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작가의 혼불문학관에서

by 정이흔

고하문학관을 나와서 일단 시원한 음료를 한잔씩 마시기 위해 지난번 묵었던 한옥 호텔 카페로 향했다. 아침에 계획보다 이르게 출발했던지라, 이번에는 서둘러 가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문학관을 다니면서 내가 일정을 조금 촉박하게 짠 이유는 어차피 떠난 김에 집으로 돌아오는 경로상에 있는 문학관을 한 곳이라도 더 돌아보기 위함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딸까지 동반한 일정이었으므로 문학관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휴가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문학관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문학관이 집 근방에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한 번 나갔을 때 최대한 효율적인 경로를 구상해서 그 경로상에 있는 문학관을 선정해야 한다. 그렇게 선정한 문학관이 이번에는 여섯 곳이다. 일정이 2박 3일이니 하루에 두 곳 정도라면 지금까지에 비해 아주 여유로운 일정이 될 것이다. 그렇게 딸까지 데리고 집을 나섰고, 혼불문학관이 그 일정의 두 번째 문학관이었다.



문학관을 방문한 후 소회를 적은 글마다 내가 강조하는 것이 있다. 문학관은 아무나, 아무 준비 없이도 찾을 수 있는 문화 시설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면 대단한 이야기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방문 계획을 세우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으레 어떤 계획이든 세울라치면 공연히 분주해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성격 유형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하지만 나의 문학관 방문 계획에 포함할 사항은 단 두 가지이다. 내가 방문하고자 하는 날에 문학관이 혹시라도 예고 없는 휴관은 아닌지와 집에서 문학관까지의 소요 시간이다.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가 있다.



지난번 나들이에 계획상으로는 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다는 문학관 두 곳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두 곳 모두 방문 계획이 어그러졌고, 결국 한옥마을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한 일이 있었다. 고하문학관은 휴일을 확인하지 못했고, 최명희문학관은 운영 실태를 확인하지 못했다. 거의 폐관 일보 직전의 임시 휴관인 문학관을 확인하지도 않고 멀쩡하게 운영 중인 줄로만 알고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일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미리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우리가 몇 명이냐? 도착 예정 시간은 어떻게 되느냐? 등 우리의 일정을 자세히 물었을 때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점심시간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도착할 것 같다는 말만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냥 내가 방문하는 시간에 문학관이 열려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카페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약속 시간에 맞춰 카페를 나섰다. 문학관까지는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였으므로 그다지 바쁠 일도 없었다. 문학관에 도착해 보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항상 계단이 문제였다. 아내의 무릎 때문이다. 그렇게 아내의 팔을 붙잡고 계단 위로 올라서서 보니 저만치 장애인 주차 구획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면 차로 올라올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올라오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혹시 문학관을 방문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참고하길 바란다.



계단 위는 넓은 잔디가 깔린 정원이었는데, 정원 끝에는 '기역' 자로 들어앉은 단층 한옥의 전시관이 눈에 들어왔다. 단아하다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우리보다 앞서 올라온 여성 일행을 따라 정원의 오른쪽에 있는 사무실로 먼저 들어갔다. 그곳에는 간단히 필사해 볼 수 있는 테이블과 리플릿이 놓인 테이블이 있었다. 해설사인 듯 보이는 직원이 안내를 자처했다. 우리는 나와 아내와 딸이 각각 한 문장씩 필사한 원고지에 혼불 명판을 찍어 기념으로 갖고 나오려고 하는데 해설사분이 자꾸 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시계를 보고 계셨다. “오신다고 했는데, 왜 아직 안 오시지?” “누가 오실 분이 있나 보죠?” “아, 1시 20분에 예약하신 분이 계셔서요. 오시면 함께 전시실로 가서 안내해 드리려고요.” “혹시 세 명 아닌가요? 그거 우리 같은데요.” 알고 보니 그분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거였다. 우리는 서로 웃으면서 함께 전시관으로 이동했다.



나는 최명희 작가를 공모전 사이트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러니 혼불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겠는가? 그렇게 머릿속에 작가나 작품 세계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전시관에 들어가려니 공연히 작가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냥 전시관 안으로 발을 들였다.



