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에서 팔당까지 ‘화덕피자’를 찾아서

by 정이흔

어제는 저녁 식사를 호텔 근처의 횟집 회와 소주로 대신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아내도 맥주 한 병을 다 마셨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서 냉장고 안의 무료로 제공되는 캔맥주까지 깨끗하게 해치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느긋하게 일어나서 집으로 출발하려다가 계획을 바꾸었다. 가는 길에 백담사에 올라 그곳에 있는 만해기념관도 둘러보기로 했다. 만해와 관련한 기념관은 이미 남한산성과 홍성에 있는 두 곳을 다녀왔지만, 강원도에 온 김에 백담사 만해기념관까지 돌아보면 좋을 것 같았는데, 나나 아내도 백담사에는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가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정리를 하고 호텔을 나섰다. 원래 아침을 호텔에서 먹을까도 생각했다가, 그냥 백담사 가는 길에 순두부 음식점이 있으면 그곳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차를 속초 방향으로 몰았다. 가는 길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식당을 한 곳 정했다. 만일 검색해서 적당한 곳이 없다면 그냥 미시령 터널을 지나 용대리 황태해장국을 먹으려고 생각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미시령 터널 바로 전에 순두부 마을이 있기에 그곳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백담사로 향했다.



백담사가 초행인지라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백담사를 왕래하는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막상 버스에 올라 백담사로 향하다 보니 방문객이 자차로 오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백담사로 향하는 길은 왕복 1차로 길인 것뿐 아니라 그 길조차 구비가 심해서 버스 기사처럼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수월하게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다. 버스 기사들은 서로 무전으로 교신하면서 상행과 하행 버스가 충돌하지 않도록 정말 기가 막히게 운전하며 산길을 오르내렸다. 나 역시 대형 면허 소지자인데도 그런 길을 버스로 운행하라고 한다면 못 할 것 같았다. 구불거리는 것도 그렇지만 내리막 오르막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정말 생활의 달인이 따로 없었다.



백담사 주차장에서 백담사 입구로 올라가는 길은 다행스럽게 경사로가 있었다. 벌써 며칠째 무릎이 불편해서 치료받고 있는 아내로서는 계단은 정말 치명적이기 때문이었다. 경사로를 올라 백담사 쪽을 바라보다가 속으로 감탄의 탄성을 질렀다. 수심교 좌우로 개울가 자갈밭에는 수많은 작은 석탑이 있었는데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한편으로는 사람마다 무슨 기원할 일이 그렇게 많아서 석탑을 층층 쌓았는지 정말 알고 싶었다. 그곳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는 다리를 건너 금강문 앞에 도착했다.



금강문을 들어선 아내가 물었다. “그런데 만해기념관은 어딘데?” 아내의 말에 오른쪽을 바라보며 “저 건물인데…” 하고 말하려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전각을 둘러싼 공사 가림막이었다. 그 옆에는 만해의 흉상과 시비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확인하지 않고 오긴 했지만, 이럴 수가 있는가? 지난번 나들이에도 확인하지 않고 가는 바람에 두 곳이나 휴관 때문에 방문하지 못하고 돌아서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공사 중이라니. 하지만 유물 수장 시설 확충공사로 인해 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마도 이미 만해기념관은 두 곳이나 들렀으므로 이곳의 기념관은 그냥 내려가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잠시 물끄러미 ‘나룻배와 행인’ 시비를 바라보다가 발을 돌려 극락보전을 시작으로 관람객에게 허용된 시설만이라도 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발을 돌려 극락보전을 보고 찻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잡은 것은 그곳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詩碑)였다. 김시습이라면 바로 어제 기념관을 돌아보지 않았던가? 하긴 세상을 방랑하며 떠돌던 김시습인데 백담사에도 들른 적이 있겠지. 하며 천천히 시비의 시를 읽어 보았다. “~ 올해는 이 절에서 지낸다지만 다음 해는 어느 산 향해 떠나갈꺼나~”하는 구절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열아홉 나이에 단종의 양위 사실을 듣고는 책을 불사르고 방랑길에 오른 이래 무량사에서 5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어디 한 군데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한 김시습이었다. 그런 김시습의 모습을 떠올리다 보니 공연히 숙연해짐을 느꼈다.



