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체중이 거의 세 자리 숫자에 육박한 적이 있었다. 아마 기억하건대 십오 년도 전의 일이다. 대책도 없이 불어나는 체중에 심각함을 느낀 것은 내가 앉아서 내 발톱을 깎을 수 없다거나, 똑바로 서서 내려다볼 때 발끝이 안 보인다거나 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늘어난 체중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지고, 조금만 걷는 운동을 해도 숨이 가빠진다는 것부터 문제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살찌는 우려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는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특별한 방법은 아니었고 단 두 가지에만 치중했는데, 저녁 6시 이후에는 식사하지 않는 것과 하루에 최소 4킬로미터 이상을 걷는 방법이었다. 단순한 방법이었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체중이 점점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의 15킬로그램 정도 감량한 후 다이어트를 중단했는데, 역시 시간이 지나니 예상대로 요요현상이 왔다.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데에는 불과 서너 달이 걸렸을 뿐이다.
그리고 그 후에 다시 다이어트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방법은 단순했다. 첫 번째 다이어트에서 성과를 보았으니, 다른 방법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성급하게 체중이 내려갔다고 다이어트를 그만둘 것이 아니라, 조금 오랜 기간을 두고 꾸준하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일종의 보험으로, 친구와 내기를 걸었다. 약속한 기간 이내에 미리 정한 체중에 가깝게 감량하는 사람에게 상대방이 다이어트를 끝낸 기념으로 술을 한잔 사는 약속이었다. 결국 내기에서 내가 이기면서 원했던 수준으로 감량했음은 물론이고, 거나하게 술도 얻어 마셨다. 하지만 두 번의 다이어트 성공은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복잡한 방법을 동원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원하는 수준으로 감량할 수 있을 거라는 쓸데없는 자만심만 키웠다.
결국 두 번째 다이어트 이후에 높은 줄 모르고 야금야금 오르던 체중은 결국 다시 세 자리 숫자에 육박하게 되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다시 다이어트에 돌입했지만, 이번의 실패 요인은 술이었다. 이태백이 저리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애주가인 내가 술을 조절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생각해 낸 방법이 낮술이었다.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미리 술을 마시고, 그 이후부터는 음식물 섭취를 중단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늦은 시간에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비만의 요인이 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반년이 지날 때까지 체중 감소의 정도는 미미했다. 그것이 올해 6월의 일이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체중이 늘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며 현상 유지에 온 힘을 다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이어트를 포기하고 현상에 안주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언젠가는 체중 앞자리를 ‘9’에서 ‘8’로 내리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버리지는 않고 있었다. 그 시한이 바로 섣달그믐인 오늘이었다.
그렇지만 11월까지도 체중은 93에서 95 사이를 오르내리며, 도무지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11월 24일 며느리와 손자가 입국했다. 그날 이후 나의 일과는 완전히 바뀌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딸을 출근시키고 나면, 그때부터 며느리와 손자의 아침 준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양육 일과가 시작되었다. 예전에 손자가 없던 시절에는 주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자를 돌보느라 힘들어하는 것을 보아도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제 내가 손자를 돌보다 보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아직은 손자가 며느리의 손을 떠나지 못했는지라 내가 완벽한 육아를 전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전 생활에 비해 신경을 쓸 일도 많아졌고, 몸을 움직일 일도 많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끼리 왜 그렇게 핼쑥해졌냐고 하면 손자를 돌보느라 그런 것 같다고 하는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며느리와 손자가 입국한 지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 되었다. 그리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90.0킬로그램 체중의 앞자리가 ‘9’에서 ‘8’로 바뀌었다. 역시 다이어트의 최고봉은 영유아 육아임이 입증된 순간이다. 이제야 수년 동안 갇혀 지냈던 90킬로그램 대의 체중에서 탈출한 것이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체중을 이제 정말 나의 인생에서 지워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 바람에 더하여 가능하면 조금 더 체중이 내려가서 앞자리 ‘7’을 바라보는 단계에 돌입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며느리도 한국어가 능숙해지고, 손자도 건강하게 자랄 때쯤 되면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혹시라도 그런 시간이 온다면, 그것은 모두 며느리와 손자의 덕분으로 알면 될 것이다.
혹시 기껏 한 달 남짓 육아로 힘들었다는 탄식을 내뱉는 것으로 들릴까 조심스러워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래도 몇십 년 만에 찾아온 80킬로그램 대의 체중이 너무 감격스러워 글을 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