혼불은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 당선작이다. 당선 이후 1권이 4권이 되고 다시 10권이 되는 과정을 거쳐 1996년 10권짜리 혼불이 완간되었다. 바로 앞에서도 미리 고백했듯이 나는 전권을 완독해 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해설사의 말에 귀를 기울여 최명희 작가의 작품 세계에 빠져보려고 노력하며 전시 자료를 살폈다. 혼불은 남원의 한 마을인 서도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삼 대에 걸친 한 집안과 그 집안을 둘러싼 다양한 신분의 인물들 이야기이다. 줄거리만 두고 보면 평범한 소설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서사의 기법으로 보면 우리 선조들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 민속학적, 인류학적 기록이 작가의 철저한 고증 아래 작품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소설이다. 실제로 전시관의 전시물 중 상당한 면적을 관혼상제 중 혼인과 장례의 풍습을 보여주는 디오라마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혼불의 줄거리 중에서 인상에 남는 장면을 역시 조금 작은 디오라마로 재구성하여 채우고 있었다.



시집오자마자 남편이 죽은 주인공 격인 청암부인부터 시작하여 아들과 손자 주위로 벌어지는 서사에는 일반적 시각으로 받아들이기 어색한 장면이 많이 속출한다. 함께 간 아내와 딸은 특히 사촌 남매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과 애정 행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반응을 보였다. 작가가 철저한 자료 수집과 고증을 통해 재현한 서사이므로 전혀 현실과 무관한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현대의 시각으로는 잠시 머리를 갸우뚱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대하소설을 접하는 태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소설의 한 줄거리를 담당하는 일련의 사건 중에서 어느 한 부분만을 본류에서 떼어내서 집중한다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시각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틀에서 본다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꼭 필요한 자리에 적절하게 삽입된 장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장례 장면에만 백여 쪽이 넘는 지면을 할애하면서까지 소설 전체에서 독자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현실적, 실존적인 시대상을 보여주면서 독자 스스로 작가의 작품 세계 안으로 발을 들이기를 기다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최명희 작가도 여느 여고생처럼 순수한 문학소녀의 시절도 겪었지만, 가세가 기울어 가는 집안에서 장녀의 책임을 외면할 수 없어 생업 전선에 뛰어든다. 그러다가 친구의 권유로 신문사 공모전에 응모하면서 전업 작가로의 길을 걷는다. 말하자면 문학소녀 최명희를 본격적인 작가로 이끈 사람은 바로 친구였다. 공모전 응모 권유로 끝나지 않고 소설 속 인물의 모티브가 되는 실존 인물이나 가계도까지도 작가에게 제공한다. 물론 인물의 성이나 본관은 실제 그대로 쓸 수 없었기에 작가가 새롭게 창조하였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혼불의 공모전 당선으로 작가는 그때까지 걸어온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마치 ‘대발해’를 집필한 김홍신에게 법륜스님이 계셨듯이, 그리고 시를 쓰고 싶었던 김주영에게 시 말고도 소설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준 은사 박목월이 있었듯이, 그리고 청록파 시인과 오장환 시인에게도 영원한 스승이었던 정지용 시인이 있었듯이 그렇게 최명희 작가의 곁에 그녀에게 소설가의 길을 권유한 친구가 있었다.



전시관을 다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들어갈 때 봐 두었던, 구 서도역 영상촬영지에서 잠시 차를 세웠다. 해설사의 말로는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로도 유명하지만, 역 자체도 아주 아름답다고 했다. 차를 세우고 올라가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 위를 사람들이 걸으며 여기저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길게 누운 선로를 바라보자니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우리들의 인생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바로 뒤에 있는 선로 변환기 레버를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열차는 순식간에 다른 선로로 옮겨 탄다. 인생도 그럴까? 그렇게 인생길도 순식간에 옮겨줄 수 있는 변환기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다가 차를 세워둔 곳으로 내려왔다. 차를 타려고 하다 보니, 서도역 바로 앞의 집 낮은 담벼락에는 오장환문학관 입구의 벽에 적힌 시처럼 최명희 작가의 말이 적혀 있기에 여기에 한 번 옮겨 보았다.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글을 읽자니 마치 작가란 자기 몸속의 피를 찍어 자기의 목소리를 낭자하게 남겨두려는 사람이라던 김홍신 작가의 말처럼 읽혔다. 그만큼 창작은 오롯이 작가가 짊어지고 나아가야 하는 고통의 연속인 행위라는 말처럼 들린다. 짧은 단편이나 단행본 분량의 장편조차 그런데 하물며 10권이나 되는 작품을 집필하는 과정은 어떠했으랴? 내 눈으로 보지 않았어도, 내가 직접 써보지 않았어도 그들의 고통이 나에게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아마 이런 느낌을 구하기 위해 문학관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의 마흔두 번째 문학관 나들이가 끝났다. 다음은 하동의 박경리문학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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