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권 장서(藏書)가 주는 경외심

아름다운 우리말과 우리 책을 사랑한 고하 최승범 시인

by 정이흔

사람마다 여유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나 같은 경우는 글 쓰기와 그림 그리기가 가장 선호하는 취미였는데, 글쓰기를 시작하고부터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바로 아내와 함께 나서는 문학관 탐방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내가 어느 한 직장에 매인 처지가 아닌, 비교적 운신이 자유로운 개인용달이라는 운수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런 취미를 즐기는 데에 한몫 거들었기도 한다. 그렇게 시작한 문학관 나들이가 오늘로 2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으며, 문학관 수로는 마흔한 곳에 이른다. 오늘 찾은 문학관은 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는 고하문학관이다.



고하문학관은 오늘이 두 번째 방문이다. 일반적으로 문학관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관람이 가능한 대신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그렇지만 고하문학관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관람이 가능하다.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은 휴관이다. 고하 최승범 시인 생전에는 시인이 직접 공간을 지키고 계셨으나, 돌아가신 후 전주시 도서관에서 공간을 리모델링한 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리모델링 한 공간은 1층뿐이고 2층의 서가는 예전 그대로이다. 그런 이유로 지난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토요일에 방문했다가 헛걸음하고 이번에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이다. 혹시라도 고하문학관을 다녀올 계획이 있는 분은 참고하기를 바란다.



사람이 문학관을 찾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해당 문학관의 문인들과 그들의 문학 세계를 접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문인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쉽게 얻을 수 있으며, 그 문인의 작품 세계는 문인이 쓴 시나 소설, 수필집 등 다양한 저서를 읽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또한 문인의 문학 세계에 관한 다양한 평론도 문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방법 이외에도 문인과 그의 문학 세계에 다가가는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이 바로 문학관을 찾는 방법이다.



사실 나는 문학관을 찾으며 거창한 문학적 보람이나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문인들께는 죄송스럽지만, 어쩌면 문학관을 찾는 과정을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핑계를 문학관이 제공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면에서 문학관을 찾는 의의를 구하고 있다. 범인의 일상과 뛰어난 문인의 문학 세계가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런 문학관 나들이가 더욱이 아내와 함께라니 더욱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부가 같은 취미를 누린다는 것은 인생 동반자 사이의 가장 바람직한 생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부가 서로를 귀찮아해서 따로 시간을 갖기도 한다고는 하지만, 나와 아내의 경우에는 그와 정반대이다. 무엇을 하든지 서로를 그냥 놔두지 않고 끌어들인다. 같이 활동하면서 공감대를 느끼고,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겪는다. 일종의 부부간 금실을 굳게 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관 1층은 여느 다른 문학관과 차이가 없었다. 정 가운데 흉상이 있고, 벽면을 빙 둘러 간략하게 시인의 문학 세계를 보여주는 해설이 자리하고 있다. 시인은 한시도 즐기고 수필과 현대 시도 즐긴 문인이다. 저명한 시조 시인인 가람 이병기 님의 제자였으며, 대학에서는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셨던 교육자였다. 이런 간단한 소개는 나도 인터넷을 통해 알고 갔지만, 정작 문학관에서 놀란 점은 시인이 누구보다도 우리말을 사랑한 문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찾았던 문인 중에 소설가 김유정이 우리말을 사랑한 대표적 문인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최승범 시인 또한 그에 못지않은 우리말 사랑을 보여주었다고 하니, 시인의 모습이 다시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전시실 한쪽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임시 기물로 출입이 제한된 상태였다.



나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십 곳의 문학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양한 문인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문인들과는 색다른 새로운 문인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이곳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바로 최승범 시인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하는 수만 권의 장서가 보고 싶었다. 물론 혹자는 문인이 직접 저술하지도 않은 책을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앞에서 문학관을 찾아 얻는 것보다는 문학관을 찾는 행위 자체에서 얻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했던 것처럼, 문인이 소장하고 있는 서책을 봄으로써 문인의 글과 책에 대한 애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든지 출입이 제한된 2층의 자료실에 올라가 보고 싶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사무실을 기웃거려 보니, 다행히도 안에 근무자가 있었다. 인사를 나누는 목소리를 들어 보았더니 귀에 익었다. 내가 전화로 문의했을 때 통화한 상대방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온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2층에 올라가 보고 싶다고 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분은 앞서서 2층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자료실이라고 쓰인 2층 출입문을 여는 순간 우리 앞에 펼쳐진 광경은 단순한 말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간격으로 서가 양쪽에 빽빽하게 꽂힌 책의 모습을 보는 순간 선뜻한 경외심마저 들 정도였다. 근무자의 설명으로는 그나마 얼마 전에 만여 권의 서적을 파기하고 남은 서적이 그 정도라고 했다. 각종 시집과 소설집, 문예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역사서와 고서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승정원 일기와 같은 서책은 또 왜 그곳에 있는 것인지? 도무지 시인의 마음을 쉽게 들여다 볼 수 없었다. 한동안 우리는 서가 사이를 돌아다녔다. 감탄은 또 다른 감탄을 불렀고, 손과 발은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방향을 찾지 못했다.



고하 최승범 시인의 글을 제대로 접한 적이 없던 나는 순간 글을 읽지 않았어도 시인의 문학 세계에 다가갈 수 있겠다는 조금은 건방진 생각을 떠올렸다. 최승범 시인은 그냥 시인이 아니었다. 1층에서 본 우리말 사랑과 2층에서 본 우리 책 사랑을 접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시인의 시를 읽을 마음의 준비는 된 것 같았다. 이런 점이 문학관을 찾는 보람이다. 나는 그래서 문학관을 찾기 전에 해당 문인에 대하여 사전 조사 형식의 정보 검색을 전혀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시인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가 문득 이제는 우리가 서고에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래로 내려와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혹시라도 문학관 소개 리플릿이라도 있을까 싶어서였는데, 뜻밖에 근무자가 너무 소중한 선물을 내밀었다. 책상 위에 있던 서적을 몇 권 보여주면서 먼 곳에서 왔으니, 책 한 권을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염치 불고 시집 두 권을 골라 어느 시집이 좋겠냐고 근무자께 되물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두 권 모두 갖고 싶었지만 말이다. 그랬더니 눈치 빠른 근무자가 그냥 두 권을 모두 주면서 웃으며 갖고 가라고 하셨다. 시선집 '화사'와 스물두 번째 시집 '자투리'이다. 갑자기 오영수 문학관 근무자가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오영수 단편소설집 세 권을 받아오지 않았던가?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문학관을 찾는 또 다른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리는 문학관을 나와 다음 목적지인 남원의 혼불문학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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