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전의 일이다. 한동안 휴일에 야외로 나가 그림 그리는 모임에 다닌 적이 있었다. 물론 모임의 성격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지만, 나를 비롯하여 몇몇 회원은 그림보다 낮술에 심취하던 시절이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식사하면서 반주도 한 잔 마시고, 오후 세 시가 되면 우리 멋대로 술시로 정해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각자 준비해 온 안주를 꺼내놓고 술을 마시곤 했다.
나는 그 술시 멤버 중에서도 핵심 멤버라 할 수 있었으므로, 사생을 나가기 전 토요일이면 내일은 무슨 안주를 장만해서 갈까? 하고 연구하곤 했다. 하긴 그래 봐야 안주를 준비하는 사람은 어머니였지만 말이다.
내가 준비한 안주 중에 모임의 회원 사이에서 유명한 안주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계란말이다. 한 번에 계란을 열댓 개 깨트려서 계란말이를 만들면, 그래도 몇 명이 모여 술을 마실 때 안주값을 톡톡히 하곤 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회원도 지나가다가 한 개씩 먹어 보고는 그 맛에 취해서 우리가 술판만 펼치면 어디선가 우르르 모여들곤 했다. 그렇게 인기가 있던 계란말이도 내가 사생을 그만두게 되면서 한동안 만들 일이 없었고, 그 후로는 집에서 내가 술을 마시고 싶을 때 가끔 어머니 대신 내가 만들어 먹었다.
그러다가 어제 오랜만에 계란을 말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모두 알겠지만, 아침마다 나는 며느리와 손자의 아침상을 준비한다. 그중 손자의 식단에 올릴 계란으로 만든 요리가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계란 프라이를 만들기도 했고, 구운 계란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문득 계란으로 다른 요리를 만들어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계란찜을 만들었는데, 뜻밖에 손자가 아주 잘 먹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하루를 계란찜으로 넘기고 어제 하루 더 계란찜으로 하려다 보니, 불쑥 계란말이가 떠올랐다.
그래서 옛날 생각을 떠올리며 계란을 말았다. 손자는 물론 며느리도 처음 보는 요리였고, 그 둘은 아주 맛있게 계란말이를 먹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오늘 아침에는 자기도 먹고 싶다고 조금 넉넉하게 만들어 달라고 하길래 이번에는 계란을 말 때 가운데에 치즈를 넣어서 치즈계란말이를 만들어 식탁에 올렸다. 이번에도 며느리와 손자는 맛있게 먹었으며, 덕분에 아내도 오랜만에 내 솜씨를 맛보고는 예전과 다름없이 맛있다고 칭찬했다. 나야 뭐 가족이 맛있게 먹어주니 더욱 고마울 뿐이었고 말이다.
앞으로는 계란말이뿐 아니라 다른 요리도 열심히 연구해야 할 것 같았다. 매일 같은 밑반찬에 같은 밥과 국을 놓고 먹을 수도 없지 않은가? 인터넷에서 손자 연령대의 아동용 식단도 찾아보고 하나씩 만들어 볼 생각이다. 물론 처음부터 맛있게 만들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동용 식단은 대부분 간을 거의 하지 않는 레시피이므로 내가 특별한 재간을 부려서 손맛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그러다가 내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 아마 식사 준비에 신경을 조금 덜 써도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열심히 손자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준비해 볼 생각이다.
아!! 일단 내일 아침 식단부터 생각해 두어야 하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