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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의 생존형 기억력

by 정이흔

며느리와 손자가 귀국하고 나서부터 매일 용달차를 끌고 집을 나서던 나의 일과에도 변화가 왔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손자와 며느리 양육에 전념하게 된 것이다. 남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일단 내가 계속 일을 하고 집에서 아내가 혼자 며느리와 손자를 돌봐주기에는 아내의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다. 그러면 며느리는 뭐 하냐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결혼해서 시부모와 함께 사는 며느리의 경우 어느 정도 살림을 맡아할 각오가 된 여성이다. 더군다나 직장이 있어서 매일 출근하는 며느리가 아닌 바에는 당연히 시부모를 대신하여 집안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며느리는 한국 가정의 살림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다. 그렇다 보니 시집 식구의 식습관도 모르고, 냉장고 안의 식재료에도 서툴고, 주방 기구 사용에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그런 와중에 남편(우리 아들)도 없이 혼자 하루 종일 매달리는 손자도 돌봐야 한다. 집안일에 손을 거들 정신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 부부는 최대한 며느리가 한국 가정의 살림에 익숙해질 때까지 차근차근 알려주면서 도와주는 중이다. 그리고 솔직히 며느리가 예쁘다 보니 살림살이에 부려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특하지 않은가? 남편도 없는 시집에, 그것도 외국 가정에 와서 적응해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어찌 예쁘지 않을까? 그래서 내 휴대전화 주소록에도 며느리는 ‘이쁜 며느리’로 저장되어 있다.



아내는 일주일에 4일은 아침에 운동을 다닌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 다니던 곳인데,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건강에 많이 도움이 되었던지라 이곳에 와서도 계속 다니고 있다. 그렇다 보니 며느리와 손자의 아침과 점심은 전적으로 내가 준비한다. 처음 준비할 때는 무슨 재료로 무슨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지 눈앞이 깜깜했다. 그저 우리가 먹는 식대로 준비했다가는 손자는 고사하고 며느리까지 한 술도 뜨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들과 의논해서 며느리가 친정에서 즐겨 먹던 메뉴를 중심으로 기본 식단을 몇 가지 준비했다. 다행인 것은 며느리가 고기 종류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뭘 먹일까 고민되는 경우 무조건 고기를 준비하면 된다. 그리고 며느리는 아침은 조금만 먹지만, 점심도 거르지 않고 하루에 세 끼는 꼭 먹는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평소 두 끼만 먹던 까닭에 처음에는 점심을 준비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 나도 제법 며느리와 손자의 식사 준비에는 많이 적응되었다. 식재료도 수시로 의논해서 며느리가 먹고 싶다는 것으로 준비하고, 손자의 경우 아직 어른 음식에 적응이 되어 있지 않으므로 간이 거의 없는 별도의 식단으로 준비한다. 밥과 고기, 고구마, 달걀과 채소를 비롯하여 식후에는 딸기나 블루베리와 같이 손자가 좋아하는 과일로 준비한다. 이렇게 준비하는 일도 이제 한 달이 되어가다 보니 제법 능숙하게 준비하고 있다.



오늘 거실에서 가족이 모여 각자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는데 손자가 며느리에게 중국말로 뭐라고 했다. 궁금한 아내가 며느리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그러자 며느리가 한 말에 온 가족이 박장대소했다.

“할아버지 밥 주세요.”라고 했다는 거다. 할머니도 있는데, 할아버지에게 밥을 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손자는 누가 밥을 주는 사람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침과 점심은 전적으로 내가 준비하고, 저녁은 아내와 함께 준비하다 보니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먹을 것을 준비해 주는 사람으로 비췄을 것이다. 일단 엄마(며느리)에게 말하면 결국 할아버지가 준비해 주므로, “할아버지 밥 주세요.”라고 한 말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니, 며느리에게 다시 말한 것이다. 확실히 손자는 똑똑하다. 철저한 생존형 기억력이 아닐 수 없다. 할아버지는 식사 준비, 고모는 놀아주는 사람, 할머니는 특별히 전담한 분야는 없어도 급할 때는 찾으면 되는 사람, 뭐 이 정도인 것 같다.



이제 식사 준비 담당이었던 할아버지도 새해가 되면 한 가지 다른 역할을 맡아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산책 도우미이다. 지금은 며느리가 반드시 있어야만 밖으로 나가지만, 나중에는 며느리도 집안에서 쉬면서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내가 손자를 데리고 밖에 나갈 수 있게 될 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사실 집안에만 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면 손자도 좀 더 활동적으로 되기도 할 것이고, 나중에 어린이집에 갈 때도 며느리를 조금 덜 찾지 않을까 해서 생각한 할아버지의 역할이다. 하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그때까지는 손자에게 지금처럼 식사 준비에 최선을 다하는 할아버지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어린이집에 다녀와서도 저녁에는 식사 준비를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은 당연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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