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괜찮은 듯 보였던 어금니가 갑자기 찬물이 닿을 때마다 시리기 시작했다. 원래 앞니를 임플란트로 교체할 때부터 발치를 권고받았지만, 한꺼번에 두 개씩 공사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잠시 미루어 두고 있었던 이빨이었다. 그랬던 어금니가 기어코 사달이 난 모양이다.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치과 예약을 해 두라고 한 것이 엊그제였다. 육 개월 동안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발치를 기다리는 이틀 동안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이러니 앓느니 죽지라는 말이 나왔겠지?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무슨 일이든 집안일을 보거나 해서 잠시 늦게 일을 시작한다든지, 혹은 일을 하다가 시간에 맞춰 퇴근한다든지 하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잡힌 오더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 오더일지 미리 정해진 것도 아니고, 또한 그곳에 갔다가 빈 차로 올 수 없으니 다른 짐이라도 싣고 와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니 일단 일을 시작했다가 오후에 조금 일찍 퇴근하겠다고 한 날은 거의 외곽에서 빈 차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차라리 할 일을 하루에 몰아서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치과에 들리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이 없기에 오후에 시간을 정해 예약하고, 그저 시간에 맞춰서 집으로 올 수 있게 되기만 바라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오늘은 시간에 쫓겨 빈 차로 허겁지겁 퇴근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각에 집에 돌아와 잠시 쉬다가 치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데 아내가 운전석에 앉는다. 나는 습관처럼 내가 운전할 테니 아내에게 내리라고 했는데, 아내는 자기가 운전한단다. 아내가 운전석에 앉은 것이 오래전의 일이라 불안하긴 했지만, 그리도 몸으로 익힌 기술이고 차도 아내가 늘 운행하던 차인지라 그냥 아내를 믿고 조수석에 앉았다. “안전띠나 매.” 아내가 근엄하게 말한다. 아마 예전에 한창 운전할 때의 기억이 돌아오는 모양이다. 아내는 치과 건물의 좁은 주차장으로 단번에 휘리릭 잘만 들어간다. 직업이 운전인 나도 조심하며 들어가는 좁은 주차장인데, 아내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차를 세우고 치과로 올라가니 손님이 나 혼자였다. 의사는 일단 지난번에 시술한 임플란트 상태를 점검한 후 어금니 잇몸에 마취 주사를 놓고 잠시 자리를 비우며 말한다. “어금니 아래 염증이 많아서 마취를 조금 강하게 해야 하는데, 일단 마취약이 돌기를 기다렸다가 확인해 볼게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 처음부터 마취약을 조금 더 주사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무튼 시간이 다 되어 의사가 다시 내 자리로 와서 발치 준비를 하면서 또 똑같은 말을 한다. 나는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취 상태를 확인한 의사는 다짜고짜 이를 잡아 올렸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마취를 더 해야 할지 모른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으면서도 마취가 덜 된 상태에서 이를 뽑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내 비명에 의사는 민망한 듯 잠시 발치를 중단했는데, 그 사이에 마취약을 조금 더 흘려 넣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정신없는 발치를 끝내고 다음 방문 예약을 한 후에 치과를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아내가 운전석에 앉았다. 내가 아내에게 한동안 쉬었어도 운전을 잘한다고 칭찬했더니 우쭐해진 아내가 말한다. “나도 오랜만에 운전하면 조금은 어색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네? 아마 운전도 몸으로 익힌 기술이라서 그런 모양이야.” 자기가 생각해도 짧은 시간에 운전석에 다시 적응한 자신이 대견해 보였던 것 같았다.
이가 상해서 임플란트를 하긴 하지만, 나는 치과에 가는 일이 싫다. 왜 그런지 모른다. 진료 의자에 누워 의자가 뒤로 젖혀지는 순간부터 내 몸의 통제력을 잃는 것도 싫고, 입안에서 북적거리는 각종 의료기구가 내는 소리도 신경을 거스른다. 윙윙거리고 빠득거리고 그러다가 고막을 찢는 듯 긁어대는 날카로운 소리도 듣기 싫다. 더욱 싫은 것은 의자 위에 누워서 무기력한 내가 싫다. 그저 할 수 있는 행위라고는 의사나 간호사의 눈에 띄지 않게 맞잡은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힘을 주면서 버티는 일뿐이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맞잡은 손이 처음 위치인 배 위에서 가슴 위로 점점 올라간다. 어쩌면 그렇게 기를 써서 버티는 내 모습을 간호사나 의사가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역시 다른 병원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치과에서는 장사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다가 이제 일어나서 잠시 양치하고 다시 누우라는 말이 들리면 그제야 꽉 움켜쥐었던 손에서 맥이 풀린다.
이제 다시 길고 긴 임플란트 여정에 돌입했다. 사실 발치하고 잇몸과 뼈가 굳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임플란트 공정으로 인한 아무런 생활의 변화가 있을 것도 없는데도 공연히 환자 같은 기분이다. 멀쩡하게 술도 마시고 할 건 다 하는데도 말이다.
이제 다음 주에 실밥을 뽑고 나면 두 달 정도 지나서 다시 병원 예약이다. 그러면 실제 임플란트 시공은 아마 내년 초가 될 것인데, 내년에는 수가도 오르므로 비용이 조금 오를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아니, 애초에 육십오 세 이상 노인은 임플란트 두 개까지 무료라고 하더니 임플란트 종류에 따른 차액이니, 뼈이식이니 뭐니 해서 받는 비용이 칠십만 원 가까이 내야 한다. 솔직히 그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면 무료도 아니지 않은가? 이건 너무한 것 같다. 그래도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다. 그것이 바로 슬픈 일이다.
앞으로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더 이상 임플란트를 할 필요 없이 건강한 이를 잘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그렇지만 그 바람이 이루어질지는 나도 모른다.
대문 그림은 무료 이미지 사이트인 Freepik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