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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이 좋다.

by 정이흔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밤을 좋아한다.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의 손끝에서 튕겨 나오는 미약한 소리만이 적막한 고요를 흔들 뿐이다. 나는 그런 밤이 좋다. 낮 동안 종일 적색 소음에 시달린 내 귀가 하루의 할 일을 끝내고 휴식을 갖는 시간이다. 내가 밤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밤이 깨우는 나의 가슴속 기억을 차분하게 떠올릴 수 있어서이다. 주변이 소란스러운 시간에는 숨죽이고 있던 기억이, 주위가 조용해지면 슬며시 가슴속에서 머릿속으로 떠오른다. 그런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서 글의 성을 이루는, 그런 밤이 나는 좋다.


처음 글을 쓰던 때가 생각난다. 그저 쓰고 싶다는 욕구가 눈을 가리고, 머릿속 생각을 제대로 따라주지 못하던 손끝이 그저 안타까웠던 시절이다. 두서없이 중구난방 흩어진 기억의 조각을 모으는 일도, 그렇게 모은 조각을 얼기설기 기워서 글을 만드는 일도, 도무지 쉬운 일이라고는 없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글에도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글을 쓰는 사람은 비록 나이지만, 글이 글다워지는 것은 오롯이 글이 품고 있는 생명력이다. 어쩌면 생소할 수도 있는 시각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혹자는 그것을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글을 써 오면서 품은 확신은 글에 생명력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아주 소중한 생명력이다. 밤은 그런 생명력을 키우기에 최적의 시간대이다.


내가 생각하는 글은 실제 작가가 경험한 사실과 머릿속 상상의 절묘한 조합이다. 자신의 직접 경험이든 타인을 통한 간접경험이든 상관은 없다. 단지 터무니없는 허구의 기억이 아니기만 하면 된다.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현실성이다. 물론 현실성을 따지지 않는 글도 있다. 이른바 판타지 소설류의 글이 그 부류에 속한다. 그리고 그런 글은 나름의 고유 영역을 갖는다. 읽는 사람의 상상을 현실로 그려주는 것이 바로 그런 글의 세상이다. 그래서 세계관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두는 글의 세계와는 관련 없는 영역의 글이다. 나의 글은 오롯한 기억의 기반에 상상을, 그것도 마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상을 기억 속 적절한 장소에 숨김으로써 탄생시킨 결과물이다. 그런 기억과 상상의 절묘한 조합을 위해 기억과 상상력의 발현이 극대화하는 시간대에 글을 쓴다. 그 시간이 바로 밤이다.


침묵의 밤은 간혹 나에게 터무니없는 상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밤에는 사람이 낮보다 감성적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밤에 쓴 글을 아침에 다시 읽고 지워버리기도 수없이 반복한다. 밤에 숨 쉬고 있었던 글이, 날이 밝아서 숨이 끊어지는 경우이다. 그런 경우 글은 아무 미련 없이 폐기된다. 이미 끊어진 숨을 다시 되살리는 것은 새 글을 쓰고 그 글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보다 백배 천배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밤에 수많은 글을 쓰고, 아침에 대부분 글을 폐기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글을 쓴 밤을 보내고 맞이하는 다음 날 아침을 무사히 넘긴 글은 나만의 글 창고에 소중하게 보관된다.


한밤의 카페인 섭취는 잠을 쫓는다고 한다. 일부러 글을 쓰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연한 커피를 즐겨 마신다. 커피와 나의 잠은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 그저 습성일 뿐이다. 지금은 벌써 이십 년도 지난 이야기지만, 나에게 있어 커피는 오래전 지독한 애연가 시절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늘 끼워져 있던 담배와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왼손 가장 가까운 곳에 커피가 가득 담긴 잔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커피는 냉커피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커다란 컵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물을 받은 후 커피숍에서 사 온 커피를 몇 방울 떨어트린다. 그러면 컵 안의 물은 커피라기보다는 오히려 숭늉처럼 연한 갈색의 정체 모를 액체로 변하는데, 그래도 나는 그 액체를 커피라고 부른다. 나의 한밤을 함께 지키는 동반자이다.


저녁 늦게 글을 쓰기 시작해서 어떤 날은 새벽이 밝아오면 잠자리에 드는 일도 있다. 주로 휴일 전날 저녁이 그렇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고 해서 쓰는 글의 분량도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파기하는 글만 늘어날 경우가 더 많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작업은 마치 자갈이 끝없이 깔린 몽돌해변에서 완벽한 구(球) 형태의 자갈을 찾아내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그 많은 다양한 자갈 속에서 빛나는 구슬 같은 돌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수백 수천 평, 아니 어쩌면 수만 평의 해변에서 과연 단 한 개라도 그런 구(球)를 찾을 수 있을까? 밤에 글을 쓰는 일은 밤을 새워 몽돌해변을 헤매는 일이다. 해변의 모든 자갈을 들어내는 일이 있더라도 원하는 돌을 찾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밤을 새울 것이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내가 찾은 돌을 자랑스럽게 주위 사람에게 보여주며 소리칠 것이다. 정말 예쁜 돌이 아니겠냐고. 그리고 앞을 다투어서 그 돌을 들여다보며 정말 예쁜 돌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음을 즐기고 싶다.


이제 이른 시간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창밖은 환해졌지만, 여전히 집안 공기는 적막이다. 오늘이 휴일인 까닭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어제저녁부터 찾아온 돌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는다. 오늘만 날이 아니므로, 언젠가는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계속 자갈 속에서 헤맬 것이다. 이제 방 밖으로 나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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