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원래 저녁 늦게 음식을 먹지 않는다. 저녁도 대여섯 시 정도에 일찍 먹고는 이후로 거의 먹지 않는다. 식습관과 체중 조절을 위해서 시작했는데, 이제 거의 굳어진 습관이다.
오늘도 저녁을 일찍 먹고 거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아내가 배가 고파진다고 했다. 보통은 저녁을 일찍 먹으니 일반적 현상이지만, 그때마다 딸은 엄마에게 그냥 물이나 마시고 참으라고 한다. 한번 먹기 시작하면, 다시 새로운 습관에 물들기 때문이다. 그런 딸의 말에 아내도 금세 수긍한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문제였다.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어진 거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채혈하는 날이었기에 며칠 전부터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어차피 채혈도 끝났겠다 해서 오늘은 한잔 마시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 부부는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채혈 검사를 한다. 혈압은 물론이겠거니와 당화혈색소나 간수치 같은 기본적 검사를 하기 위함이다. 다행히도 어제의 검사 결과는 대부분 의사의 칭찬으로 끝났다.
그렇게 검사 때문에 참았던 술이 마시고 싶어진 거다. 내가 술 이야기를 하니 아내가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느닷없이 계란말이가 먹고 싶다는 거다. 내가 그거 먹으면 살찌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아내는 계란과 살찌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하면서 옆에 있던 딸에게도 함께 먹자고 한다. 나는 기껏 안주로 만들어 놓으면 아내가 다 먹어버릴까 봐 아내는 먹지 말라고 했는데, 내 말을 듣고 아내는 금방 꼬리를 내렸다. 그렇게 잘라 말하고 나니 한편으로는 아내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그머니 일어나서 주방 불을 켜니까 아내가 따라와서 계란을 꺼내 왔다.
나는 말없이 파를 꺼내서 잘게 썰었다. 파는 역시 계란말이의 꽃이다. 아내는 프라이팬을 꺼내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깨 놓은 계란에 소금을 넣은 후 내가 썬 파를 넣고 휘저었다. 그리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아내보다는 내가 계란을 잘 말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란을 마는 동안 아내가 갑자기 치즈도 넣자고 했다. 그럭저럭 치즈계란말이가 완성되는 동안 아내는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고 술잔을 챙겼다. 아무튼 그렇게 계란말이가 완성되었고, 딸은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사이에 우리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내는 술을 마시면 안주를 이것저것 마구 늘어놓는 버릇이 있다. 나는 솔직히 한 가지 안주로도 술을 마시는데, 아내는 재미로 이것저것 늘어놓고 마셔야 한다. 스낵도 나오고 냉장고에서 포도도 나오고 파김치도 나와서 제법 안주상이 화려해졌다.
그렇지만 술자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내도 예전과는 다르게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할 뿐 아니라 나도 내일까지는 일을 해야 하니까 많이 마실 수 없었기에 그냥 스트레이트 잔으로 세 잔 마시고는 술자리를 끝냈다. 아내가 식탁을 정리하는 사이에 설거지를 하고, 술 마시는 동안 닫아 두었던 딸 방문을 열어주고는 내방으로 들어왔다. 밤새 방문을 닫아둔 채 놔두면 아침이면 잠자던 딸이 더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늘도 엉겁결에 술을 한잔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았다. 술도 마셨겠다, 그냥 곧바로 잠을 잘 수는 없지 않은가?
자! 이제 글도 올렸겠다, 슬슬 잠잘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