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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거나 지나치지 않게

by 정이흔

창밖 까마귀 울음소리가 앞산 머리 위를 넘어오던 여명을 조금씩 젖혀 열었다. 어둑하던 시야가 점점 밝아지면서 또 하루가 시작됨을 알린다. 여름 내내 열고 잠에 들었던 베란다 창문이 어느새 서늘한 바람을 방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갑자기 덮은 이불이 얇다고 느껴진다면, 가을이 찾아오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니 밖의 날씨가 또 바뀌어 간다. 적당히 따가운 햇볕을 감춘 오늘은 나들이 가기에 이미 충분히 어울리는 날이다. 이런 날은 아무런 목적지 없이도, 집을 나설 핑계를 댈 필요는 없다. 혼자 나서도 좋을 것이고, 아내와 딸이 함께 나서도 좋을 것이다.



가로수 그늘 아래로 들어서니, 이 여름의 엔딩곡을 끝낸 매미가 이어서 앙코르곡까지 부르고 있었다. 짧은 생을 마치는 비장함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경쾌한 음악이다. 매미의 노래 사이사이 낮게 날던 까마귀가 추임을 넣는다. 뭔지 모를 절묘한 어울림이다. 그들의 노래에 떠밀려 이제 늦여름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어차피 진즉 떠났어야 하는 발걸음이다. 갑자기 하늘은 맑은데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옛날에는 이런 날씨를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라고 했다. 그때는 무심코 그랬는데, 생각해 보니 왜 그렇게 불렀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여우의 성격이 마치 손바닥 뒤집기라도 하는 것처럼 변덕이 심해서 그런가? 그건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예전에 비해 부쩍 이런 날씨가 늘어나긴 했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자마자 실내 공기가 답답함을 느낀다. 에어컨을 트니 순간적으로 시원함이 차 안에 퍼지지만, 시원함은 이내 서늘함으로 바뀌면서 핸들을 잡은 내 손 팔뚝을 타고 온몸으로 번져 올라온다. 화들짝 놀라 에어컨을 끄면, 서늘함은 곧바로 마치 사우나실 안의 숨이 막히는 공기처럼 갑갑함으로 바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다. 어째서 중간이라고는 없을까? 차 안의 공기가 되었든, 차 밖의 공기가 되었든 지나치게 덥지도 않고 혹은 지나치게 서늘하지도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고 보니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매사에 부족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게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껴본다. 가벼운 기온의 변화만으로도 인생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하루다. 비록 짧게 왔다가 금방 지나가 버릴 날씨지만, 요즘 날씨에 공연한 기대를 한 번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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