해우소에서 어젯밤 쌓은 수심을 내려놓고는 낮은 다리를 건너 만해의 ‘님의 침묵’ 시비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하산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아주 간단하게 백담사 기행을 마쳤다. 만해기념관 공사가 내년 4월까지라니까, 그 후에 개관 여부를 확인한 다음 한 번쯤 다시 올 기회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백담사를 내려왔다.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적당한 곳이 있으면 점심을 먹고 가자고 했는데, 그 시점에 아내가 갑자기 화덕피자 이야기를 꺼냈다. 먹고 싶다는 거다. 아내가 그렇게 말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웅얼거릴 것이다. 먹고 싶다고…, 먹고 싶다고. 그래서 결국은 피자집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일단 인터넷으로 양수리 근처에서 화덕피자를 먹을 수 있는 집을 검색했다. 어차피 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 정도에서 잠시 쉬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양수리까지는 대략 두 시간 거리, 그런데 그 시각이면 혹시 브레이크타임이 아닌가? 어제 ‘수리골 추어탕’ 브레이크타임 사건이 갑자기 무슨 데자뷔처럼 생각에 겹쳐 올랐다. 아내에게 브레이크타임을 확인하라고 했더니 다행스럽게 평일만 브레이크타임이 있고 주말이나 주일은 없다는 거다. 하긴 그렇지. 사람이 많이 몰리는 주말까지 브레이크타임을 둔다는 것은 조금 장사에 성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가 주차하는 사이에 아내가 먼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차를 세우고 나도 들어가려는데 아내가 다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설마 했는데 들어가 보니 정말 브레이크타임이었다. 인터넷 정보가 잘못된 것이다. 우울해진 아내를 달래러 내가 다시 검색해 보았다. 몇 군데 확인해 보니 다행스럽게 건너편 강가에 화덕피자를 하는 음식점이 있었다. 전화를 걸어 브레이크타임을 확인하자 “여긴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오시면 돼요.”라고 한다. 한결 기분이 좋아진 아내를 보며 안심이 된 나는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차를 음식점 주차장에 세우고 입구로 들어간 우리는 설마 했던 현실 앞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 그것도 층고가 높은 계단이었다. 아내는 무릎이 편치 않아서 무릎보호대까지 차고 있는데 계단이라니. 무릎이 아픈 사람은 들어오지도 말라는 말인가? 벌써 두 번이나 음식점에서 퇴짜를 맞은 아내는 이제 화덕피자의 미련을 접어야 하는가 보다 하면서 그냥 집으로 가자고 한다.



화덕피자를 잊고 그냥 한강 강가를 따라 내려오면서 강을 바라보는 자리에 있는 카페라면 어디든 들어가서 잠깐 쉬었다가 가기로 하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아내는 말이 없었지만, 삼십 년을 함께 산 내가 왜 아내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말은 포기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화덕피자에 미련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양수리에서 팔당으로 내려가면서 다시 검색했다. 그랬더니 뜻밖에 팔당역 부근에 평이 아주 좋은 화덕피자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음식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아내에게 말했더니 금방 얼굴이 환하게 핀다. 얼른 가자는 것이다. 음식점도 한옥을 개조한 곳인데 “한옥에서 화덕피자를.”이라는 광고 문구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아내는 다시 신이 났다. 어린아이 같았다. 금방 우울했다가 금방 환해졌다가, 아무튼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좁은 골목을 오르느라 신경이 쓰였지만, 무사히 음식점 앞이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ㅁ’ 字 형식의 한옥이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구조라서 나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 데다가 피자는 왜 그렇게 맛이 있던지. 그냥 포기하고 갔으면 정말 후회될 뻔했다. 피자를 배불리 먹은 아내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묻지 않아도 알만했다. 집에서 기다리는 딸이 생각나서이리라.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나들이에서 집에 들어갈 때부터 혹시 우리가 집에 들어와서 같이 저녁을 먹을 거면 미리 말해 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라도 저녁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직 집까지 한 시간 반이나 더 가야 한다는 것인데…,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피자를 한 판 사서 갖고 가기로 했다. 딸에게 저녁을 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더니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한다. 하긴 엄마 아빠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는 거의 먹을 것을 사서 갖고 들어가는 것이 거의 일상화된 일이었으므로 그럴 법도 했다. 차에 올라 피자를 에어컨 바람에 금방 식지 않도록 차의 화물칸에 실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덜 식겠지. 하면서….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국 화덕피자를 먹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캐리어 짐을 풀고, 씻고, 빨래를 돌리고 나니 딸은 피자를 혼자 여섯 조각 중에 네 조각이나 먹어 치우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딸이 모두 만족한 저녁이었으므로 말이다. 원래 문학관 나들이는 일단 여기에서 끝이었는데, 딸이 방학하면 한 번 더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는 이박 삼일로 아예 문학관만 숙제하듯 급하게 돌 것이 아니라 주변의 관광지도 같이 돌아보면서 느긋하게 다녀오기로 했다. 딸의 동의를 구할 일은 없다. 당연히 따라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일자와 장소만 결정하면 될 일이다. 마침 먼 남해안 방향으로 한 번은 더 다녀와야 문학관 나들이도 구색이 맞을 것 같기에 아주 그럴듯한 여름휴가가 될 것 같았다.



피곤한 마음에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마시고 잘까? 했는데, 그렇게 하면 삼 일을 연속 마시는 꼴이 된다는 아내의 만류를 받아들여서 그냥 자기로 했다. 하긴 내가 뭐 주태백도 아닌데 그렇게 연속 마실 일도 아니지 않은가. 쓰던 글이나 마저 쓰고 자려고 했는데 졸음이 쏟아져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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