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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

by 정이흔

식사 시간에 아내와 딸, 그리고 며느리가 앉아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서로 완벽하게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이제 며느리가 함께 지낸 시간이 한 달이 다 되어 가므로 서로 편한 언어를 무자비하게 섞어서 말해도 상대방은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러다가 아무리 해도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면 즉석에서 파파고를 호출하면 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 깔깔대면서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잘만 한다. 정말 희한한 가족의 대화법이다.


엊그제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손자가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어른끼리만 이야기에 팔려서 손자에게 시선을 주지 못한 까닭에, 어디 다치기라도 했나 싶어서 깜짝 놀라 손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며느리는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 손자에게 가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손자는 울면서 무릎 부분을 가리켰는데, 자세히 보니 어딘가 살짝 긁힌 것처럼 보였다. 물론 심각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내는 손자가 가리킨 곳에 밴드를 붙여주려고 했는데, 밴드를 본 손자는 더 울기 시작해서 밴드는 아예 붙일 수도 없었다. 그냥 아프기도 했겠지만, 자기만 빼고 어른끼리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관심을 끌려고 그런 것만 같았다. 그런데 우리는 아프다고 우는 손자를 두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생각을 하면서 웃었다.


우리가 똑같이 웃은 이유는 아들 생각이 나서였다. 우리는 손자가 유독 엄살이 심한 것이 아니냐고 했고, 며느리도 그런 생각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넷이 이구동성으로 그런 엄살이 손자가 아들을 닮아서 그런 것 같다는 데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 사실 우리는 아들과 떨어져서 지낸 지가 오래되므로, 아들이 어려서부터 집에서 함께 지낼 때 보았던 아들의 엄살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런데 며느리의 말을 들어 보니, 중국에서도 유난스러웠던 모양이었다. 며느리는 아들이 엄살을 떨 때마다 보면 결국 아무렇지도 않은데 엄살을 떤다고 은근한 짜증이 났었던 모양이었다. 특히 둘만 있을 때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까지 있는 장소에서 유난을 떠는 모습이 남들 보기에 민망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오죽 그랬으면, 아들이 엄살을 떠는 모습을 보면서 “그만해!(이 말은 분명하게 한국어로 했다고 한다.)”라고 했겠냐면서 아들 흉을 보았다. 그런데 아들 흉을 보는 며느리가 도무지 밉게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면, 우리도 아들의 엄살에 얼마나 진저리가 났었는지 알 만한 일이다.


분석 결과 우리는 아들의 그런 행동도 내가 언젠가 책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관종이라서 그런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손자도 아마 자기를 놔두고 가족(어른들)끼리 웃고 떠드는 모습에 은근히 소외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른들끼리 떠들지만 말고 자기도 좀 봐달라고 하는 강력한 액션이 아니었을까? 그냥 그렇게 추측해 본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손자는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혼자 놀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자기에게 쏠린 가족 모두의 시선이 아마도 치료제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손자의 엄살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손자 덕분에 우리는 모처럼 자리에 없는 아들 흉을 한껏 볼 수 있었다. 물론 아들은 우리가 이렇게 자기 흉을 보고 있었는지는 모를 것이다. 혹시 모르지. 나중에라도 이 일에 대해 듣게 된다면 아들은 자기가 없는 장소에서 자기 흉을 본 가족에게 뭐라고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원래 결혼하기 전의 아들 같으면 자기 흉을 본다고 말로라도 뭐라고 했을 텐데, 지금은 아마도 그냥 함께 웃어버린 것 같았다. 그만큼 아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렇게 오늘도 우리 가족은 서로의 관심을 갈구하며 하나로 뭉쳐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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