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고로 하라니까?

by 정이흔

우리 가족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해서 소통한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이미 했다. 그리고 손자도 중국어와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도(물론 단어 수준이지만) 사용해서 자기 의사를 표현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와 나와 딸은 그래도 한국어가 우선이므로 며느리와 이야기할 때 무조건 한국어로 말을 건넨다. 물론 며느리가 한국어를 단어 단위로 알고 문장은 이해하지 못하므로 우선 문장을 짧게 끊어서 말한다. 그러면 열에 두세 번은 알아듣는다. 단지 한국어로 완전한 문장을 만들지 못하므로 자연스러운 대화는 불가능하다.



가족 중 아내가 며느리와 대화할 때의 이야기이다. 아내는 마치 며느리가 한국어를 잘 알아듣는 것처럼 무조건 한국어 위주로 말을 꺼낸다. 그러다가 며느리의 얼굴이 이상해지면, 그때부터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일단 며느리의 표정이 야릇해지면, 파파고를 동원해야 한다. 그런데 파파고도 완벽하지 않다. 말이 빨라지면 번역이 엉망이다. 그래서 파파고를 동원해도 말을 일정한 단위로 잘라서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파파고 화면을 보면서 파파고가 나의 한국어를 제대로 듣고 번역 중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가 연음처럼 이어지게 발음되면, 파파고는 여지없이 다른 단어로 번역한다. 그러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 안되면 두세 단어씩으로 잘라서 보여주면 며느리가 대충 알아서 이해한다.



가끔 아내가 파파고를 동원해도 할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종종 파파고를 동원하지 않고 자꾸만 한국어로 천천히 이야기하면서 며느리에게 알아서 알아들으라는 듯 이야기한다. 듣다 못 한 나나 딸이 아내에게 “그러니까 그러지 말고 파파고로 이야기하라니까?”라고 한다. 물론 파파고를 동원하면 대화가 좀 더 수월하다는 사실을 아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순전히 손이 닿는 곳에 휴대전화가 없으니 귀찮아서 파파고를 호출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엄마와 할머니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던 손자가 한마디 한다.



“파파고”



그렇게 헤매지 말고 얼른 파파고나 동원하라는 뜻이다. 손자가 보기에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럴까? 그제야 어른들이 파파고를 동원한다. 어쩌면 손자보다 못 한 어른들이다. 하하하.



이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파파고보다 챗 GPT가 더욱 편할 때가 있다. 알다시피 우리 거실에는 무려 2미터가 넘은 긴 테이블이 있고, 거기에 내 노트북과 모니터 하나, 그리고 며느리의 노트북이 자리한다. 그래서 나는 며느리와 종종 나란히 앉아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파파고보다는 챗 GPT를 이용한다. 며느리와 내가 각자의 노트북에 챗 GPT 화면을 띄우고 그곳에 각자 한국어와 중국어로 글을 쓴다. 그러면 그 글이 중국어와 한국어로 번역된다. 말투에 따라 엉터리로 번역되는 파파고에 비해 챗 GPT 창에는 글로 쓰는 것이므로 오역의 확률이 거의 없다. 어떨 때는 꽤 긴 문장도 오류 없이 깨끗하게 번역해 준다.



아무튼 파파고든 챗 GPT건 문명의 이기를 통해 오늘도 우리 가족은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아마 이런 대화 방법은 며느리가 한국어학당이 다니면서 한국어가 늘게 되면, 점점 횟수가 줄어들 것이다. 며느리와 우리 가족은 분명 올해 안에 그렇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군다나 칠 월이면 아들도 귀국하므로, 앞으로 육 개월 정도만 이렇게 소통하면 될 것이다.



챗 GPT 이야기는 일단 그렇고, 아까 저녁 식탁에서 또 아내가 며느리와 대화하는데 잠깐 의사소통이 단절된 경우가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손자가 한마디 했다.



“파파고!!!”



우리는 다 함께 웃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례한 요구'는 마마妈妈 타임의 전조