간한 곳을 골라 구경한답시고 들렀다가는 깜깜한 밤이 되어야 집에 도착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까지는 3시간 반 거리이므로 도중에 아무리 차가 막힌다고 해도 4시간 정도 후면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짐 정리하고 씻고 빨래하고 건조기 돌리고 할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2박 3일의 나들이는 끝났다. 이제 정말 문학관 나들이는 끝났고, 아마 한동안 쉬었다가 미술관이나 박물관 나들이 계획을 짤 것이다. 그때에도 아내는 물론이고 시간이 되면 딸도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문학관 나들이에 들렸던 문학관 이야기는 각각의 문학관 별로 정리하는 대로 이곳 나의 문학관 나들이 매거진에 올릴 것이다. 이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써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